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묻은 신문이 겨 묻은 방송에게
손성배 신문모니터분과 분과원 l 89sungbae@gmail.com
추석 연휴를 전후로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KBS 1TV <뉴스9>의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검증 보도(이하 ‘KBS 문창극 보도’)에 대해 ‘편파보도’, ‘악마의 편집’이라고 이름 붙인 사설을 실었다. 동아일보는 연휴 첫 날 <KBS의 ‘문창극 편파보도’에 솜방망이 징계라니>(2014.9.6)라는 제목의 사설을, 중앙일보는 연휴 마지막 날 <‘악마의 편집’에 면죄부 준 방송통신심의위원회>(2014.9.10)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두 사설은 ‘KBS 문창극 보도’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아래 방통심의위)의 심의 결과가 미흡하다는 비판의 내용이었다.
KBS 문창극 검증보도가 방통심의위 민원에 올라가기까지
KBS는 지난 5월,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정부 발표 받아쓰기 보도행태로 많은 시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이에 따라 보도본부장이 사장의 보도통제를 폭로하는 등 내우외환을 겪었다. KBS 이사회가 청와대 보도통제 외압의 당사자인 길환영 KBS 사장의 해임 제청안을 통과시켰다.
‘KBS 문창극 검증 보도’는 바로 이렇게 길환영 사장이 해임된 이후 나온 제대로 된 총리후보 검증보도였다. KBS는 공직 후보의 검증을 위해 문창극 후보자의 강연 영상 중 일부를 그대로 보여줬다. 이는 방통심의위의 심의 결과 보도자료에 쓰여 있는 ‘발언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발언을 하는 모습을 방송하였으며’ 등의 표현을 봐도 알 수 있다. 짧은 방송 뉴스의 특성상 강연 영상 전부를 보여주진 않았지만 보도에 일부 인용된 영상만 봐도 문 후보자가 어떤 역사관을 갖고 있는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KBS가 발언 중 일부만 발췌해 왜곡이라며 무리하게 편성한 MBC의 <특집기획 좌담>에서 방송된 전체 동영상을 봐도 문 후보자의 역사관이 문제가 있음은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보수단체들은 자격미달의 총리 후보를 추천한 청와대를 비판하지 못한 채, 이 문제를 지적한 KBS에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어떤 방송보도에서도 한 적이 없는 영상 전체를 보여주지 않았다며 왜곡이라고 우기는 황당한 주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결국 이 보도는 방통심의위에 민원 접수되었다. 방통심의위는 보도교양특위, 방송소위를 거쳐 9월 3일 전체회의에서 ‘KBS 문창극 검증 보도’에 대해 ‘권고’를 주기로 결정했다. 권고는 법정 제재와 같은 중징계와 달리 재승인 심사 등에 벌점이 부과되지 않는 행정조치이다.
공영방송이 뭔지도 이해 못하는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6일 사설에서 ‘공영방송의 중립성 훼손과 사회적 갈등, 문 후보자의 사퇴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온 편파보도 논란의 결말치곤 어이없는 결과’라고 불만을 표했다. 덧붙여 “앞으로 국기(國紀)를 흔드는 편파 왜곡보도가 계속될 경우 방통심의위가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경징계를 내린 방통심의위를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KBS에 진지한 자기반성을 요구하기도 했는데 특히 “수신료로 방송하는 KBS가 인격살인과 다름없는 보도를 통해 공영방송의 신뢰를 무너뜨린 데 대해 진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KBS ‘문창극 검증 보도’는 공영방송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를 제대로 수행한 것이다.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야말로 정부에 대한 적극적 감시와 주요인사가 있을 때마다 후보자에 대한 검증보도를 제대로 해야 한다. 후보자에 대한 합리적 문제점을 지적한 보도에 대해서 ‘인격살인’이라는 감정적 표현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동아일보가 공영방송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부족함을 드러낸 셈이다. 특히 ‘유민아빠’ 김영오 씨에 대한 무분별한 사생활 캐기에 앞장서는 등 자신들의 정파적 입장을 달리하면 서슴없이 ‘인격 살인’을 가하는 동아일보와 채널A가 이런 말을 누구에게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자사출신 대기자 칼럼니스트의 몰락에 이성 잃은 중앙일보
중앙일보는 KBS의 보도 자체보다 방통심의위의 심의 결정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10일 사설에서 중앙일보는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수호해야 한다. 국민의 알권리는 정확한 사실을 알아야 하는 권리를 말한다”며 언론의 역할과 책무에 대해 서술하는 데 한 문단을 할애했다. 덧붙여 “개인의 인격을 심대하게 침해해 인격살인에 이르게 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언론의 범죄행위”라고 규정했다. KBS ‘문창극 검증 보도’ 가 바로 “악마의 편집”으로 문창극 개인의 인격을 심대하게 침해하고, 인격살인에 이르게 했기 때문에 범죄행위라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방통심의위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곤두세웠다. 강력한 징계를 했어야 마땅한데 방망이 징계를 했다는 것이다. 혹여 일부는 중앙일보의 이런 일갈이 JTBC <뉴스9>는 중징계하고 KBS <뉴스9>는 경징계한 것에 대한 불만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지난 8월 JTBC <뉴스9>의 다이빙벨 관련 보도가 ‘방송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라는 중징계를 받았을 당시, 중앙일보는 침묵했다. 그랬던 중앙일보가 이번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비판의 날을 세운 것이다. 중앙은 방통심의위 여야 추천 위원들의 토론과 합의를 통한 결과 도출을 “정파적 이해와 타협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감으로써 언론에 대한 감시와 견제 책무를 스스로 방기했다”고 했다. 덧붙여 “언론은 정부와 권력을 감시·견제하고, 언론 견제 기구들은 언론의 곡필을 견제하는 기능이 원활해야 공정한 사회가 실현된다”며 “방심위의 이번 결정은 잘못됐다”고 단정했다. 명백한 사실을 그대로 보도한 KBS를 곡필이라고 우기는 중앙일보는 자사 출신 대기자이며 자사 대표 칼럼니스트 문창극의 몰락을 안타까워하느라 스스로 곡필을 하고 있음은 모르는 듯하다.
한편 경향신문은 <방통심의위의 KBS ‘문창극 보도’ 징계가 남긴 것>(2014.9.5)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징계는 상식으로 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공직자의 탈·불법 행위를 감시하는 것은 언론 본연의 역할이자 책무다. 문 전 후보에 대한 검증 역시 언론의 사명에 속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공직 후보의 언론 검증에 사후검열 잣대를 들이댄 것 자체가 난센스다. 비록 징계가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방통심의위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상 받은 보도에 벌주는 방통심의위
‘KBS 문창극 검증 보도’는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제286회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기자에게 최고의 영예인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보도에 대해 방통심의위는 어떻게 벌을 준 것일까. 방통심의위가 KBS에 ‘권고’ 조치를 내릴 수 있는 힘은 바로 방통심의위 위원 구성에 있다. 방통심의위는 정부여당 측 위원 6명, 야당 측 위원 3명, 총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여당 측 위원들의 의견이 곧 방통심의위의 심의 결과가 된다. 이 때문에 가장 가벼운 심의 조치인 ‘의견 제시’도 받기 어려운 사안임에도 ‘KBS 문창극 검증 보도’는 관계자 징계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을 뻔 했다. 다행히 이날 전체회의에서 정부여당 측 위원 4명이 ‘관계자 징계’를, 나머지 정부여당 측 위원 2명이 법정제재 중 가장 낮은 수위의 ‘주의’를 주장하면서 균열이 생겼다. 당연히 야당 추천위원 3인이 ‘문제없음’을 의견을 내면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 여야 추천 위원들이 조금씩 양보한 결과, ‘권고’ 처분이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권고라는 경징계에 그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국민의 알권리를 수호했다고 상 받은 보도에 대해 “향후 제작 과정에 유의하라”며 ‘권고’ 조치를 내린 방통심의위. 그런 벌의 강도가 약하다고 비판하는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