[영화이야기] <33>(2015, 미국·칠레, 감독: 패트리시아 리건)
무엇이 진정 국익인가? 영화 <33>이 말해준다
염찬희 영화평론가
상실과 분노, 공감
빵 행상 마리아는 광업부 장관의 뺨을 갈긴다.
광산이 무너졌고 일하던 광부들이 매몰되었다. 회사는 입단속을 시켰지만, 소식은 새어나가서 언론이 보도를 했다. 언론을 통해서 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한걸음에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사측은 구조가 불가능하다면서 가족들을 내쳤다. 가족들은 구조 요구를 하면서 정문 앞에 진을 쳤다. 광업부 장관이 현장에 나왔다. 가족들이 길을 막아서자, 그는 구조하겠다고 약속했다. 국가의 대표인 그의 약속을 가족들은 믿었다. 그런 그가 회사 측의 보고를 받고 나와서 한다는 말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였다. 그때 가족 중에 서있던 마리아(쥴리엣 비노쉬)는 달려들어 장관의 뺨을 치면서 악다구니를 쓴다.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데 포기하겠다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내뱉어진 것이다. 그 순간 사랑하는 이를 잃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지독한 위기감에 휩싸였을 것이고, 그 위기감은 분노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상실로 인해 야기되는 분노의 힘이 어느 정도일 수 있는지를 인류학자 레나토 로살도는 필리핀 루손지역 북부에 사는 일롱고트 부족을 사례로 들어 설명한다. 1972년에 정부가 강력하게 금지시키기 이전 까지 이 부족은 다른 사람의 머리를 사냥했다. 그들이 머리 사냥을 했던 이유는 가까운 사람의 상실로 인한 비통함에서 발생하는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로살도는 그들의 해결 방식을 옳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을 상실했을 때 생기는 분노의 힘을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상실의 경험이 없다면 그 분노의 힘을 완벽하게 공감하지는 못하겠지만, 의지가 있다면 상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광업부 장관 골보르네(로드리고 산토로)는 사건 소식을 대통령-중도 우파인 민족혁신당 소속으로 2010년 3월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하던 에체니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민영광산이므로 신경쓰지 말고 관심의 제스쳐만 보이고 오라는 대통령에게 이 사고를 정치로 보지 말고 국가의 도의적 책임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광산 정문에 도착했을 때, 국민을 위한다는 제스쳐로 현장에 한번 들른 것이라고 가족들이 의심했을 때 그는 해결할 의지를 보여주었다. 광부 구조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은 진심으로 보였다. 그러나 100년 이상 된 그 광산에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의 사고가 있었지만 생존자는 한 명도 없었다는 보고, 매몰된 광부들이 운 좋게 대피소에 가있더라도 지하 620여미터 아래에 있는 대피소까지 뚫고 들어가려면 적어도 3달은 걸린다는 보고, 대피소에 있는 식량은 3일이 최대라는 보고를 사측으로부터 들은 그는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쳐진 어깨로 가족들 앞에 선 그는 미안해하면서 말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그 순간 광부의 가족은 자신에게 달려들어서 뺨을 쳤다. 그러나 그는 가족들의 분노를 외면하지 않았다. 마주 보았다. 그 눈빛의 마주침은 그를 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구조하겠다고 다시 약속한다.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면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의 공감이 없었다면 광부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재난영화의 공식이되 영웅화는 피하려
영화 <33>은 실제로 2010년에 발생했던 칠레 산호세 광산 붕괴 사건을 다룬다. 매몰된 33인의 광부가 구조되기까지의 과정을 재난영화의 장르 공식에 앉혀 재현했다. 실화에 충실해서인지 특정 인물을 영웅화하는 헐리우드 재난 장르 특성에서는 약간 비껴나 있지만 재난 발생을 전혀 모르고 행복해하는 사람들 – 재난 발생의 징후들 – 재난 – 재난을 극복하는 모습들 – 구조라는 재난 장르의 플롯 구조는 차용하고 있다.
산호세 광산 광부들이 여럿 살고 있는 코피아포 마을에서 벌어진 흥겨운 잔치로 영화는 문을 연다. 잔치는 등장인물들 각각의 사연을 설명하기 위한 공간으로 역할 한다. 딸과 아내 사랑이 대단한 광부 마리오(안토이오 반데라스), 은퇴를 2주 앞둔 노 광부, 안전한 직업으로 이직을 고민하는 예비 아빠 광부, 엘비스 프레슬리의 열혈 팬 광부 들이 가족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밝은 햇살 배경에 앉혀서 그들에게 곧 닥칠 재난의 비극성을 암울하게 재현한다.
이미 여러 차례 회사 측에 광산의 안전 점검을 요구하지만 생산량 달성만 중시하는 관리자에게 번번히 묵살당한 작업반장 루이스(루 다이아몬드 필립스)는 빵 행상 마리아의 동생인 노숙자, 아내와 정부를 옆집에 두고 드나드는 바람둥이, 노동 원정 첫날인 볼리비아인 등과 함께 갱도로 들어간다. 작업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광산은 붕괴된다. 영화 시작 15분 정도가 경과하면서 바로 재난 발생을 배치시켰다.
이후 1시간 40분 정도의 시간 전부를 광부들이 서로를 격려하면서 생존하고자 애쓰는 과정, 가족들의 애타는 기다림의 과정, 그리고 광업부 장관의 지휘 아래 전문가들이 결합해서 벌이는 구조의 과정에 할애한다. 카메라는 광부와 가족과 구조대의 세 축을 오가는데, 그 세 축은 각기의 이유로 외롭게 재현되는 중에도 고르게 반복 배치됨으로써 연결되는 효과를 거둔다. 광부와 가족과 구조대는 각기 다른 공간에 각기 다른 난관을 겪고 있지만 순차적으로 반복되는 배치와 시선을 통해서 연결되어 순수하고 유일하며 같은 생각인 ‘구조’에 닿는다. 지상을 바라보는 매몰 광부들의 시선, 구조대와 매몰 지역을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 구조대를 대표하는 장관의 시선은 서로를 향한다.
언론의 역할, 전국민을 ‘칠레인’으로 화합시킨 언론
광산이 붕괴되자 사측은 광부들에게 입단속을 시킨다. 그렇지만 일부 광부들에 의해서 이 소식은 밖으로 전해진다. 가족들조차 언론 보도를 통해서 자신의 아빠와 동생과 아버지와 아들이 매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붕괴되면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2배 정도가 되는 바위가 구조 진입로를 가로막는 바람에 구조는 계속 지연된다. 하루 하루 시간은 흐르고 이제 더 이상은 광부들이 생존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의 시간이 흐른다. 그렇지만 국내언론 뿐 아니라 해외언론까지도 관심을 갖고 지치지 않고 보도를 한다. 그 결과는 미온적이던 대통령마저 구조에 적극 동참하게 하고, 33인 광부를 구조하기 위해서라면 액수가 얼마가 되었던지 돈을 아낌없이 쓰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었다. 칠레의 저명한 방송인인 돈 프란시스코도 현장에 직접 나와서 국민에게 사태를 알린다. 붕괴 17일째에 광부들 33인 모두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그리고 69일째 33명이 한명 한명 구조되는 광경이 언론을 통해서 칠레 국민들에게 전해졌을 때, 그들은 ‘비바 칠레’를 외치면서 하나가 되었다. 매몰 당한 33인 광부를 외면하지 않은 정부와 언론이 있어서, 사고를 당한 광부, 광부의 가족, 구조대와 함께 전 국민이 ‘칠레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이것 이상으로 국가에 이익이 되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세월호에 대한 한국 정부와 한국의 대다수 중요 언론사들이 보인 행태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가슴 아프게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정부와 언론에게 국익을 위한다면 진정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