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시민운동으로의 전환기와 CMS 회원들
성유보 언협 초대 사무국장, 전 민언련 이사장 l taelim628@naver.com
‘민언련’이 30돌 행사준비로 분주하다.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 창립 때 고 송건호 선생님을 의장으로 모시고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던 나로서도 ‘민언련’ 30년 역사는 가슴 뿌듯한 감격으로 다가온다.
나는 ‘사무국장으로서 <말>지를 5호까지 내고 당시 고 김태홍 80년 해직기자협의회 회장이 사무국장을 맡고 싶다고 해서 1년 뒤 사임했는데, 그 다음에 나를 기다린 것은 ‘5.3 인천사태’로 쑥밭이 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처장직이었다.
87년 ‘6월 항쟁, 한겨레신문 창간 등 시대적 변혁 이후 10여년 만에 내가 다시 ‘언협’으로 복귀한 것은 1998년 3월이었다. 90년대 후반은 70~80년대 재야 민주화운동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경실련’,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운동시대가 막 도래하던 시기였다. ‘언협’으로서도 <말>지가 쇠락해 가고, 해직기자들의 노령화와 함께 회원 공백상태가 심화되어 그대로 가면 공중분해 될 형편에 처해 있었다.
‘언협’ 의장으로서 첫 실행위원회를 열어 보니 재정이 바닥이었다. 그동안 <말>지가 ‘언협’에 매달 내던 재정보조금 200만원을 더 이상 낼 형편이 못 되었다. 그나마 언협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효성, 김서중, 최영묵, 주동황, 김동민 등 10여명의 교수들이 한 달에 10여만 원 정도씩 내던 특별회비 덕분이었다. 나는 그 돌파책을 ‘언협’의 재야운동 체질을 시민운동 체질로 바꾸는데서 찾았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진화된 자본 독재의 시대에 시민사회가 맞서기 위해서는 인문학 강좌로 새롭게 무장한 참여형 시민들의 집단 지성과 시민행동이 필요했다. 언론강좌와 기자학교 교육 등 인문학 강좌를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나와 임상택 신임 사무총장은 연남동 재개발 지역에 있던 사무실을 공덕동 불교방송 빌딩으로 옮기면서 당시로서는 참으로 현대화된 시민언론 강의실을 마련하였다.
나는 또 당시 시민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던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의 재정운영 시스템을 본받아 ‘CMS 회원제도’를 도입하였다.
‘언협’은 이 시점에서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사단법인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으로 바꾸고 의장, 실행위원회 체제를 이사회 체제로 바꾸었다. 당시에는 사단법인이 되어야 ‘CMS 제도’를 허가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시민회원들이 크게 늘어나자 간사진도 대폭 보강되었다. 최민희 씨가 사무총장으로 복귀하였다.
내가 이사장으로 있던 1998년 3월 ~ 2003년 5월까지 민언련 간사로는 전미희, 김시창, 이유경, 이희완, 구은영, 이지혜, 석미화, 장유정 등이 활동했다. 당시 ‘민언련’은 언론노조, 기자협회, PD연합회‘ 등과 함께 언론계와 시민사회와 함께 하는 전국적 언론개혁운동을 전개한 바 있었다.
70년대, 80년대 해직기자들을 비롯한 노장층도 새로 출발한 ‘민언련’에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윤활식, 임재경, 이기명, 신홍범, 김태진, 정동익, 성한표, 이명순, 이범수, 박우정, 정상모 씨 등이 고문 또는 이사를 맡아 주었다.
언론학교와 기자학교 등의 강좌진 진용도 대단했다. 정연주, 손석희 씨 등과 민언련 정책위원회를 맡고 있던 이효성, 주동황, 신태섭, 김동민, 김서중, 장호순, 최영묵, 임동욱, 류한호 교수 등이 그런 분들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활기찼던 부분은 회원들이 스스로 만들고 운영해 나간 다양한 분과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신문 모니터 분과, 방송모니터 분과, 인터넷분과, VJ반, 사진반, 영화반, 노래반 등등에서 10여 명 이상의 회원들이 1주일에 한 번 이상 모여 ‘민언련’ 사무실은 늘 시끌벅적하였다.
내 기억에 남는 사람들만도 이유경, 정희종, 김은주, 김언경, 정정일, 김영인, 유지향, 유정민(신문분과), 이지혜, 최한성, 강정훈, 박진형, 정은경, 장유정(방송분과), 전미희, 김민경, 김경실, 송덕호, 김영애, 고은애, 최윤실, 최낙수(영화반), 이철호, 이기범, 조명희(사진반), 류현정, 이영, 김성진, 최현정(VJ분과), 이준희, 강정훈(인터넷분과), 김시창, 장석태, 조하나(노래반) 등이 보석 같은 활약상을 보여 주었다.
93년 정동익 의장 때 발족한 참언론산악회는 송덕호, 김재중, 박영택, 김창룡, 신현용 씨를 중심으로 하여 한 달에 한 번씩 전국의 산을 돌며 회원들의 심신을 단련하고 회원 간 유대를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는데 10여년 계속되다 중단되어 아쉬움으로 남았다.
물고기는 물이 있어야 놀 수 있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이 말을 상기하면서, 특히 1990년대 말부터 ‘민언련 CMS 회원’이 되어 오늘날까지 계속 회원으로 봉사하고 있는 숨은 회원들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한다. 이번에 ‘민언련’ 30주년을 계기로, 다시 광범한 회원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민주언론운동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는 것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