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한 외국인 예능, 세계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감각 키워줘
- 출연진 구성과 진행자는 아쉬워
고은희 방송모니터분과 분과원 l gehlhl456@naver.com
JTBC에서 새로 시작한 토크쇼 <비정상회담>의 상승세가 심상찮다. ‘非지상파 예능’답지 않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예능 강자로 떠오르고 있지만 비단 시청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참신한 형식이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문제점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남아와 제3세계 국가 부족한 ‘G11’
먼저 한국 2~30대 청년의 고민을 세계의 젊은 시선으로 바라보겠다는 <비정상회담>. 이들은 과연 ‘세계’의 시선을 담아내고 있을까? <비정상회담>의 패널을 이루는 ‘G11’은 각각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독일, 캐나다, 호주, 터키, 벨기에, 이탈리아, 가나이다. 이 중 가나와 터키를 제외하고는 소위 선진국 혹은 열강이라 불리는 나라들이다. 동남아나 제 3세계에 속하는 ‘비정상’은 없는, 말 그대로 서구 백인 중심의 패널이다. ‘세계의 젊은 시선’을 운운하기엔 캐스팅 구성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또 이들의 발언들에도 약간의 불편함이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은 이래”라는 지나친 일반화로 문화에 대한 왜곡된 사실이 전달될 수 있다. 장난삼아 하는 말에 대한 명확한 사실 확인이 없어 자칫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비록 그들은 ‘정상’이 아니지만 개개인이 국가의 이름을 달고 나온 만큼 신중한 발언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식상하고 미숙한 진행도 아쉬움
이보다 더 큰 아쉬움을 주는 것은 진행자이다. <비정상회담>은 사무총장이라 부르는 유세윤과 의장 전현무, 성시경이 진행한다. 그러나 이들은 사실상 다른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모습을 재탕한다는 인상을 주며 진부하고 식상한 느낌이다.제대로 된 진행자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비정상회담>의 진행자는 서툰 한국말 탓에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패널의 입장을 정리하면서 중립적인 태도로 토론을 이끌어나가고 동시에 유머러스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 그런데 지난 11일 조세호가 출연해 방송된 <’대인관계가 점점 어려워지는 나, 정상인가 vs. 비정상인가’>에서 성시경은 자신의 본분을 잊고 패널을 설득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성시경은 “우리나라 대부분 회사원들이 특징은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잖아’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힘 때문에 우리나라가 빠르게 발전한 면도 있다”면서 ““먼저 선진국화 돼서 여유롭게 일하는 유럽문화와 다르다”고 말했다. 이에 줄리안(벨기에)이 반발하자 성시경은 “(한국은) 애사심을 심어줘서 단순히 벌이가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소명의식을 갖고 한다”며 한국의 직장 문화를 옹호했다. 성시경 뿐만 아니라 전현무도 한국의 직장 문화를 설득시키는 것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방송 직후 SNS와 시청자 게시판에는 “출연자들을 마치 한국 직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소수의 의견처럼 치부하는 진행자의 모습이 불편했다”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다수 존재했고, 그가 “MC 자질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올라왔다.
‘비정상’이라는 표현 함부로 남발되는 것도 아쉬움
<비정상회담>은 ‘비정상’이라는 이름에서 태생적 문제점을 갖는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고민에 대한 토론 후 정상과 비정상 투표를 하며 끝을 맺는다. 이러한 구조는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결과는 낳는다. 정상 이데올로기에 빠져 ‘비정상’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진화한 외국인 토크쇼, 장점도 많아
그럼에도 <비정상회담>은 긍정적 측면이 많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한국 2~30대 청년의 고민들을 세계의 젊은 시선으로 바라보겠다는 기획의도는 참신하다. 비교적 가벼운 주제에 대한 본인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진행됐던 <미녀들의 수다>와 비교해서 <비정상회담>은 서로 격론이 가능하다는 점이 차별성을 갖는다. 보다 과감하고 심도 있는 주제를 다룬다는 점도 토크쇼의 새로운 진화를 보여준다.
<비정상회담>의 출연자들도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능숙하게 그리고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서툰 한국말로 본인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동거, 서열문화, 동성애 등등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주제들이 나왔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때론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출연자의 모습들이 흥미롭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의 고민들이 단지 우리 문화 안에 존재하는 병폐들이 아니라 다른 나라 청년들도 하고 있는 보편적인 고민이라는 공감을 느끼게 해준다. 문제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다양한 물음으로 발전하며 참신한 답도 얻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재미를 넘어서 의미를 준다.
‘열 두 개의 시선’ 속에 소통과 공감능력 키울 수 있어
회담의 공식 언어인 한국어,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간 ‘열 두 개의 시선’은 외국인과 외국문화에 대한 편견을 하나씩 깨트리고 나라라는 장벽을 넘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인化’ 되라고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다문화 사회에서 적응해나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한국인보다도 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이해와 애정을 보일 때마다 시청자들은 경각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이런 것이 <비정상회담>의 가공되지 않은 매력일 것이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비정상회담>이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예능으로 자리 잡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