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류성헌의 공간으로 읽는 영화산책 ④ <인사이드 아웃>(2015 9월호)
등록 2015.09.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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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류성헌의 공간으로 읽는 영화산책 ④ <인사이드 아웃>

<인사이드 아웃> 누구나 한번은 상상한 공간

 

류성헌 회원

 

 

 


인사이드 아웃은 사람의 마음 속을 공간화하고 그 속에 살고있는 인격화된 다섯가지 감정의 관계맺음을

통해 한 소녀의 성장을 보여주는 일종의 우화다. 이야기 속에 표현된 공간은 크게 소녀를 둘러싼 외부공

간과 마음속에 펼쳐진 내부공간이다. 그 중 외부공간은 소녀가 유년기를 보낸 미네소타와 사춘기를 맞이

하는 샌프란시스코 두 공간의 대칭구조를 보여주며, 내부공간은 그녀의 다섯마음-기쁨(Joy),

슬픔(Sadness), 버럭(Anger), 까칠(Disgust), 소심(Fear)-이 살고 있는 본부(Control tower)와 본부 바

깥 기타공간들로 나뉘어져 소녀의 감정과 인격을 형성한다.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

이유는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봤을 법한 이야기를 픽사의 기술력이 창조해낸 근사한 비쥬얼과 잘 빚은

이야기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함께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던 12살 소녀 라일리. 전원을 뛰어놀며 겨울이면 모두 함께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던 그녀에게 큰 변화가 찾아온다. 아빠의 사업으로 서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게 된 것. 새로운 환경은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지만, 특히 소녀 라일리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맞는 시련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다섯 감정과 그녀의 인격 형성을 위한 수많은 업무를 수행하는 각 직종의 작업자들에게도 처음 찾아온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이렇게 모두가 상황대처를 위해 분주한 와중에 가장 핵심 감정을 담당하는 ‘기쁨’과 항상 뒷전에 있어야 한다고 치부되던 ‘슬픔’이 본부를 떠나 그녀의 주변기억 공간을 떠도는 동안 라일리는 큰 감정의 기복을 겪게된다. 이야기는 ‘기쁨’과 ‘슬픔’이 본부로 복귀하고자 분투하는 이야기와 이로 인해 빚어지는 ‘라일리 일병 구하기’ 두 축이 서로 교차하며 전개된다. 디즈니의 픽사답게 이야기는 큰 일탈없이 해피앤딩으로 끝나지만 핵심은 그 행복한 결말보다 큰 감정의 기복을 겪은 후 성장하는 라일리의 성장통에 맞춰진다. 즉, 이 영화는 한 소녀가 유년기를 끝내고 아이에서 소녀로 변화하는 그 지점을, 마음속 공간의 형상화를 통해 매우 잘 그려낸 한편의 훌륭한 성장영화이다. 그럼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 라일리 외부의 공간과 내부의 공간이 어떻게 그녀의 생활과 의식의 변화를 묘사했는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외부공간
미네소타와 샌프란시스코는 여러모로 반대되는 아이콘이다. 외부공간의 주요 테마인 하키의 공간은 호수

와 실내 링크로 나뉘어진다. 겨울의 호수는 거칠것 없이 펼쳐진 하늘을 배경으로 넓은 자연의 한가운데

위치해 수평적 열린 공간을 연출하는 반면 인공적 구조물인 실내 링크는 규격화된 경기장과 분명하게 구

분된 관람석으로 규정지어진 닫힌 공간이다. 하키의 공간은 단순히 전원과 도시로의 구분을 넘어 자유로

움으로 가득한 유년시절에서 여러가지 지켜야할 규범과 사회화로 이행하는 라일리의 상태를 보여준다.

어린시절은 그 자체를 즐긴다. 경기, 승부, 우정 그 자체가 즐겁다. 하지만 사람의 사회화는 그 행위에

응원, 진로, 우정을 넘어서는 관계 등 여러가지 부수적 요소가 첨가되고 때로는 그것들이 본질에 앞서기

도 한다. 그녀의 생활은 전원적 열린공간에서 도시적 닫힌공간으로 이행되는 중이다.

 

가족이 생활하는 집 또한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미네소타의 집은 정원이 있는 단층의 수평적인 구조.

어린 시절 라일리에게 이 집은 거침없이 뛰어놀고 상상속 친구 빙봉을 만들며 용암 계곡을 넘나드는 넓

은 모험의 왕국이었다. 또한 현관 밖 구릉의 정원은 울적할때 올라갈 수 있는 나무가 있는 포근한 공간

이었다. 반면 새로 이사한 샌프란시스코의 집은 뜰도 없는 좁은 도로에 면한 주차장을 포함 3개층의 좁

고 수직적인 공간이다. 심지어 현관은 극단적으로 좁고 높은 비율로 열려져 수직적인 느낌을 극대화 시

킨다. 창은 모두 최소 크기로 열려있어 내부는 어둡고 아주 네거티브한, 새로운 도시 속 일상이 빡빡하

고 답답할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불러일으키고 예상대로 잘못 배송된 이삿짐, 향수병, 학교생활의 부적

응 등 다양한 상황을 일치시킨다.

 

내부공간

 


내부공간은 논리의 총 본산인 두뇌의 공간화 답게 극도로 기능적이며 직관적이고 합리적이다. 감정을 조

절하는 본부는 마치 해자(垓字)로 둘러싸인 고성(古城)을 보는 듯이 외부의 접근이 힘든 매우 독립적인

공간으로 구축되어 있고 본부를 중심으로 그녀의 인격을 형성하는 몇개의 섬들이 기억의 중추에 연결되

어 존재한다. 본부의 구성요소(다섯가지 감정)들은 그녀의 본성이기에 구성원의 변화가 없지만 주변의

섬들은 라일리의 성장에 맞춰 붕괴되고 새롭게 구축되며 그 과정은 일생을 통틀어 몇번의 같은 변화를

거치게 될 것이다. 이 두가지 핵심요소를 둘러싼 마음의 외곽지역은 그녀의 기억들을 저장하는 거대한

도서관 같은, 마치 우리의 머릿속에 가득 차고 넘쳐 미로와 같이 나열된 과거의 기억들을 보는 듯한 아

카이브 공간이 펼쳐져 있고 그 외에 꿈을 만드는 스튜디오, 내부의 규율을 어겼을때 감금되는 감옥, 이

모든 시설을 일주하는 기차 교통망 등 인간의 두뇌를 하나의 잘 조직된 계획도시로 묘사하고 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어둡고 지저분해 보이지만 마치 가정의 화장실 처럼 가장 중요한 공간이 본부와 외곽지역

사이에 위치한 깊은 계곡 밑의 쓰레기장. 오래된 기억은 작업자들에 의해 선별적으로 추려져 그때 그때

쓰레기장으로 버려지며 라일리의 유년시절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많은 기억들도 그녀의 성장에 맞춰 쓰레

기장에서 잊혀진다. 이것은 버려지는 자체로 매우 슬픈 일이지만 새로운 기억을 채워넣기 위해 필수적으

로 행해지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기에 라일리의 미래를 위해 쓰레기장 탈출을 포기하는 빙봉의 선택은 이

영화의 나름 가장 의미있는 장면으로 꼽을만 하다.

 

디즈니에 인수된 픽사의 최근 작품을 보면 예전의 명성에 비해 위기로 느껴질 만큼 질적인 면에서의 가

뭄에 시달렸다. 그래픽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좋은 스토리가 빠진 어지간한 시각적 효과로는

대중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고 그것은 얼마전 개봉한 쥬라기 월드에서 다시 한 번 증명

된 바 있으며, 이는 픽사의 경영진 역시 심각하게 고민한 화두였고 결국 시나리오에 많은 공을 들인 이

번 작품을 통해 이를 어느정도 극복한 듯 보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탄탄한 기본기가 빠진 창작물은

사랑받지 못했고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인사이드 아웃은 픽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몇번의 이정표 중 한 작

품으로 자리매김 하지 않을까 싶다. 목소리 연기가 궁금해 둘러보니 의외로 잘 알지 못하는 연기자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아빠 목소리를 연기한, 한 때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우던 카일 맥라클

랜을 오래간만에 접하고 무척 반가웠다.

 

다섯 감정 중 단연 주연급인 ‘기쁨’은 항상 자신이 전면에 나서야 라일리가 행복하다고 믿었고 다른

감정들도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슬픔’과의 모험을 통해 인간의 삶은 기쁨만이 힘이 되는

것이 아닌 슬픔을 통해 감정을 추스르고, 화를 내며 억눌림을 해소하고, 조심성있게 때로는 불쾌한 감정

으로 위험을 피해가는 ‘조화’가 필요함을 알게된다. 우리의 마음은 각각의 감정들 조차 스스로를 알지

못하고 함께 성장해 나간다. 그리고 각자의 성격에 맞게 리더가 정해진다. 아마도 사춘기가 지난 라일리

의 리더는 더이상 ‘기쁨’이 아닐 수도 있다.
“당신들의 리더는 누구인가요?” 이 영화가 매일매일 성장하는 우리 각자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

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