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인 약자들이 뭉치면 힘센 거악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완기 상임대표 l wklee1020@gmail.com
온 국민이 세월호 참사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참사 두 달이 지나면서 혹자는 “이제 그만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안타깝고 억울하고 분해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승객에게는 “가만히 있으라” 해놓고 몰래 탈출한 선장, 안전과 생명보다는 돈 한 푼을 더 중시했던 탐욕스런 자본, 그 부조리를 숨기기 위해 맺어진 선사와 관료의 더러운 유착, 대통령 한 사람만 바라보는 복지부동의 관료들, 지위만 누릴 뿐 직분은 다하지 못하는 정치인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전 정부와 남 탓만 하는 무능한 대통령, “우리가 남이가”로 상징되는 끼리끼리 문화, 모피아•관피아•해피아•법피아 등 온갖 종류의 패거리들, 그 파생 버전인 낙하산과 전관예우……
모든 세상사는 인과응보로 작동됩니다. 세월호 참사는 그 결과를 낳은 원인이 분명 존재합니다. ‘효율’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안전은 무시됩니다. 경쟁심과 승부욕이 지나치면 공정한 ‘게임의 룰’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너도 나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인식이 보편화될 때 우리 사회의 정의는 사장됩니다. 내게 좋은 것이 남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각성이 없으면 부가 부를 낳고 기득권이 기득권을 낳게 됩니다. ‘탐욕의 자유’를 공공의 힘으로 제약할 수 없으면 ‘평등’은 진정으로 설 땅이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여 있는 사고의 틀이 신자유주의입니다.
자본의 극대화된 탐욕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신자유주의는 폐기되어야 할 낡은 이데올로기입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극우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세워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새누리당이 금과옥조로 지켜온 신자유주의가 대중들에게는 철지난 유행가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집권 후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과의 약속을 모두 폐기하고 성장과 규제완화라는 신자유주의의 칼을 다시 빼들었습니다. 철저하게 국민을 기만한 것이며 그 배반의 정치로 나타난 결과가 세월호 참사입니다.
괴물이 되어버린 대자본에 정치권력이 종속되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를 견제해야 할 언론마저도 자본과 유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치권력, 자본권력, 언론권력의 삼자동맹이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시민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괴물이 되어버린 ‘자본’에게 ‘인간의 모습’을 호소하면 달라질까요. 족벌언론에게 제발 약자의 편에 서라고 애걸하면 변화할까요. 정권의 하수인 공영방송사 사장에게 이제 그만 자유와 독립을 찾으라고 외치면 홀로 설까요. 모두 아닙니다. 결국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강고한 삼자동맹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야당조차 제 앞가림을 못하고 있으니 딱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 있는 시민사회는 결코 희망이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수많은 양심세력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운동(movement)은 비상상황을 예측하고 잠자는 사람을 깨우는 일입니다. 불이 났으면 “불났다”고 소리치고 도둑이 들었으면 “도둑이야”하고 외쳐야 합니다. 그래서 운동가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권리 위에서 잠자는 사람, 부조리와 부패와 안일함과 탐욕에 빠진 정권 아래서 꿈만 꾸는 사람, 오만한 거짓언론 앞에서 졸고 있는 사람, 이들 모두 일어나라고 소리치는 것이 운동입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겁박하는 부패한 정권에 맞서 “가만있지 않겠다”고 떨쳐 일어나는 것이 운동입니다. 운동은 벌거벗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를 만듭니다. 운동은 일당 천만 원씩 벌었던 총리 후보가 그것은 불법이 아닌 관행일 뿐이라고 태연하게 말할 때 그것이 부끄러운 일임을 일깨워주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적폐를 일소하고 악습을 타파하며 새로운 제도와 의식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마침 KBS의 막내 언론인들이 통렬한 반성과 함께 잠자던 KBS의 양심세력들을 깨웠습니다. 그것은 마침내 KBS의 개혁과 변화를 외치는 거대한 파도가 되고 있습니다. 이어서 노동자들이 일어섰습니다. 종교인과 언론학자와 양심적인 법조인들도 나섰습니다.
민언련이 언론운동을 시작한 지 30년을 맞고 있습니다. 30년 동안 민언련이 우리 사회에 뿌린 씨앗과 결실은 적지 않습니다. 그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양심적인 약자들이 힘을 합치면 힘센 거악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