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회원 인사] 느리게, 아주 천천히 세상은 바뀌어간다.(2015 7월호)
등록 2015.07.0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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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아주 천천히 세상은 바뀌어간다.

 

김정만 회원

 

고등학교 시절 나의 꿈은 방송국 PD였다. 힘들게 공부하던 시절 유일한 나의 친구는 라디오 음악방송이었고 나도 누군가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해서 들어간 대학은 나의 환상과 낭만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나의 대학생활은 눈물과 좌절, 환희와 감동이 교차하는 스포츠의 역전승부와 같이 극적이었다. 시대와 역사의 한 가운데 서서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명감과 희생정신은 우리를 흥분시켰고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젊은 날은 지나갔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나와 가장 친했던, 그리고 언제나 거리에서 함께 했던 친구와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 한 기억이 난다. “야 아무개야 너 대학을 다시 다니고 싶지 않니? 난 못해 본 게 너무 많아.” “나도 그래” 4년 장학금을 받고 고향에서 수재 소리 들으며 서울로 올라왔던 그 친구는 단 한 번도 그 장학금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전공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하며 생활인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그 시대를 살았고 지금은 지긋한 40, 50대가 된 우리 세대들은 마음속에 이러한 소박한 자부심과 긍지가 있다. 우리의 노력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밝게 만들었으며 앞으로도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었다.

 

졸업 후 세상의 어려운 풍파와 맞서 싸우며 무수히 많은 선거를 경험하며 깨달았던 것은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는 뒤로 후퇴하기도 한다는 엄정한 현실이었다. 우리 자식들은 통일된 한국에서,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는 가운데 군대를 가야하는 현실은 없으리라는 소망이 있었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념의 대립은 20세기에 이미 끝났지만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구시대의 낡은 사고방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심지어는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집권을 연장하려는 정치세력도 존재한다. 적어도 한반도의 시계는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거기에는 여론을 만들어가는 언론의 역할도 크다. 안보상업주의에 기반한 보수언론들의 보도행태는 먼 훗날 역사책에 기록될 수 있을 정도로 퇴행적이다. 상식과 합리에 근거한 여론형성보다는 자본의 논리에 기초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익집단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생존을 위해 매체의 다각화를 꾀하면서 진화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은 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가 생활적으로 녹아들어가 삶의 현장 곳곳에서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최종 지향점은 정치적 공간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결국 각자 사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상식과 합리적 수준에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지향하며 열심히 사는 수밖에. 살아보니 나하나 온전히 살아내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다. 목소리가 큰 사람일수록 그 목소리대로 살기가 더 어렵다. 지역과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을 똑바로 뽑는 것, 나에게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를 올바로 분별해서 걸러내는 것. 이것만 잘해도 우리가 원하는 세상으로 가는 길은 열린다. 그런데 명심할 것은 빨리는 안 된다는 사실. 느리게 아주 천천히 그렇게 세상은 바뀌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