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참여, 단결, 연대로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웁시다
등록 2015.01.0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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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단결, 연대로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웁시다 


이완기 상임대표

 



갑오년이 저물었습니다. 1년 전 우리 언론은 ‘靑馬의 해’ 운운하면서 갑오년에 ‘한반도 시대’, ‘동아시아 번영’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2014년은 ‘세월호 참사’로 우리 사회의 온갖 적폐가 드러난 해가 되고 말았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몰염치와 무능과 무책임에 국민들은 분노를 삭여야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충실하게 따랐던 어린 학생들은 모두 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그 엄청난 참사에서 나타난 모습들은 우리 사회의 부정과 부패와 비리와 총체적 무능 등 온갖 나쁜 것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듯했습니다. 대통령은 골든타임 7시간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밝히지도 않은 채, 적반하장으로 이를 언급한 의원을 ‘대통령 모독’이라고 질타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온갖 적폐가 드러난 갑오년


청와대에서 벌어지는 비선들의 국정농단과 권력 암투는 우리 사회가 망가지게 된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정작 책임져야 할 박근혜 대통령은 너무도 당당해 국민들은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대통령의 이런 뻔뻔한 태도는 비선들의 비루한 행위보다도 더 분노를 자아냅니다. 문제의 핵심은 나라의 운영에 비선들이 언제, 어떻게, 무엇을 위해 개입했는지 밝히는 일이지만, 청와대는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경찰관을 회유했고, 검찰은 그 지침을 충성스럽게 지켰습니다.


이 와중에 또 다른 권력인 재벌의 일탈행위가 국민의 가슴을 후벼 팝니다.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은 말로만 들었던 재벌들의 특권의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60·70년대 개발독재 시대에 국민의 피와 땀으로 성장한 재벌들이 국민의 은혜를 망각한 채 마치 스스로 부를 일군 것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갑오년 연말은 한파로 얼어붙은 민중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11월 13일에 있었던 쌍용차 해고자들의 대법 판결은 25명의 목숨이 희생되는 역경 속에서도 “법은 정의롭다”는 믿음 하나만으로 5년을 기다린 쌍용차 노동자들을 벼랑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이창근 쌍용차 노조 정책기획실장은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대법원”이라며 분개했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절망하면서 70m 높이의 쌍용차 굴뚝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쌍용차 판결 2주 뒤인 11월 27일,  대법원은 또 하나의 정치판결을 했습니다. 6년 동안 투쟁해온 YTN 언론노동자 3명에 대한 해고를 확정한 것입니다. 


기울어진 것은 대법원뿐이 아닙니다. 12월 19일에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은 처참한 갑오년의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헌재가 기일까지 앞당겨 서둘러 판결을 내린 것은 ‘국정농단’의 다급한 불을 끌 목적이었겠지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일입니다.


가장 고질적인 병폐를 보여준 언론


우리 사회를 이처럼 망가뜨리고도 그들이 뻔뻔해지는 배경에는 언론이라는 든든한 방패막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여러 적폐 가운데 가장 심각하고 고질적인 병폐를 보여준 것은 언론이었습니다. ‘전원 구조’ 오보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이에 대한 일언반구 반성도 없었던 언론이 그 뒤에 보여준 것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통령 띄우기였습니다. ‘지난밤을 뜬 눈으로 보낸 대통령’, ‘쇄도하는 질문에 일일이 답한 대통령’이라고 수구언론은 합창했습니다.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대통령에게 묻는 기자는 없었습니다. 


청와대 국정농단을 보도하는 수구언론의 태도도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 본연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수구언론은 마치 권력들의 세력 다툼을 즐기고 있는 듯합니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사자방 비리’가 나라를 거덜 내고 있는 동안 단 한 마디 비판도 없었던 수구언론들이 이제 와서 ‘사자방 비리’와 ‘비선들의 국정농단’을 앞서기니 뒷서거니 보도하는 것은 과거 권력과 현재 권력 사이의 파워게임을 저울질하고 있는 기회주의 언론을 보는것 같아 속이 메스껍습니다. 그러던 수구언론들이 진보당 해산 판결이 나오자 게거품을 물고 ‘자유민주주의’를 외칩니다. 마치 박정희가 계엄하에서 유신을 선포했을 때 ‘한국적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토착화’ 운운하며 팡파르를 울렸던 비겁하고 비루한 언론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합니다.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민중의 선택을


세상은 이 땅의 민중에게 노예로 살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44년 전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고 절규했던 바로 그 날, 대법원은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힘없는 자들아 너희들은 노예다”라며 쇠고랑을 채웠습니다. 해고의 부당성, 그에 저항한 노동자들의 정당성을 논리·법리로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고, 오로지 힘의 논리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국회도, 사법부도 믿을 수 없습니다. 청와대 이중대인 여당도, 무기력한 야당도 믿을 게 못 됩니다. 수구언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노예로 살 것인가 아니면 떨쳐 일어나 싸울 것인가. 선택은 민중들 자신입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87년처럼 민중이 다시 뭉쳐야 합니다. 양심적인 언론인이 깨어나야 합니다. 참여와 단결과 연대로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1984년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절에 민언협이 그랬던 것처럼, 2015년 을미년 새해에 민언련이 앞장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