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민영화’라는 괴물 (2014년 7호)
등록 2014.07.2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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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라는 괴물


강선일 회원 l duperduke@naver.com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시작 내용이다. 영화평 정수리부터 뜬금없이 웬 헌법 전문이냐고?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헌법 원칙, 즉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일을 어기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건국강령’. 임시정부가 1941년에 발표한, 해방된 새 나라 건설을 위한 강령이다. 여기엔 ‘토지와 주요산업의 국유화’, ‘무상의무교육 실시’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국유화란 단어 때문에 ‘임시정부도 좌파’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진영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오른쪽에 있었다. 김구, 김규식, 조소앙 등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은 오히려 반공주의자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들은 새 나라 건설과 발전을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단 것을 알았다. 그래서 중요 산업 및 정책들을 국가에서 관리하고자 했다. 이 문제는 진보-보수의 논리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 오늘로 돌아와보자. 건국강령에 담긴 임시정부 지도자들의 뜻은, 정작 그 법통을 계승했다는 대한민국 정부에선 훼손됐다. 특히 박근혜 정권 들어 그 훼손 정도는 심해졌다. 정부는 지난해 연말부터 수서발 KTX를 시작으로 철도 산업에 대한 민영화를 시도했다. 지난 6월엔 인천공항철도를 민간회사에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의료, 전기, 수도 등의 공공재에 대해서도 민영화가 추진되려 하고 있다. 이 상황이 가속화될 때 우리나라에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에 대해, 영화 <블랙딜>은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며 설명한다. 


민영화가 한 나라의 ‘법통’, 또는 그 나라 특유의 전통을 훼손하는 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유, 평등, 박애’를 국가 이념으로 삼는 나라 프랑스에선 사기업 주도하에 상수도 민영화가 이뤄진다. ‘물 민영화’를 주도하면서 물 이용 요금을 30%나 올렸던 해당기업 최고 경영자는 비리 혐의로 감옥에 갔다 온다. 그럼에도 그는 “물은 공짜가 아니며 아낄 필요가 없다. 부정부패와 자본주의적 발전은 모순되지 않는다”며 자기네 나라 국가 이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이 사람이 최고경영자로 있었던 기업의 물 민영화 추진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이 기업은 이제 우리나라에까지 진출하려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해당 기업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상수도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영화가 보여주는 민영화의 결과는 처참했다. 기가 막히는 장면이 너무 많다. 이 작은 지면에 그걸 다 실을 순 없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시속 5km 열차’ 얘긴 안 할 수가 없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한 역에선 열차가 들어올 때 반드시 시속 5km로 속도를 줄여야 한다. 이 역에서 두 번이나 대형 열차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1990년대 아르헨티나의 철도 민영화 실시 이후, 해당 열차를 소유한 기업은 열차가 노후화되든, 열차 안전설비 미비로 사고 위험성이 높아지든 신경도 안 썼다. 철저히 ‘경영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그들은 열차의 역 진입 시 안전설비 갖추는 데 드는 돈마저 아깝게 여겼다. 그 결과, 이 역에서 두 번의 참사가 발생했다. 특히 2012년 첫 번째 사고로 51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사고를 막기 위한 아르헨티나 정부의 조치는 개그콘서트의 유행어를 떠올리게 한다. “천~천히 들어와!” 이게 바로 ‘시속 5km 열차’의 탄생 배경이었다. 물론 안전설비를 제대로 안 갖추어 대형사고를 유발한 기업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민영화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것, 사후 대처가 기상천외한 것 모두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민영화는 한 나라의 법과 전통을 파괴하는 건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 그 나라 사람들의 목숨마저 앗아간다. 더욱 답답한 건, 그러한 사태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법적으로 처벌할 장치는 매우 미약하단 것이다. 오히려 법을 집행하는 자, 그리고 그 법을 적용 받아야 하는 자들은 공고히 뭉쳐 있다. 


자,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당연히 ‘연대’가 첫 번째 답으로 나올 수 밖에 없다. 민영화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심지어는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마저 파괴한다는 문제 의식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진정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나라가 되려면, 그리고 진정 우리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계승하려면, 우리는 우선 눈 앞에 펼쳐진 ‘민영화’라는 괴물을 무찌르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 지혜 발현의 방식이 길거리로 나서는 것이라면, 함께 손잡고 거리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