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우리의 ‘미래’는 어디쯤 오고 있을까(2016.5.)
등록 2016.05.0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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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우리의 ‘미래’는 어디쯤 오고 있을까

 

김택수 이사, 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4.13. 총선을 앞두고 내기를 냈더랬다. 새누리당, 더민주, 국민의당이 각각 몇 석 정도를 얻을 수 있을까라는 전망치를 근사하게 맞추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판돈이래야 기껏 소주 한 병 정도에 불과하지만 나름 자존심도 걸린 일이다.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넘긴다는 데 이의를 단 사람은 없었다. 더민주가 107석을 유지할 것이라 전망한 사람도 없었다. 반사이익으로 국민의당, 정의당이 약진할 것 같다는 얘기는 대체로 일치했지만 국민의당이 원내교섭단체 20석을 넘길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점에선 의견이 반반정도로 갈렸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보기 좋게 예상을 빗나갔다. 더민주 123석, 새누리 122석, 국민의당 38석. 원내 과반수를 넘어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킬 180석을 넘본다는 새누리당은 원내 1당조차 지키지 못했다. 야권분열로 추락할 것이라는 더민주는 원내 1당 자리를 거머쥐었다. 국민의당은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인 20석을 훌쩍 넘어 원내 3당으로 이른바 ‘캐스팅보드 정당’이 되었다. 결국 소주 한 병 내기 게임의 승자는 없었다. 야권분열 속에 치러진 총선 결과를 그나마 근사치라도 예측한 곳도 없었다. 여론조사도 빗나갔다. 조중동 등 주류매체는 물론이고 한겨레 등 진보매체도 틀렸다. 여기저기 종편을 돌아가면서 선거에 관한 전망을 쏟아낸 정치평론가들의 진단도 과녁을 한참 벗어났다. 나도 틀렸다.

 

대한민국 전체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을 보면 미래를 예측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어떤 미래인지, 그 미래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것이 장삼이사의 소주 한 병 내기놀이가 아니라 개인과 가정,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어야 할 사람의 전망이라면 그로 인한 영향은 곧바로 개인과 가정,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총선이 끝나고 우연히 두 개의 다른 그룹과 취중방담이 이어졌다. 한쪽은 이번 총선 호남에서 ‘녹색바람’이 불었지만 안철수를 지지하는 건 아니라 했다. 새누리당도 심판해야 하는데 더민주와 문재인에 대해 경고도 보내야 했을 뿐 안철수를 대안으로 인정한 것까진 아니라는 얘기다. 다른 쪽은 대구, 부산, 경남에서 적잖은 야권 후보가 당선된 것은 고맙고 의미있는 일이지만 호남의 선거결과는 좀 아쉽다고 했다. 광주와 호남이 결국 지역주의투표를 한 거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다. 부산의 경우 선거 막판에 숨은 5%정도 표심의 이동과 결집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광주, 호남이 국민의당으로 결집하니, 오히려 ‘호남당’이라고 더민주를 못 찍을 이유가 없어진 거 같다는 주석도 덧붙였다. 물론 새누리당 후보를 찍긴 하지만 정당투표는 더민주를 찍기 불안해 국민의당을 찍은 유권자들도 있었을 터다.  


광주에서 보는 총선 결과와 부산에서 보는 총선 결과는 사뭇 그 결이 다르다. 왜일까?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저 오찬에서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어려움을 에둘러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분명 대한민국은 하나인데 다 달라요. 전라도에서 보는 대한민국도 대한민국이고, 경상도에서 보는 대한민국도 대한민국인데 다 달라요. 그리곤 자기 생각과 다르면 그건 내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하고…대한민국 전체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을 보면 또 달라질걸요.”

 

1장의 레드카드와 2장의 엘로카드
수천만의 한 표 한 표가 모여 ‘위키피디아’와 같은 효과로 나타나는 것일까. 그러니 선거평가에 대해 어느 한쪽의 딱 부러진 정답이 있을 순 없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회자되는 ‘새누리당 참패, 더민주 선전, 국민의당 약진’이라는 평가는 주어진 현상만을 나열한 것일 뿐 표심에 숨어 있는 속내를 드러내주는 건 아니다. 굳이 개인적 견해를 보탠다면 이번 총선에서 정부, 여당이 레드카드를 받았다면, 두 야당도 엘로우카드쯤은 받은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누구에게도 절대 지지를 보내지 않아 누구에게도 다시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국민이 교차투표의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이제 그만 바리케이드 정치를 넘어 미래로 가자”라는 메시지가 아니였을까 싶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기득권의 바리케이드를 치고 그 바리케이드에 도전하는 내부자들마저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며 공천파동을 일으켜 스스로 심판당했다. 더민주는 수렁끝에서 원내 제1당이 되었지만 정작 자신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에서는 국민의당에게 완패했다. 국민의당은 비록 신생정당이라고는 하지만 수권정당이라 내세우기에는 초라할 정도로 지역의 틀에 갇혀버렸다. 앞으로의 미래가 더 복잡한 방정식이 될 수도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만큼 대권방정식도 복잡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답은 있다. 길도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 전체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을 보고 자신의 바리케이드를 넘어 공존과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리더십의 재구성이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바리케이드 너머 공존과 협력의 리더십
우리들의 미래는 어디쯤 오고 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오고 있을까. 친이, 친박, 친노 타령은 사라져있을까. 조중동 등 주류매체는 여전히 완고하고도 강력할 수 있을까. 한겨레 등 진보매체의 미래는 안녕할 수 있을까. 팟캐스트는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민언련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우리 스스로는 우리들만의 바리케이드를 넘어 공존의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