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우리들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조현준 방송모니터분과 분과원 l paxhistorian@naver.com
지난 6월 29일을 끝으로 50화에 이르는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의 대장정은 막을 내렸다. 주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불러 모았던 드라마 ‘정도전’의 인기 요인은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근래에 보기 힘들었던 정통사극의 부활이라는 점과 매 회마다 눈을 떼게 할 수 없었던 배우들의 명연기, 또 그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현실을 반영하는 수많은 명대사들, 그리고 뛰어난 연출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탄탄한 구성까지 다양한 요인들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도전’에는 다른 사극들과 다른 확연한 매력들이 있었다.
기존의 사극은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영웅 신화를 바탕으로 한 전개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정도전’은 주인공 정도전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다. 다른 조연들 역시 그 인물들의 캐릭터가 분명하다. 때문에 이 드라마에서는 명확한 선과 악의 구분이 없고 영웅의 모습도 존재하지 않았다. 극중 인물들은 다양한 사건들을 놓고 끊임없는 갈등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대립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모두 자기만의 대의를 가지고 움직인다. 예컨대 극 초·중반까지 정도전과 가장 많이 대립했던 이인임 역시 반드시 물리쳐야만 하는 부패한 관리의 모습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 역시 권력에 목을 매고, 권문세족이라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반대세력과 적절히 타협하기도 한다. 그러한 고단수의 정치 논리를 펴는 모습은 이 드라마에서 그나마 가장 ‘악인’이라고 규정되어지는 그마저도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어 버렸다. 이처럼 누구 한 사람에 의한 전개가 아니라 각각의 인물들이 그들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극을 전개해 나갔다.
어쩌면 극중에서 가장 보기 불편한 캐릭터는 주인공인 정도전일지도 모른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 군주는 가장 가벼운 것이라 했습니다. 해서 백성의 고통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라며 공민왕을 훈계하였던 강직하고 청렴한 선비였던 말단 학관시절의 정도전의 모습은 후반으로 갈수록 스스로가 칭하였듯, 오로지 역성혁명이라는 자신의 이상을 위해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대업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자신의 동문들을 죽이고, 스승마저 고문한 뒤 유배 보내는 모습은 이상적인 정치가의 모습보다는 분란만 일으키는 난동꾼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기에 ‘정도전’이라는 극중 인물에 더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가 이루고자 한 꿈이 어디 만만한 일이었겠는가. 난세의 고려 말이라고는 하지만 500년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것이다. 그는 오로지 ‘대업’만을 도모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런 인물이기에 무슨 일이든 완벽히 해내는 ‘영웅’의 모습보다는 오히려 ‘괴물’로 묘사된 정도전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비록 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이라는 인물 자체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가 보여줬던 ‘도전’은 보는 이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다. 그가 ‘민본’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것도 엄혹한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것이지만, 무엇보다 고통을 피하려 하지 않고 그 고통 속에 들어가 싸우며 바꿔 나가려 했던 그의 열정이 더 가슴을 울린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희망, 이제 다시 꿈을 꾸자. 두려움을 떨쳐내고 냉소와 절망, 나태와 무기력을 혁파하라. 저마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꾸어라. 그것이 진정한 그대들의 대업이다.” 정도전의 이 연설로 드라마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절망의 시대에 모두에게 자신의 삶을 ‘밥버러지’가 아닌 이룰 수 없는 꿈 하나쯤 가지고 살아야 함을 역설했던 이 드라마는 이 시대를 살아가게 하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짚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