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노래, 세상을 바꾸다」 노래는 기억한다(김창남)
등록 2015.11.2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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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노래, 세상을 바꾸다」(유종순 저)

노래는 기억한다

 

 

 

김창남(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문화대학원 교수)

 

  삶이란 말하자면 기억의 연쇄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만큼 살고 기억이 사라지는 것만큼 죽어간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기억함으로써 삶의 영속성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노래는 기억을 유지 하고 현실 속으로 생환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삶의 한 순간을 함께 했던 노래를 통해 우리는 그 시간을 기억한다. 노래가 기억되는 한 그 순간의 삶은 결코 잊힐 수 없다.


  권력자들이 5.18 추도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제시키려 하 는 것은 단지 그들이 예술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거나 협량한 자들이 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광주’로 상징되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자 체를 무력화하고 지워버리고자 하는 그들의 치밀하고 집요한 시도의 일부이다. 우리가 노래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 기억을 통해 결코 잊 혀서는 안 될 역사를 지키고 보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가 말한 것처럼, ‘권력에 대한 모든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며, 노래는 기억 투쟁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가령 우리 귀에도 익은 ‘라 쿠카라차La Cucaracha’란 노래가 있다. 한 때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던 이 노래가 멕시코 혁명 당시 농민 군이 부르던 노래이며, 멕시코 혁명의 영웅 판초 비야를 기리는 노래 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요한 건 멕시코 민중이 이 노래 를 기억하는 한 멕시코 혁명과 판초 비야의 역사는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우리 귀에 익은 또 하나의 라틴 노래 ‘관타나메라 Guantanamera’는 어떤가. 이 노래는 쿠바 독립의 아버지인 호세 마르티의 시를 원전으로 한 민요이다. 이 노래가 살아 있는 한 스페인 식민통치 아래 고단한 삶을 영위하며 끈질기게 투쟁했던 쿠바 민중의 역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렇게 U2의 ‘일요일, 피의 일요일 Sunday, Bloody Sunday’은 북아일랜드의 유혈분쟁과 IRA의 무장투쟁, 영국의 폭력적 탄압이라는 역사를 환기시키고,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의 노래들은 군부 독재 시절 그리스의 민주화 운동을 기억나게 한다. 우리의 기억 투쟁에서 노래는 곧 역사가 된다.


  이 책은 그렇게 역사가 된 노래들을 보여준다. 노래들을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의 역사를 알게 해 준다. 노래를 듣고 부르는 행위가 그저 순간의 감정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무게를 담은 실천일 수 있음을 이처럼 잘 보여주는 책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여기 담긴 노래들을 다시 꺼내 들어보자. 노래들 속에 담긴 역 사를 알고 들을 때 노래를 듣는 우리의 감동도 달라질 것이다.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난, 분명히, 그렇게 믿고 있다. 우리가 함께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역사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우리가 노래를 잊지 않는 한 그 역사 또한 결코 사라 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이 책의 저자 유종순 씨는 1993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바 있다. 현재 작가와 문화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작가로는 1986년 무크지 《문학과 역사》, 1988년 계간 《 창작과비평》 복간호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고척동의 밤》이 있으며, 한국작가회의 평화와통일위원회 위원장, 이사 등을 역임했다. 버마(미얀마)의 민주화에 관심있는 작가들과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모임’, ‘버마 사랑’ 등을 결성해 매년 버마 문인들을 초청하여 문학 교류를 하고 있다.

  문화평론가로는 1990년대부터 ‘유요비’라는 필명으로 대중음악에 대한 평론 활동을 해왔다. 《북토피아 웹진》, 월간 《법무사저널》, 《통일샘》, 월간 《인권연대》, 《시민의 신문》 등에 세계의 저항음악을 연재하면서 <오월가>의 원곡이 미셀 폴나레프의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임을 밝혀냈다. 2004년 이라크전쟁 2주년을 맞아 CBS 라디오 ‘시사자키’에서 2개월간 반전평화의 노래를 해설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