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과연 변하였는가
[이달의 이슈] 삼성은 과연 변하였는가 (2014년 6호)
등록 2014.06.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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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운 변호사,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 l lawsuri@gmail.com
7년 만의 첫 사과
5월 14일, 삼성이 직업병 피해가족들에게 처음으로 사과했다. 합당한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도 약속했다. 언론들은 일제히 삼성의 ‘변화’를 보도했다. 너무 늦은 사과라며 질타하는 곳도 있었지만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였다.
반올림도 환영 성명을 냈다. 아직 사과의 내용도 부족하고 보상과 재발방지대책도 정해진 게 없지만, 이 문제를 대하는 삼성의 태도에는 분명한 변화가 보였다. 이제껏 “발병자”라 부르던 피해자들을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질환으로 투병중이거나 사망한 직원들”, “삼성전자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겪게 된 분들”로 표현한 것부터가 달랐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故 황유미 님이 사망한지 7년 만이다.
고 염호석 님의 죽음과 시신ㆍ유골 탈취
그런데 그로부터 3일 후, 또 한명의 삼성 노동자가 사망했다.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노동자인 故 염호석 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분회장까지 맡아가며 적극적인 노조활동을 해오던 그가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을 보지 못하겠기에 저를 바친다.”며 “우리 지회가 승리하는 날 화장해서 뿌려 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다음 날,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장례식장에 모였다. 지난 해 7월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이후 벌써 동료 세 명을 잃은 그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고인을 추모하며 고인이 남긴 뜻을 지켜내고자 했다. 유족들도 처음에는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절차를 노조에 일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유족 중 일부가 갑자기 입장을 바꿨고, 그것을 빌미로 경찰 수백 명이 장례식장에 난입했다. 경찰은 동료의 시신을 지키려는 조합원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며 시신을 가져가 버렸다. 그 과정에서 20여명의 조합원이 연행되기도 했다. 그 다음날 고인의 시신은 화장되었고, 고인의 생모와 조합원들이 뒤늦게 화장장으로 달려갔지만 또 다시 대규모 경찰력이 화장장에 난입했다. 고인의 생모가 “아들의 뜻에 따라 장례를 치르게 해 달라. 유골이라도 돌려 달라.”며 절규했지만 경찰은 생모에게까지 최루액을 뿌리며 유골마저 가지고 갔다.
무엇 때문인가. 장례식장과 화장장에 난입하여 동료이자 아들이었던 고인을 추모할 권리마저 짓밟는 행위가 단지 “유족 중 일부의 요청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가. 다른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다른 의도로 자행된 폭력이라고 여기는 게 도리어 합당하지 않은가. 고인의 자살 이유가 ‘삼성의 노조탄압’이 아니었더라도, 추모객들의 울분이 ‘삼성’을 겨냥하지 않았더라도, 경찰이 그렇게 까지 하였겠는가. 이번 사태의 자초지종을 들은 사람 중 이 일이 삼성과 무관하다고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니 또 묻게 된다. 과연 삼성은 변하였는가.
삼성이 직업병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원한다면
지난 20일, 삼성과의 교섭에 참여하는 직업병 피해가족들이 호소문을 발표했다. “우리는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의 투쟁을 지지한다”며 “삼성은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노동자들의 절규를 들어라”, “경찰은 故 염호석 님의 유해 탈취에 대해 즉시 사죄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했다.
삼성의 최근 입장 발표를 보면,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최고 경영진의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 피해가족들의 고된 투쟁과 두 편의 영화(<또 하나의 약속>, <탐욕의 제국>)가 만들어낸 사회 여론의 영향일 수도 있고, 이 문제에 대한 해외 언론의 관심이 커진데 대한 압박 때문일 수도 있다. 진정한 문제해결의 의지만 있다면 그 배경이 뭐든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삼성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7년 만에 처음으로 삼성과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이 시점에 직업병 피해가족들이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이유 말이다. 즉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대하는 삼성의 태도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의 진정한 해결도 있을 수 없음을 삼성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