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삶을 위한 정치혁명』
“왜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을까”
안건모 회원(작은책 발행인)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 수구정당 새누리당이 과반수에 미달했다. 새누리당의 몰락이라는 등 선거혁명이라는 등 세상이 뒤집혀질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그런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단다.
월간 작은책 5월호에 정태인 칼폴라니사회연구소 소장이 보내 준 원고 제목이 “왜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을까”이다. 정태인 소장은 총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 글을 썼다. 이 글 첫머리에서 정 소장은 ‘어쩌면 (여러분이) 참패에서 눈을 돌리려고 술잔을 기울이고 계실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물론 여기서 ‘참패’라고 하는 건 수구 정당 새누리당이 예전과 다름없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걸 말한다. 결과는 수구 새누리당이 몰락했다. 사람들이 정 소장 말대로 선거 결과를 보면서 술잔을 기울이긴 기울였는데 새누리당의 몰락을 축하하는 술잔이었다. 내가 아는 이들은 진보정당이 많이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정태인 소장은 이번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소신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정 소장은 그 이유를 몇 가지 들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우선 노동조합이 주변부 노동자들을 배려하는지, 아니면 핵심 노동자의 이익만 대변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노조에 속한 핵심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한 결과 재분배 정책에 소극적이었고 스웨덴 등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기업별로 조직된 노조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익을 주로 대변하고 있는데 그 결과 비정규직이나 하청기업 노동자의 임금과 대기업 정규직 임금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기업 노동조합이 재분배 정책에 반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대기업 노동자가 많은 울산에서 정몽준 같은 자가 국회의원이 됐던 걸 보면 맞는 말인 듯도 한데 이번 선거에서 노동자 출신이 세 명이나 당선된 걸 보면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런데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없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정 소장은 아이버슨과 소스키스를 인용해서 선거 제도에서도 뚜렷한 원인을 발견했다고 한다.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복지 정책을 찬성하는 정당이 승리하지만 단순다수대표제를 사용하는 나라에선 패배했다는 것이다. 기득권 정당을 교체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사이비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국이 정치혁명을 이루려면 투표 제도부터 바꿔야 한다는 책이 나왔다. 『삶을 위한 정치혁명』(하승수, 한티재, 2016)이다. 1996년부터 참여연대에서 재벌을 감시하는 활동을 해 온 하승수는 한국의 투표 제도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지역구에서 1등을 하면 무조건 당선되는 ‘지역구 상대다수 소선거구제’ 중심의 선거 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이 선거 제도는, 두 개의 지배적인 정당이 쥐락펴락하는 양당제 구조를 낳았다. 하승수는 이 양당제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더 우파 쪽이고 더 기득권에 가까운 쪽이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기 쉽다고 한다. 양당제는 유권자들이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될까 봐 당선될 만한 사람에게 표를 준다.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집권 정당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요즘 한국은 지역구 따로 비례대표 따로 뽑는 ‘병립형비례대표제’를 하고 있지만 이 제도는 사이비 선거제도이다. 비례대표 수가 너무 적어 들러리가 되기 쉽다.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유권자들이 국회의원 선거를 할 때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표를 던지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도입하면 자연히 다당제가 된다. 유권자들은 자기가 선호하는 정당에만 투표를 하니 사표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투표율도 올라간다.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는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국가는 투표율이 80퍼센트가 넘는다.
지금 민주주의 지수 20위 국가들을 보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진 나라는 75퍼센트가 연동형비례대표제이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독일 같은 복지국가가 연동형비례대표제 시스템으로 다당제이고 미국, 호주, 몰타, 영국 등이 상대다수 소선거구제로 양당제이다.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선거 제도가 바뀌면 우리 삶이 어떻게 될까? 하승수는 말한다.
“신자유주의 흐름을 주도하거나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나라들은 양당제 국가들이다. 1980년대와 1990년에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렸던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등이 그렇다. 이들 나라들의 선거제도는 양당제를 낳는 소선거구제였다.(다만, 뉴질랜드는 중간에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정치제도를 개혁했다.)
어떻게 이 제도로 바꿔야 할까. 하승수는 가장 최근에(1996년)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정치제도를 개혁한 뉴질랜드 사례를 들려준다. 158쪽, 8,500원밖에 안 되는 얇은 이 책에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두 시간만 투자하면 복지국가로 만들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이 꿈을 꾸면 몽상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
이런 책을 읽고 함께 꿈을 꾸면 복지국가는 현실이 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