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구저바구] 삶 이야기
“진짜 행복하다~”
박혜진(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
매일 똑같은 일상을 지내다보면 일주일에 딱 한 번하는 TV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것이 그나마 생활에 활력을 준다. 요즘은 매주 금요일 저녁 tvN의 <꽃보다 청춘>을 챙겨보고 있다. 출연진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지만, 그 출연진들이 유희열, 윤상, 이적이란 것만으로도 내가 이 프로그램을 봐야 할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어쨌든 즐거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꽃보다 청춘>이지만, 유독 한 장면만은 손가락에 가시가 박힌 듯 계속 신경이 쓰였다. 첫 회의 여행 하이라이트 영상에 나왔던 장면이었던 거 같은데, 유희열이 “아- 행복해라”라고 말하는 모습이 그것이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진심으로 우러나서 행복하다고 말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이 그렇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방이 꽉 막혀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은 답답함이 매일 매일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취직을 해야지만,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가 생겨야지만 내 입에서 행복하다는 말이 나오겠지 하고 생각했다. 나에겐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러나 내 입에서 행복하단 말이 흘러나온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예상치도 못한 때에 찾아왔다.
나는 지금 민언련의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데, 8월 사무처의 휴가 기간에 인턴인 내게도 하루의 휴가가 주어졌다. 1박 2일 여행을 갈까, 무박 여행을 갈까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돈도 뭣도 없는 백수들이니 큰 돈 쓰지 말고 그냥 가까운 데나 놀러 갔다 오자는 무기력한 의견으로 모아졌고, 결국 일산에 있는 아쿠아리움에 가기로 했다. 처음 계획보다는 스케일이 몹시 작아졌지만, 재미있게만 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휴가 당일, 역시나 예상대로 스케일 작은 하루였다. 그래도 우리의 일정은 나름 괜찮게 흘러갔던 것 같다. 예정대로 아쿠아리움을 구경했다. 온갖 물고기와 동물들을 보고, 바다코끼리 쇼도 봤다. 그리고 단체 관람을 온 유치원생들도 어마어마하게 봤다. 정신이 없었다. 근처에 있는 쇼핑몰로 이동해 옷 구경을 실컷 했다. 이 옷도 예뻐 저 옷도 예뻐 감탄하며 구매욕을 불태웠지만 곧 제정신을 되찾은 우린 아무도 지갑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출출해져 식당으로 향했다. 라면 맛 파스타에 냉동 감자가 올라간 성의 없는 피자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릇을 싹싹 비우며 우리 메뉴 잘못 골랐다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근처에 있는 호수 공원을 걸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 호수 공원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바람이 좋았고, 사람들은 저마다 다정함이 넘쳐흐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황빛으로 물드는 호수를 보며 걷다가, 문득 오늘 하루가 꽤 완벽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곳에 간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쿠아리움은 어지러울 정도로 시끄러웠고, 쇼핑몰의 예쁜 옷은 그림의 떡이었으며, 음식은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즐거웠다. 완전하지 않았던 순간순간이 더 재밌게 느껴졌다. 친구들과 주고받은 별것 아닌 농담에 광대가 아프도록 웃었다.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이 날 하루 동안 내가 짊어지고 있던 수많은 고민들이 단 한 순간도 떠오르지 않았단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도 놀란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진짜 행복하다.” 채워져야, 많은 것들을 손에 넣는 날이 와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게 진짜 필요했던 것은 걱정과 고민을 잠시라도 내려놓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학교를 졸업했다. 9월 첫째 주를 끝으로 6개월 동안 해온 민언련 인턴도 그만둔다. 이제 정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진짜 취준생’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시간이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부디 그 날의 기억이 취준생의 고단한 나날, 당장 눈앞의 결핍으로 좌절하는 모든 순간에 작은 버팀목이 되어주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