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의 베스트 영화 44!(5)
44살에 뽑은 21세기 영화 44편 다섯 번째, 22위 - 18위
중위권에 오른 영화들을 소개한다. ‘이 멋진 작품들 순위가 겨우(!) 이 정도라니!’ 정해놓고도 마음이 불편하다. 20위 <서칭 포 슈가맨>은 강력하게 추천한다. 남아공, 구불구불 이어진 케이프타운 해안도로를 유유히 따라가는 오프닝부터 가슴이 뛴다. 영화를 본 후, 주위 사람을 이전보다 깊이 관찰하는 습관이 생긴다. 혹시 아나. 만날 얼굴 보며 쓸데없이 술이나 퍼마시던 사람이 ‘슈가맨’ 같은 슈퍼스타일 런지! -김현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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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위. 파이란 |
오랫동안 후유증을 앓는 영화. “세상은 날 삼류라 하고 이 여자는 날 사랑이라 한다.” 메인 카피가 영화를 그대로 말한다. 인천에서 삼류 양아치 신세를 면치 못하던 강재(최민식)에게도 꿈은 있다. 배 한 척 사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정착하는 꿈이다. 어느 날 배 한 척과 남은 인생 전부를 맞바꿔야 할 일생일대의 중대한 갈림길에 선다. 그리고 '파이란'(장백지)이라는 중국 여인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쓰레기 같은 인생이라도 사랑은 유효하다. 남자가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여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가슴에 사랑을 심은 건 바로 여자였다는 걸 남자는 잘 알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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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위. 쓰리 |
이토록 기묘하고 에로틱한 영화가 있을까! 베를린에서 동거하는 한나와 시몬은 문화예술을 즐기며 생활하는 커플이다. 겉으로는 안정적이고 평온하지만 둘 사이에 특별한 감정은 미약하다. 어느 날 한나는 우연히 아담을 만나 설렘을 느끼며 관계를 맺는다. 시몬도 아담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한다. 두 사람은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고 있다. 아담을 사이에 두고 한나와 시몬은 묘한 감정에 빠져든다. 대개 시간이 흐르면서 관계는 무뎌진다. 그렇다고 욕망이 사그라지는 건 아니다. “한 사람과의 관계에 모든 감정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생각은 폭력적이다. 인간의 감정이 가진 스펙트럼은 하나의 관계에 국한하기엔 너무 다양하고 풍부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감독 톰 티그베어는 이들의 미묘한 심리를 치밀하게 추적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심장이 쫄깃한’ 영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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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위. 서칭 포 슈가맨 |
1970년, 시스토 로드리게즈는 첫 번째 앨범 [Cold Fact]를 발표했다.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등 정상급 아티스트를 발굴한 거물 프로듀서 데니스 코피와 마이크 시어도어의 야심작이었다. 하지만 북미 음반 판매량은 고작 6장, 다음 해 발표한 2집도 결과는 최악이었다. ‘슈가맨’으로 불린 로드리게즈는 모든 이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졌다. “무대공연 중 사망했다.” 는 루머가 떠돌았다. 하지만 우연히 남아공으로 흘러간 그의 앨범은 수십만 장이 팔리며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슈가맨의 노래는 억압과 차별이 극심했던 남아공에서 젊음과 자유, 혁명의 상징처럼 활개를 쳤다. 미스터리한 슈가맨의 죽음, 어느 날 두 명의 열성 팬은 진실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관객의 바람대로 슈가맨은 남아공에서 팬들을 위해 특별 공연을 펼치고 일상으로 복귀한다. 평범한 삶, 아니 누구도 유지하기 어려운 소중한 일상으로. 남아공의 경이로운 열풍보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즐기는 로드리게즈가 훨씬 경이롭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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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위. 메종 드 히미코 (일본, 감독 :이누도 잇신 / 출연 :오다기리 조·시바사키 코우·타나카 민) |
게이들을 위한 실버타운 '메종 드 히미코'에는 갖은 사연을 가진 이들이 모여 산다. 암에 걸린 게이 아버지와 젊은 연인, 엄마와 자신을 떠나버린 아버지를 증오하는 딸.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제의에 사오리는 이곳에서 일을 돕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를 향한 차가운 증오는 옅어지고, 사람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외로움을 발견한다. 영화 중간 단체로 춤을 춘 후, 일반 여성 사오리는 아버지의 연인, 게이 청년 하루히코와 키스를 나눈다. 이 순간의 키스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어떤 여성 관객은 하루히코를 연기한 오다기리 조를 보느라 다른 내용은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렴. 메종 드 히미코가 외로운 사람들이 함께 모여 외로움을 치유하는 공간이란 걸 굳이 인지할 필요는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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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위. 디스트릭트9 |
남아프리카공화국 상공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은 요하네스버그 외곽에 있는 외계인 전용구역 ‘디스트릭트 9’에 임시 수용돼 28년 동안 인간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영화의 배경이 된 ‘9구역’은 실제로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으로부터 시내 중심지로 들어서는 양편에 큰 규모로 펼쳐져 있다. 다국적 미래도시 이미지에 가까운 요하네스버그이지만, 2003년 5월 9구역을 처음 바라봤던 느낌은 찬란하게 햇살이 쏟아지는 거리에 말라붙은 토사물 같았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아픈 잔해로 쓸쓸하게, 우두커니 방치됐다. 영화는 당시의 이곳을 고스란히 반추했다. 2009년과 2012년 다시 이곳을 지날 때 레드, 블루, 옐로우로 덧칠하고 구획하고 정연해진 광경이 유쾌하진 않았다. 만리타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박탈과 이별이 진동했으리라. 9구역은 영화조차 슬픈 SF일 수밖에 없는 처연한 운명의 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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