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44살에 뽑은 21세기 영화 44편 두 번째, 37위 - 33위
등록 2015.04.2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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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의 베스트 영화 44!(2)

44살에 뽑은 21세기 영화 44편 두 번째, 37위 - 33위




얼마 전 TV 한국영화특선에서 <시>를 다시 봤다. 2010년 극장에서 본 후 5년 만이다. 그때와 느낌이 달라 이미 써놓은 영화 소개 글을 고쳤다. 140분 내내 주인공 미자를 연기한 윤정희 씨를 좇았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말하던 장면이 뭉클하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29회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의 관록에 감동한 건 물론이요, 최근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 내내 떠올리던 나에게 미자의 감정이 고스란히 이입됐다. 확실히 영화는 나의 현재 처지와 밀접하다. 기쁘든 슬프든 동요하는 마음을 가지런히 접어준다. 

37위에서 33위에 오른 영화 다섯 편은 담담하고 뭉클하고 아련하며 솔깃하다.   -김현식 회원



 

37위. 수영장 
(일본, 감독 : 오오모리 미카 / 출연 : 고바야시 사토미·모타이 마사코·카세 료)

 4년 전 가족을 떠나 태국 치앙마이에 머무는 엄마 쿄코를 만나기 위해 딸 사요가 찾아온다. 
“엄마는 그때 왜 그렇게 우리를 떠나버렸어?” 쿄코는 차분하게 대답한다.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살아가는 데 우연이란 건 없어. 매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 가는 거야.”
쿄코의 말처럼 우리의 하루하루는 선택과 결정의 반복이다. 그것이 좋은 선택일 수도 부적절한 결정일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믿는 것이 곧 삶의 진실이다.
 

 36위.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아르헨티나, 감독 : 월터 살레스 / 출연 :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

 영화는 평범한 의대생이었던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1928~1967)를 훗날 세상을 바꾼 혁명가로 이끌었던 스물 세 살의 특별한 여정을 그렸다. 카메라는 8개월 동안 모터사이클을 타고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며 청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좇는다. “삶은 고통이에요.”(실비아) “네, 정말 엿 같죠. 매 순간 숨쉬기 위해 싸워야 하니까.”(체)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 온갖 부조리들을 겪으면서 청년의 가슴에는 뜨거운 피가 솟는다. 실화를 다룬 영화 배역은 실제 인물과 일단 외모가 닮았다. 체 게바라로 열연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다른 외모(별도 특수 분장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젊은 시절의 체를 고스란히 표현했다.
 


 35위. 
(한국, 감독 : 이창동 / 출연 : 윤정희· 이다윗· 김희라· 안내상)

극중 미자(윤정희)는 어느 날 동네 문화원에서 우연히 '시' 강좌를 수강하면서 난생 처음으로 시를 쓴다. 시상을 떠올리기 위해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에서 전에 몰랐던 아름다움을 찾는다. 그리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도 기억했다. “마루에 햇빛이 비치고 커튼은 언니의 반 정도를 가리고 있어요. 언니는 ‘미자야 이리와’ 하고 날 부르고 있어요. 언니는 내가 정말 너무 이쁜가봐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이쁜 것 같은 표정으로 ‘미자야’ 하고 불러요. 나를요. 나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담담하게 미자를 연기한 배우 윤정희, 그녀가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기를 바랐는데 불발에 그쳤다. 노배우들의 관록이 묻어나는 열연을 기대한다.
 


 34위. 우리도 사랑일까 
(캐나다, 감독 : 사라 폴리 / 출연 : 미쉘 윌리엄스·세스 로건·루크 커비)
 사랑하지만 더 이상 두근거림은 없는 결혼생활을 보내고 있는 결혼 5년차 여성이 느끼는 공허함과 새로운 사랑의 설렘을 다룬 영화다. 감독 사라 폴리는 “인간은 영원히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원한다. 오래도록 갈망했던 무언가를 손에 쥔 순간, 또 다른 매력적인 것이 우리에게 다가오곤 한다. <우리도 사랑일까>는 커플 관계에서 생기는 결핍과 그것을 채우려는 노력에 대한 영화.” 라고 설명한다. 여주인공 미쉘 윌리엄스의 탁월한 연기가 빛난다. 감독의 2006년 데뷔작, 노부부의 인생과 사랑을 세밀하게 다룬 <어웨이 프롬 허>도 강력 추천한다. 
 


 33위. 그래비티 
(
미국·영국, 감독 : 알폰소 쿠아론 / 출연 : 산드라 블록·조지 클루니)

 지구로부터 600km 떨어진 우주에는 어떤 소리도 산소도 없다. 맨몸으로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중력이 존재한다. 허블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우주를 탐사하던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는 폭파된 인공위성 잔해와 부딪혀 홀로 우주에 남겨진다. 그녀는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캐나다 우주비행사 크리스 해드필드는 실제 우주선에서 ‘Space oddity'(원곡 : 데이빗 보위)를 부른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화제가 됐다. 크리스는 “우주에서의 강렬한 경험이 지구의 삶을 겸허하게 바라보도록 해줬다.”고 고백했다. 진공의 세계가 알려준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일까? 애타게 그리던 지구로 귀환한 스톤 박사의 삶은 더 행복하게 나아지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