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토달기] 미군의 탄저균 반입 관련 5개 신문 모니터(2015 8월호)
등록 2015.09.0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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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토달기]미군의 탄저균 반입 관련 5개 신문 모니터

조중동의 말뿐인 ‘안보지상주의’

 


김승민(신문모니터위원회 회원)

 

지난 5월 28일, 주한 미군 사령부는 미국 본토에서 오산 공군기지로 살아 있는 상태의 탄저균이 운송되는 사고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탄저균은 치사율이 95%에 이르는 고위험 물질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비활성화된 상태에서 실험하거나 옮기는데, 이번에는 본토 생화학 시험소의 부주의로 활성화된 표본이 세계 곳곳의 미 주둔 지역에 보내졌다고 설명했다. 미군 측은 “노출된 22명의 요원 중 감염자는 없으며, 탄저균 표본은 안전하게 폐기했다”고 말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치사율이 100퍼센트에 달하는 위험 물질이 조용히 국경을 넘나들었던 사실을 우리는 당사국의 발표를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환경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우리 정부는 배제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주권을 침해당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모니터위원회는 언론이 어떤 관점에서 이 사안을 다루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5개 일간지의 보도 태도를 모니터했다.

 

조중동의 ‘실수·괴담·북한’ 타령

미군 사령부가 성명을 발표한 이튿날인 5월 29일, 조선·중앙·동아일보, 소위 ‘조중동’의 보도 제목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美軍 실수로… 살아 있는 탄저균 배달>(조선, 10면, 양승식), <미군, 오산기지에 살아있는 탄저균 실수로 배송>(중앙, 10면, 채병건), <미군, 오산기지에 탄저균 잘못 배달>(동아, 16면, 이승헌). 바로 ‘실수’라는 단어이다. 이들은 이번 사건이 단순 행정 실수였다는데 무게를 두며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던 점을 강조했다. 이 중에서도 중앙일보는 미 국방부와 주한미군의 주장으로 완전히 채워져 있어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그나마 사설을 통해 기본적인 정보 공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중앙일보는 끝내 침묵을 고수했다.

 

 

이후 보수 언론들의 보도는 크게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괴담’이 그 첫 번째이다. 포문은 중앙일보가 <“미군 탄저균 탓”… 메르스보다 빠르게 번지는 괴담>(6/1, 2면, 유성운·김민관·박병현) 기사에서 열었다. 메르스 확산 사태에 “쇠고기 파동 때처럼 출처 불명의 주장들이 퍼지”고 있고, “그 중에서도 주한미군과 관련된 괴담이 많아… ‘아고라’에는 각종 탄저균 괴담들이 상위에 올라 있다”며 괴담 유포자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조선일보도 <“모바일서 판치는 허위정보, 바로 대처할 비상망 구축을”>(6/9, 14면, 신동흔)에서 메르스 관련 인기 검색어에 ‘메르스 탄저균 증상’이 포함되었다며 특정 음모론에 많은 사람들이 노출되었다고 강조했다. 근거 없는 허위 사실 유포는 마땅히 지양해야 할 일이지만, 이들 신문이 탄저균 반입 자체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괴담 처벌에만 핏대를 세우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본질을 호도하려는 듯 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두 번째 키워드는 바로 ‘북한’이다. 당초 미국은 북한의 생물학 무기 보유를 강조하면서 한국에서의 탄저균 실험의 당위성 설명을 갈음하려 한 바 있다. 동아일보는 한 생물학 교수의 칼럼을 게재하면서 이를 뒷받침하였다. <‘메르스 불안’이 새삼 우리에게 일깨워 준 점>(6/10, 김익환/고려대 교수)을 보면, “이번 사고를 통해 밝혀진 것은 북한이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생물무기에 대해 미국이 주기적으로 훈련하고 있다는 점”이라는 다소 생경한 논리의 주장이 실려 있다. 북한군이 다량의 생물학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미군은 당연히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배달 사고의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쉽게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생물학적 사태에 대비한 범국가적 체계를 갖추는 것이 급하다”라는 강력한 주장으로 글은 끝난다. 조선일보도 <北, 13종 생물학무기 10일내 무기화 가능>(6/17, 8면, 유용원)에서 북한의 생물학 전력을 설명한 국방부의 자료를 자세히 보도했고, 중앙일보도 <한민구 “북, 천연두 등 13종 생물학 무기 보유”>(6/17, 8면, 장세정) 기사를 통해 미군 실험의 불가피성에 힘을 보태는 모양새를 보였다.

 

한겨레의 고군분투

이번 사안에는 한겨레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첫 보도인 <주한미군, 한국에 통보 않고 맹독성 탄저균 반입해왔다>(5/29, 3면, 김지훈·김양중)에서 사안의 본질이 ‘무단 반입’이었음을 정확히 짚어냈다. 미국이 이전부터 탄저균을 계속 반입해 왔으며, “미군 쪽은 정확한 실험 목적이나 들여온 탄저균의 양, 얼마나 자주 들여오는지의 의문에 대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측의 사과 사실만을 보도했던 보수 언론과 대비되는 점이다. 한겨레의 문제 제기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이어졌다.


 


첫 번째로, 한겨레는 <미군 맘대로 위험물 반입 한국이 유일>(5/30, 5면, 박병수)에서 문제의 뿌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히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논의를 제기했다. 미국이 한국에 보낼 물질의 위험성을 임의로 판단할 수 있었던 배경은 SOFA 규정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 개정해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튿날 <미국, 탄저균 배송 사태에 ‘말뿐인 사과’>(6/1, 6면, 박병수)에서도 “카터 장관이 약속한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미군 군사화물을 세관이 검사할 수 없도록 한 소파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이후 <탄저균, 근본대책은 한-미 소파 개정이다>(6/9, 이장희/한국외대 교수)를 실음으로써 이런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 글은 “한-미 소파에는 위험 무기의 반출입, 군사기지의 사용 등에 대해 당국에 미리 협의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 미-일 소파나 독일 협정처럼 사전 협의 조항을 신설·보완해야”라는 논지를 세워 한미 소파의 불평등성을 지적하고 개선을 역설하였다.

 

두 번째로는, 적극적인 탐사 보도이다. 미군 사령부는 사고 발표 성명에서 이번 실험이 처음 이루어진 것이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한겨레는 <미군 “첫 실험”이라지만… 17년 전부터 오산에 탄저균 실험실>(5/30, 5면, 박현)에서 미군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이 이미 1998년에 현재의 탄저균 실험실을 갖추고 병력에게 백신을 공급했다는 사실과 우리 국방부 관계자의 증언, 미국 국방부 관리의 인터뷰 내용 등 여러 미심쩍은 부분을 들어 이전에도 실험이 있어 왔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전세계 미군 생화학전 전술, 한국을 실험장 삼았나>(6/4, 6면, 김지훈)를 통해 한국을 생물학 실험 장소로 선택한 ‘주피터 프로그램’의 존재를 밝혀냈다. “미군이 생화학 전투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한국을 실험실로 삼고 맹독성 물질을 마음대로 들여오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한겨레의 이 같은 열정적 보도와는 달리 경향은 조·중·동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보도량을 보였다. 사건 직후 <탄저균 반입을 정부는 모르고 있었다니>(5/30, 사설)을 통해 주권 침해 실태를 비판하였으나 후속 보도가 없었다. 총 기사 건수가 네 건인데, 위 사설과 당일 보도 기사를 제외한 두 건은 한국 외에 또 어느 나라에 탄저균이 보내졌는지에 대한 기사 정도로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조중동, 진정한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매향리 사격장 문제·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녹사평역 벤젠 유출 사건 등 굵직한 현안과 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했던 지난 2001년, 한국에서의 강한 반미 기류를 우려한 미국은 곧바로 67차례의 오염 물질 사고를 인정한다는 요지의 내사 결과를 발표하고는 논란을 매듭지었다. ‘내사’였기에, 모든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던 우리의 국가권력은 끝끝내 현장을 직접 들여다보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거려야 했다. 그로부터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는 똑같은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 상황이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국민은 알 수 없는 상황, SOFA를 방패삼아 언제나 당당한 미국의 태도, 그런 미국 앞에 무기력한 정부,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침묵하는 언론. 이것이 14년 전과 지금을 하나로 꿰는 사태의 본질이다. 미국 국무장관이 직접 사과했는지의 여부나 세계 몇 개 나라에 탄저균이 배달됐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언론의 주요 사명인 알 권리 보장이란, “국민들이 꼭 알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공적 정보를 대신하여 수집하고 보도하는 사회적 책임을 말한다”.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이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정보에 목말라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들을 외면하며 언론은 또다시 본연의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보다 중한 공적 정보라는 것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보수 가치’를 지향한다는 유력 언론들이 메르스라는 먹구름 뒤에 숨어서 별 일 없는 것처럼 쉬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위협이 빤히 보이는 상황 앞에, 평소 안보지상주의를 표방하며 준엄한 보수를 자처하던 그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사회적 논의가 지나치게 없었다는 점이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물론 과소 보도를 한 언론에게 있을 것이다. 언론에게 직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재주는 없지만, 열띤 보도를 통해 국민적 관심을 끌어낼 힘은 있다. 이번 사건마저 2001년처럼 서서히 잊혀진다면 비슷한 사고가 또 생기리라는 것을 우리는 반복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언론이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