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_장수진] 내일을 위해 늘 준비하고 있어요!(2016.3.)
등록 2016.03.0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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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_장수진]

 내일을 위해 늘 준비하고 있어요!

 

 


장수진 회원에게 ‘회원의 하루’ 인터뷰를 청했다. 그러자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첫번재 반응인 “할말이 없다”가 돌아왔다. “현재 사회활동도 전혀 하지 않고, 집에서 애만 키우는데 무슨 할 얘기가 있겠냐. 좀 있다 활동을 시작하면 그때 하자”며 극구 사양했다. 또 “예전 인터뷰한 분들은 뭔가 있어 보이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다”며 재차 고사한다. 인터뷰 섭외할 때 모든 이들이 보여주는 순서다. 이런 말에 순순히 물러나면 ‘회원의 하루’는 단 한 번도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면 모두 술술 얘기 풀어나간다”고 꼬드긴 뒤, “그럼 언제 만날까”로 굳히기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점심 후 장소를 카페로 옮기자마자 총선과 종편 이야기를 꺼낸 후 챙겨온 말 보따리를 풀어놨다.  글_조영수 협동사무처장. 사진_이병국 회원

 

 

6살 된 아들 하나를 키우는 대한민국의 ‘평범한’주부 장수진 회원. 직장생활을 하다가 출산 이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작년 초부터는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고 있다. 올해 목표는 사회활동을 시작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단다. 장수진 회원은 나의 단과대 후배다. 2001년 단과대 학생회장과 부회장으로 한 해 동안 지지고 볶고 한 애증의 관계이고,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다. 일반적인 사무처 활동가와 회원보다는 조금 더 특별한 사이이기에 인터뷰로 마주 보는 것이 오히려 멋쩍었다. 그러나 어쩌랴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정말 자기 얘기를 쓸 거냐? 다른 사람 찾아봐도 된다”고 몇 번이나 말하고,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안 실어도 된다며 민망함을 드러냈다. 아마 장수진 회원이 소식지에 실린 본인의 사진과 이 글을 접하면 또 다시 쑥스러움에 몸부림칠 것이다.

 

청춘, 소중한 인연을 맺다
장수진 회원은 2004년 10월 민언련 회원이 되었다. 대략 11년이 넘었다. 하지만 2005년 회원수련회에 참가한 것을 빼곤 오프라인 행사 때 회원들과 얼굴을 맞대본 적 없기에 좀 더 상세히 장수진 회원을 소개해보겠다.


장수진 회원은 1998년 대학에 입학한 뒤 학내 TV 방송국에서 활동했다. 다른 학내 언론사들이 학교의 관리·감독 하에 있었던 반면, 장수진 회원이 활동했던 TV 방송국은 학생회비를 근간으로 활동하는 자치기구였다. 그런데 1997년경 부터 학생회 등 자치기구에 대한 학교의 간섭과 탄압이 심해지면서 스튜디오는 물론 공간마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연히 입학 후 제대로 된 활동을 벌이기 어려웠을 터. 다행히 2000년대 들어서면서 자치권이 어느 정도 부활하고 TV 방송국 활동도 제자리를 찾게 돼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TV방송국 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게 된 학생회로 활동의 근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2001년 단과대 부학생회장을 맡기도 했던 장수진 회원에게 그 당시 학생회 활동은 어떠했냐고 물었다. 장수진 회원은 그 대답으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선후배들에 대한 의미를 들려줬다. “영국에 유학을 갔는데 그 시절 사람이 아주 그립더라고요. 그러면서 단과대 선배들의 삶이 나한테 많은 자극이 되었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들은 나한테 ‘똑바로 살라’고 말해준 사람들. 지금 한국사회가 이러저러하니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는 사람들이었던 거죠. 그런데 영국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없으니까 어떻게 편하게 살까 하는 고민, 편한 것만 찾는 삶이 되더라고요”그에게 단과대 시절, 단과대 사람들은 추억이며 자극제였나 보다. 지금도 일 년에 두어 차례 모임 외에도 주요 집회에서 회동을 이어나가고 단체 카톡방에서 안부와 굵직굵직한 사회 현안을 수시로 공유하고 있단다.


말 나온 김에 유학 시절에 관해 물어봤다. 2003년 영국에서 1년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 후 다시 아일랜드에서 1년 6개월 총 2년 6개월을 보냈다. 장수진 회원은 아일랜드에서의 기억을 들려줬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는 버는 것과 동시에 틈틈이 자원봉사도 했다고 한다. 유학 시절이면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이었을 텐데 이미 자원봉사가 너무나도 대중적으로 활성화 돼 있었다는 것이다. 지역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 하루에 두세 시간씩 지역의 마을 도서관 같은 곳에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이런 도서관과 ‘아름다운 가게’같은 가게마다 수십 명의 자원봉사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함께 자원봉사를 했던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당시 “어디서 내가 이런 할아버지와 재미있게 얘기하며 일할 수 있을까?”라는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고 한다.

 

‘휴지기’라고 쓰고, ‘준비기’라고 읽는다
이렇게 학교와 유학생활을 마치고 생업전선을 나섰던 장수진 회원은 결혼과 뒤이은 출산으로 현재는 휴지기를 갖고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나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기도 했는데 여러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내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별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인데 20명씩이나 되는 아이들을 앉혀놓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것이지?”같은 고민이다. 게다가 무조건 진도를 빨리 빼달라는 원장을 만나면 그 고민이 더욱 깊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요즘은 가계에 보탬이 되는 경제활동도 하고, 생협이나 환경단체 등에서 여러 활동도 하려고 맘먹고 있다. 이런 활동에 더욱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 작년에는 바리스타와 제과·제빵 자격증도 취득했다.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꺼리’를 준비한 것이다. 그는 강북구가 아니더라도 오전 10시부터 4시정도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활동할 수 있을 시간대라면 어디든 소개해 달라며 원고에도 꼭 넣어달라는 적극성을 보였다. 가계에 도움이 되고, 보람도 찾을 수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장수진 회원이 이런 마음을 먹은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 주변 환경이 내 세계와 가치에 영향을 주는지 중요하기 때문에 올해부터는 이를 바꿔보려는 노력하고 싶다”고 했다. 비단 본인뿐만이 아니라 많은 전업주부가 세월호 등의 사건을 겪으며 “울고 분노하고 그러지만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거야. 그런 거 보면서 나도 똑같구나. 그래서 환경을 바꿔보려”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집회에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 꼭 나가려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장수진 회원은 웃으면서도 야무지게 “안 나가고는 못 베기지”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11월 14일 1차 총궐기에도 참여하기도 했는데. “가뜩이나 캡사이신 때문에 눈물이 나는데 백남기 님 사건까지 터져 눈물이 더 났다”는 감정도 전했다.

 

‘성공한 삶’이란?
이런저런 얘기가 돌고 돌아 인터뷰 말미가 되자 장수진 회원은 며칠 전 제주도 여행에서 찍어 온 사진을 보여준다. 랠프 왈도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를 엽서에 옮겨놓은 사진이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거짓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을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사진을 보여준 뒤 “선배 삶은 성공한 거지”라고 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후배가 준 ‘선물’인 거 같아 맘이 찡했다. 장수진 회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심으로 기특하고 고맙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본인의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사실에 꽤 부담스러워했지만 사실 민언련 회원 대부분이 평범한 것 같지만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것과 주위의 삶에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작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마음과 시도를 놓치지 않는 과정 자체가 값진 것이다. 그 마음으로 앞으로 더 큰 일, 더 많은 역할을 해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더 큰 ‘성공’을 이룰 것이다. 그리고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을 민언련 회원들이 함께 더 “성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의지와 위로와 자극이 되어주자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