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약? 아는 것이 힘!
한보경 회원 l hanbogyung@naver.com
소식지에 실을 원고를 청탁 받고 마음이 심란했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내주는 소논문 과제나 썼지 자유로운 글을 쓸 일은 없었기 때문에 뭘 어떻게 써야 하나, 시작은 어떻게 할까 좀체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참 동안 빈 화면에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이제까지 소식지에 기고됐던 글을 참고하면 좀 나을까 싶어 쭉 살펴보고 있노라니 괜히 봤다 싶었다. 다들 너무 잘 쓰셔서 오히려 주눅이 들었다. 차라리 보지 않고 내 맘대로 썼으면 마음이라도 가벼웠을 걸 하는 후회가 스쳤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과 함께.
‘모르는 게 약이다.’
참 속편한 말이지 않은가. 몰라도 괜찮고,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오케이.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무서운 말이다. 그 말은, 알려는 노력, 그리하여 종국에는 더 나은 쪽으로 바꾸려는 무수한 노력들을 의뭉스레 눙치고 만다. 뿐만 아니라 그 말 앞에선 모든 생각과 행동의 틀이 그저 그대로인 채로 고정된다. 나만 하더라도 ‘모르는 게 약’이라는 생각을 견지한 채 <신입 회원 인사> 꼭지의 지난 글들을 외면했더라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산적인 고민 없이 그저 분량만 채워 제출하는 데에 급급했을 것이다.
이렇게 ‘모르는 게 약’이라는 자기 위로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모르는 게 약이다’가 맞는 말인가, ‘아는 것이 힘이다’가 맞는 말인가 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잇는 희대의 난제에 대해, 기꺼이 ‘안다는 것의 힘’을 응원한다. 안다는 것은 분명 변화의 씨앗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서는 ‘민언련’을 알게 된 것이 그 앎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제까지 언론개혁·언론민주화는커녕 현재 언론의 상황이 어떠한지 관심이 없었다. 들은풍월로 ‘요즘 기자는 기자가 아니라 기레기라더라’, ‘종편 뉴스는 안 보느니만 못 하더라’는 얘기에 그저 그런가보다 할 뿐, 보이면 보이는 대로, 들리면 들리는 대로 받아들였다. 입으로는 ‘아는 것의 힘’을 외치면서도 사실은 비겁하게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던 셈이다.
그러던 중 민언련의 언론학교 포스터를 발견했다. 사회의 빛과 소금 같아야 할 언론, 기자가 기레기 소리를 듣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 대안을 찾으려는 것이 취지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보도를 보며, 언론에 무심했던 나조차 오보, ‘보도자료 받아쓰기’로 점철된 그 무능함에 혀를 내둘렀기에 강의를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의를 통해 알게 된 현재 언론계의 실상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었다. 이제껏 몰랐던, 알아도 가벼이 외면했던 문제들에 대한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어렴풋하게나마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언론학교로 이어진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민언련 회원이 되었다.
이제까지 모르고 지냈던 것을 깨닫게 되면서 더 알아가야 할 것들에 대한 갈급도, 의욕도 넘쳐서 신문분과에서도 활동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단 두 번 참여했을 뿐이고,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같은 목표를 가지고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숟가락을 얹는 일 만으로도 뿌듯하다.
굳이 ‘집단지성’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아는 것의 힘’이 변화의 동력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여럿이 함께일 때 더 빛을 발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추악한 아가리를 벌리며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위협하는 지금, 민언련에 지워진 책임은 무겁다. 나도 이제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 뒤에 숨지 않고, 그 짐, 조금이나마 나눠들고 걸어가겠다. 느리지만 함께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