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으로] 풍자의 미덕은 간데없고 씁쓸한 웃음만 강요하는 코미디 프로그램
등록 2015.03.2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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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으로 | tvN <코미디 빅리그>


풍자의 미덕은 간데없고 

씁쓸한 웃음만 강요하는 코미디 프로그램 


박진만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


“개그를 다큐로 본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비평하는 글에는 항상 이런 댓글이 달린다. 타 장르의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잣대를 웃음이 목적인 개그 프로그램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비중은 막대하며, 코미디 프로그램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보고 영향을 받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라진 풍자와 해학…쉽게 웃길 수 있는 ‘여성 대상화’는 여전 

전통적 코미디 이론에 따르면, 코미디가 가진 진정한 가치는 사회, 도덕, 종교적인 속박과 구속에서 벗어나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풍자와 해학, 익살, 조소에 있다. 그래서 조롱과 희화화는 언제나 민중을 억압하는 권력자를 그 대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방송 중인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권력자를 직접 풍자, 조롱, 희화화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처럼 이미 도덕성에 낙인찍힌 인사를 안전하게 조롱할 뿐이다. 반면 노인·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생물학적 특징은 여전히 코미디의 단골 소재다. 특히 여성 코미디언의 외모를 웃음거리로 삼는 플롯은 논란의 소지에도 불구하고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여성을 선정적으로 대상화한 tvN <코미디 빅리그>의 ‘10년째 연애 중’, ‘오춘기’를 모니터해 보았다. tvN <코미디 빅리그>는 케이블 채널의 시사 풍자·성적 표현 수용 범위가 지상파보다 비교적 넓고, 지상파 3사에서 방영 중인 코미디 프로그램과 같은 ‘15세 관람가’라는 특성을 고려해 모니터 대상으로 선정됐다. 


10년 후 외모가 변한 여자친구를 비하하고 무서워하는 것 전부인 ‘10년째 연애 중’


tvN <코미디 빅리그> ‘10년째 연애 중’ 화면 갈무리

tvN <코미디 빅리그>의 ‘10년째 연애 중’에는 김진아(10년 전 여자친구(이하 여친) 역)와 10년 후 몸집이 커진 이국주(10년 후 여친 역)가 교차되어 나온다. 이 코너는 재미를 위해 두 여성의 외모와 성격 차이를 부각한다. 그리고 이국주가 먹는 것에 열광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강조함으로써 관객의 웃음을 유도한다. 기본적인 이야기 구성에서부터 여성의 외모 비하를 전제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야기가 단순히 외모의 차이를 부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모를 기준으로 ‘우등’과 ‘열등’이라는 이항대립 구도가 설정되고, 코너 안에서 ‘외모 열등’의 항에 놓인 여성은 성격, 말투, 식습관 또한 한꺼번에 ‘열등한’ 항에 속하게 된다. 외모가 ‘열등한’ 인물은 지나치게 과장된 몸짓을 보이고, 거칠고 투박한 언어를 사용하며, 비정상적인 식습관을 가지는 등 외모와는 관련 없는 요소마저 모두 우스꽝스럽게 표현된다. 한마디로, 그 여성이 가진 모든 것이 웃음의 소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극 중 ‘남자친구(이하 남친)’는 음식을 좋아하는 이국주에게 “쿵푸팬더냐?”, “돼지냐?”라고 말하는 등 외모비하성 언어폭력을 가한다(2015.01.11). 이국주가 남친에게 업어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을 설정하고 ‘남친’은 과장된 말투로 “무서워”라고 반응한다. 이 과정에서 이국주의 업어달라는 말은 누가 봐도 어이없는 비정상적인 요구로 규정되고, 이를 통해 웃음이 유발된다(2015.01.25). 또 김진아(10년 전 여친 역)가 ‘남친’에게 이국주(10년 후 여친 역)를 노골적인 비교대상으로 삼아 “그럼 내가 이렇게 뚱뚱보 돼지가 돼도 예뻐?”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2015.02.15). 극 중에서 출연자 중 어느 하나도 이러한 조롱과 희화화에 대하여 대응하거나 반론을 펼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도는 극이 종료될 때까지 유지된다. 따라서 폭력적으로 외모를 비교하는 태도는 ‘정당한’ 것임을 ‘피해자’마저 수용하는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성인 남자의 관음증을 순수함으로 포장, 성희롱을 극단적으로 미화한 ‘오춘기’ 


tvN <코미디 빅리그> ‘오춘기’  화면 갈무리

‘오춘기’는 친구의 집에 놀러 온 황제성(남동생 친구 역)이 장도연(친구 누나 역)을 성적인 시선으로 접근하면서 벌어지는 상황극으로 여성의 몸이 노골적으로 대상화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모든 장면이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의 신체 부위를 노골적으로 관찰하거나,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것, 혹은 여성의 가슴 크기를 비교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령 2015년 2월 22일 방송분에서는 짧은 바지를 입고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바늘을 찾고 있는 장도연의 엉덩이를 황제성이 노골적으로 가까이 다가가 관찰하는 장면이 방송된다. 또한 이은지(장도연 친구 역)가 달라붙는 상의를 입고 등장하자 이세영(또 다른 누나 역)의 가슴을 황제성이 노골적으로 응시하는가 하면, 이세영과 장도연의 가슴 크기를 비교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한, 2015년 2월 15일 방송에서는 병원에 입원한 장도연의 병문안을 온 황제성이 호흡법을 가르쳐 주는 이은지(간호사 역)의 모습을 보고, 이때 부각되는 가슴에 놀라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 간호사가 가슴 쪽으로 청진기를 대려 하자 장도연이 왜 등으로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간호사는 “장도연 씨는 (앞, 뒤가 같아서) 그럴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하며 작은 크기의 가슴을 웃음거리로 삼는다. 게다가 방송 후반부에는 장도연이 속옷을 탈의하고 엑스레이 촬영을 하러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모습을 구경하며 좋아하는 황제성의 모습까지 등장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실생활에서 여성들이 성적 수치심을 가질만한 상황이다. ‘오춘기’에는 이런 성추행, 성희롱적인 상황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이 그저 성인 남자의 행동을 여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포장하고 있다. 남성 출연자가 여성의 신체 부위를 노골적으로 보거나 만질 때마다 아련한 느낌의 배경음악이 나온다. 만약 제작진이 이 코너의 웃음코드를 남성의 비정상적이고 황당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면, 남성이 여성의 몸을 노골적으로 바라볼 때 나오는 음악은 더 장난스럽거나 재미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때 나오는 음악은 다소 끈적끈적하여 ‘남동생 친구’의 행동이 성추행이 아니라 단순히 이성에 대한 호기심의 표현일 뿐이라고 변명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성적 호기심과 성희롱·성추행이 구분되지 않고 오히려 문제가 있는 상황을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시도만이 돋보여서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생존전략이 고작 성희롱 미화? 격조 높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탄생을 기원해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노골적으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거나 성희롱을 미화하는 코너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반면 ‘조현아 전 부사장 조롱’(‘사망토론’, 2014.12.14)수준을 뛰어넘는 풍자 코너는 발견할 수 없었다. 이처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코미디 빅리그>의 코너 구성은 tvN이 개국 초기에 <tv앤젤스>에서 ‘비키니 입은 여성들의 해변 댄스’를 통해 시청률 및 인지도 상승을 꾀했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tvN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지상파보다 파격적인 소재 선택으로 과감한 시도를 한다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저 지상파보다 선정적이고 저급한 웃음을 줄 뿐이라는 점에서 아쉽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시청률만을 쫓을 때, 선정성과 저질 개그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또한, 날카로운 풍자를 부담스러워할 경우 소재와 구성의 편협함으로 귀결된다. 시청자의 반응에 유독 민감하여 수시로 코너가 바뀌는 코미디 프로그램 제작자와 코미디언들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시청자는 누군가를 때리고 조롱하며 주는 웃음이 아니라 보다 격조 높은 웃음을 주길, 약자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풍자하는 웃음을 주길 바란다는 점을 잊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