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속으로] ‘듣기’의 즐거움 알려준 음악 예능(2015.10.)
등록 2015.10.08 17:36
조회 309

 

 

TV속으로 | MBC <복면가왕>, JTBC<히든싱어>에 대한 모니터 보고서

‘듣기’의 즐거움 알려준 음악 예능

 

 

 

최근 음악 순위 프로그램은 음악을 들려주기보다는 보여준다. 노래만이 음악의 전부가 아님을 감안해도 음악 순위 프로그램은 과도한 신체 노출과 거기에 집중하는 카메라 워크, 시각을 어지럽히는 광학적 무대효과 등 음악과 무관한 시각적 자극들로 가득하다.
이런 음악 순위 프로그램과는 다른 구성으로 독보적인 지위를 구축한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MBC <일밤-복면가왕>과 다가오는 10월 첫째 주 네 번째 시즌을 앞둔 JTBC <히든싱어>이다. 이 두 프로그램은 과도한 시각적 자극을 지양하면서 소리만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보는 음악 예능’이 아닌 ‘듣는 음악 예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복면가왕>과 <히든싱어>가 나타나게 된 배경과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가수의 실력을 중심에 놓게 된 음악 프로그램
가요톱텐 등 최신가요들에 대한 순위를 매기는 형태의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던 음악 프로그램에 다양한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 후반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 시작이었다.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초라 할 수 있는 M-net <슈퍼스타 K>는 2009년 첫 선을 보였다. 일반인 실력자들의 놀랄만한 노래 실력은 프로그램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고 이후 <케이팝 스타>등 지상파까지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들면서 무명의 실력자들이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다.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예능적 요소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가창력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2011년 MBC <나는 가수다>는 아마추어 참가자들이 아닌 이미 검증된 프로가수끼리 경쟁하는 또 다른 시도였다. <나는 가수다>는 지상파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주말 예능으로 편성한 첫 사례라는 점, 대중으로부터 잊힌 실력파 가수들의 무대가 자주 방송되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실력파 가수들을 경쟁하게 하는 <나는 가수다>의 매력은 경쟁이 과열되면서 독이 되었다. 가수들은 높은 득표를 받을 수 있는 경연 중심의 곡을 선정하고 편곡 방향도 천편일률적으로 변해갔다. 지나친 경쟁 스트레스도 시청자에게 피곤함을 느끼게 했다. <나는 가수다>는 결국 시즌3에서 막을 내렸지만, 가수들끼리 음악성을 겨루는 콘셉트의 성공 사례로 남았다.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과 경연 프로그램은 출연자의 노래 실력을 중심으로 시청자의 청각을 통해 감동을 주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음악 순위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되었다. <복면가왕>과 <히든싱어>는 이 연장선상에서 또 다른 변화를 시도했다.

 

자꾸만 눈을 감게 되는 예능 <복면가왕>, <히든싱어>
MBC <복면가왕>은 복면을 한 사람이 나와 노래를 한다. 노래하는 사람은 기존 가수뿐 아니라 개그맨, 연기자, 운동선수 등 다양하다. 외모만으로는 전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없다. 관객과  시청자들은 복면을 한 가수의 노래만 듣고 승부를 가려야 함은 물론 가수가 누구인지 궁금하기 때문에 목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JTBC <히든싱어>는 원조 가수와 소름끼칠 정도로 비슷하게 모창을 하는 일반인 출연자들이 각자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 한 소절씩 노래를 나눠 부른다. 시청자와 관객은 베일에 가려진 채 노래하는 그들 가운데 원곡을 부른 가수와 모창자를 가려내야 한다.

 

<복면가왕>과 <히든싱어>는 화려한 무대 연출 없이도 시청자를 TV 화면 앞에 붙잡아둔다. 시청자는 보는 즐거움이 아닌 듣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듣는 즐거움 외에 다른 인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복면가왕>의 출연자는 대부분 방송 직후 인터넷에서 누구인지 밝혀지지만, 방송 출연자들은 여전히 이를 모르는 체 한다. 시청자들은 가수를 맞추는 재미와 함께 가수가 누구인지 알면서 속아주는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고정 가왕’이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던 ‘클레오파트라’ 김연우 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JTBC <히든싱어>는 원조 가수와 그의 모창자로 출연한 팬 사이의 훈훈한 관계가 색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단순히 모창자를 가려내는 것이 아닌 팬과 가수 사이의 우정을 통해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히든싱어>는 시즌 3까지 올 수 있었다. 


음반 시장의 변화도 이런 변화에 한몫 해
스트리밍 서비스도 <복면가왕> 및 <히든싱어>의 성공과 무관하지 않다. 제작에 최소 1년 이상이 소요되는 정규 앨범 발표를 주기로 가수들이 활동했던 대중음악시장은 200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싱글앨범 중심의 음원시장으로 개편되었다. 음원 판매 수익의 극히 일부만이 가수와 제작사에 돌아가는 현재 음원 배분 구조 속에서 가수들은 이전보다 빠른 주기로 음악을 양산하는가 하면, 비슷한 멜로디의 후크송에 치중했다. 음악의 질보다는 노출 횟수와 홍보가 성공을 가늠하게 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풍토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고착화된 인기 대중음악의 조류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 인기는 없지만 실력이 좋은 가수를 찾기 마련이다. <복면가왕>과 <히든싱어>의 성공은 이런 배경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프로그램에서 감동을 준 곡들은 후크송에 지친 대중을 사로잡았고,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듣고 싶은 곡을 실시간으로 찾아들 을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특성상 방송의 성공은 곧 방송을 탄 노래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복면가왕>과 <히든싱어>에 나온 오래된 노래들이 음원 차트를 휩쓰는 이른바 ‘음원 차트 역주행’이라는 현상도 생겼다. 


 물론 두 프로그램이 고착화된 음악 프로그램의 형식이나 대중음악 시장에 두드러지는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또한 무명의 음악인이 일약 스타로 만드는 프로그램은 이 두 프로그램 외에도 많다. 그러나 두 프로그램이 ‘음악 예능’을 표방하며 시청자의 귀에 집중하고 다양한 가수와 음악의 존재를 알렸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질 좋고 다양한 음악을 원하는 시청자 욕구에 부합하는 시도로서 ‘보는 음악’이 아닌 ‘듣는 음악’을 다루는 음악 예능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