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글]
"더 많은 의회와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전미희 이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정교과서 사태는 겉으로는 당정청 그들의 인식처럼 좌편향된 교과서와 왜곡된 근대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친박의 권력 유지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겨냥한 고도의 선거 전략으로서 이념대립 갈등을 부추기기 위한 노림수라는 평을 내놓기도 한다. 선거전략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들어맞는 것 같다. 11월 14일 국정화 반대 시민들, 노동자, 농민 등이 참여한 민중총궐기대회 이후, 전방위적으로 당정청은 폭력진압을 자행한 경찰의 적극 옹호와 홍보는 당청의 지지율 동반상승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대포 직사로 사람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의 지지율 상승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작금의 사태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의회가 자기 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들이라는 것이다.
1차 대전 이후, 파리 평화체제(베르사유 체제)는 유럽 전역에 걸친 의회제의 시작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짧은 자유주의 승리는 러시아 혁명과 공산주의 혁명의 망령이 서유럽을 덮쳤다. 유럽 대부분이 분열과 내전으로 치닫자 민주주의 가치는 사라졌고 각국의 지배자들은 반공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고, 민주주의는 그 다음이었다. 1929년 대공황으로 유럽은 급격한 우경화를 맞는다. 전간기의 민주주의는 점점 정치적 위기와 경제적 혼란기를 맞아 붕괴되었고, 민주주의 수호자는 너무 이상주의적이었고, 야심이 너무 컸던 반면 그 숫자는 너무 적었다. 헌법적 권리에 지나치게 집착한 반면, 사회적 책임에는 무관심했다. 그래서 유럽은 그들의 전통과 이질적이지 않은 권위주의라는 정치질서를 발견했고, 이를 사회·산업·기술 통제에 효율적 제도라고 생각했다. (참고; 마크 마조워, 《암흑의 대륙》, 2009)
전간기 유럽을 고스란히 한국에 대입 하면 많은 부분이 닮았다. 1945년 해방이후 외부세력으로부터 주워진 우리의 체제는 민주공화정이다. 짧은 자유주의 승리는 남북대치상황이라는 냉전과 맞물려 이념갈등의 배경이 되면서 반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박정희에서 시행된 국가주도경제개발은 사회·산업·기술 통제에 효율적 제도 전략으로 간주되면서 민주주의를 알기도 전에 모든 가치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그렇게 주도된 경제개발은 박정희의 죽음으로 종지부를 찍는 듯 했지만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건 아니다. 여전히 군부는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87년 민주화 운동 세력은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구호로 대통령 직선제 쟁취에 온 힘을 다했지만 완성된 민주주의는 아니었다. 최소한의 체육관 선거만을 막아보자는 직선제 쟁취가 곧 민주주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87년 이후 민주화 세력은 너무 이상적이었고, 야심이 컸던 만큼 그 숫자는 너무 적었다. 그리고 사회적 책임에는 미숙했다.
국민의 정부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가 안착되었다고 본 민주화 세력의 순진한 착각은 MB정부 들어서면서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을 목도한다. 10년의 정권 공백기를 타고 권위주의 정권은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무기삼아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무기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세대의 결집을 위해 이념갈등을 증폭시키면서 아베가 그렇게 했듯이 역사전쟁을 자신들의 핵심전략으로 삼은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현 정권이 선거를 통해 선택된 정부라는 것이다. 국사편찬위원장 김정배는 박근혜와 세계관을 공유하지는 않지만 상황을 타면서 출세지향 실행자로서 국정교과서를 주도하고 있는 확신범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데 야당은 그 연결고리를 끊을 전략전술도 없어 보인다. 지금의 야당은 좌도 우도 중도도 그 어느 곳으로부터도 선택을 받지 못하는 리더십 부재에 직면해 있고 똑똑한 대안도 갖고 있지 않아 보인다. 의회에서 야당으로서의 활력도 보여주지 못함에 따라 중도층은 어디에 마음을 둬야할지 모르는 상태로 오늘의 사태를 맞고 있는 것이다.
전간기 유럽 민주주의 위기는 ‘의회’가 재 구실을 하지 못했을 때,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 위기는 의회는 보이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의 입만 보이는 현 시점이 아닐까. 우린 민주주의의 무기력을 조장하는 세력에 동의하면 안 된다. 권위주의 정권은 국정화 사태로 세대 간 갈등을 통해 최대한 이익을 취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의회를 압박해 국민의 대표들 간의 합의를 통해 정책이 논의되는 ‘더 많은 의회’가, 의견조정을 위한 ‘더 많은 민주주의’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 전간기 : 1차 세계 대전 종결에서 2차 세계 대전 발발까지(대략 1919년~1939년)
사과드립니다.
지난 12월 호 <여는글 l 더 많은 의회와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전미희 이사)를 교정‧교열하는 과정에서 필자가 원고에서 의도한 정확한 글의 취지를 훼손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또한 편집 시간에 쫓겨 교정원고에 대해 필자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날자꾸나 민언련> 편집위원회는 보다 신중하게 원고를 대하고 편집원칙을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위 글은 원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