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여행] 인도에서의 12박 13일 (2014년 4_5호)
등록 2014.05.2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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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의 12박 13일


조민혁 회원 l cmh5057@gmail.com 



25명의 대학생들과 13일간 인도의 남부지역 ‘첸나이’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이 대견함과 뿌듯함으로 가득하다. 고작 13일 남짓한 시간 동안 그 많은 일들과 귀한 인연이 있었다. 여전히 감동적이고 가슴 뭉클하며 되새길수록 선명하다. 


후텁지근한 공기는 이곳이 낯선 이국 땅 임을 실감케 했다.


도로 한복판을 점거한 소떼들, 쓰레기 태우는 냄새와 함께 끈끈하게 감겨 오는 풀내음. 한국은 영하의 날씨일 텐데… 도로 위 경적소리는 또 얼마나 크던지 끊이지 않는 소음에 귀가 먹먹해졌다. 처음 마주친 인도의 공기와 냄새는 무척 생소했다.


낯설기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 만난 현지 사람들은 생김새가 나와 많이 달랐다. 너무 까맣고 털이 많았다. 영단어를 어렵게 조합하며 대화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역시 지구는 한 마을이었던가.


우리는 그들과 며칠 사이 금세 친해져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눈빛과 손짓 발짓으로도 충분하니 긴 말은 필요 없었다. 거기에 음악만 있으면 어찌 그리들 신이 나는지,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가며 웃고 떠들었다. 어느새 인도와 한국의 구분은 간데없고 한바탕 웃어젖히는 사람들만 남았다. 차이라고는 오직 피부색뿐이었다. (더욱이 나는 피부가 까만 편이라 실제로 별반 다를 게 없더라.) 같은 방을 쓴 한 인도 학생은 나와 공통점이 많은 친구였다. 둘 다 영화를 좋아하고 치킨이라면 사족을 못 쓰며 춤을 잘 췄다. 이렇게 멀리서도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가만 생각해보니 인도의 공기와 냄새는 한국의 여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도 그렇다. 인도의 친구들도 우리처럼 꿈꾸는 청춘이었으며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세대였다. 특히 웃는 얼굴은 우리와 정말 똑같았다. 처음엔 낯설던 그들이 어느새 오래 사귄 친구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그곳의 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보였다. 스스럼없이 다가와 내 이름을 묻던 녀석들, 까르르 웃는 얼굴과 내 팔을 붙잡던 작은 손까지 여전히 선명하다. 그 아이들과 뛰어놀다 보면 나도 어느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교실 밖 햇살이 비치는 곳으로 나와 선생님 주위에 둘러앉아서 재잘거리는 그네들 모습이 어찌나 정겹던지… 아직도 아이들과 헤어지던 날을 잊지 못한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숙소로 향하는 차에서 내 옆에 앉은 친구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신을 무척 따르던 인도 소녀 ‘아차나’에게 작별인사를 제대로 못 했다는 것이다. 이대로 헤어지면 자신이 잊힐까 봐 걱정하는 걸까? “아차나는 널 오랫동안 기억해줄거야”라고 다독여 보았다. 실제로 나는 그럴 것이라 믿었다. 우리가 이렇게나 열심히 했는데 분명 두고두고 기억해주지 않을까… 그러나 이 친구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내가 잊혀지는건 상관없어요. 아차나는 어리니까 아마도 금방 날 잊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아차나를 잊고 싶지 않아서 걱정이에요.” 그제야 내 착각을 깨달았다. 나는 여지껏 우리가 그 아이들에게 베풀고 온 줄 알았건만, 그 아이들 역시 우리에겐 소중한 선물이었던 것이다. 따뜻한 마음과 정성, 그리고 진심어린 미소와 잊지 못할 추억들이 있었다. 주기 위해 갔는데 되려 양 손 가득 받아온 셈이다. 누가 봉사자이고 누가 수혜자인가? 마음에 한가득 선물을 담아온 것은 오히려 이쪽인 걸.


12박 13일은 워낙 짧기도 짧았거니와 함께 한 이들과의 정을 떼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헤어져야할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하나 둘 눈물을 훔치더니 어느새 울음바다로 번졌다. 어떤 이는 주저앉아 아이처럼 훌쩍이고, 또 어떤 이는 “돌아가기 싫으니 내 여권을 찢어 달라”며 펑펑 울었다. 울면서, 또 서로 우는 얼굴을 보고 웃으면서 이별의 아쉬움을 삼켰다. 나는 정든 친구들을 기억에 새기기 위해 모두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봤다. 그러자 함께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첫 만남, 아이들과의 수업, 음악과 춤, 그리고 같이 웃었던 그 많은 순간들…. 12박 13일을 가슴으로 머금은 채, 그렇게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10시간의 비행거리. 문화와 관습, 피부색마저 판이한 낯선 땅 인도. 우리는 그곳에서 오래 사귄 것처럼 편한 친구들을 만났고, 잊고 싶지 않은 선물을 받았으며 새로운 나의 모습을 찾았다. 웃기도 많이 웃었고 울기도 엄청 울었다. 이런 즐거운 시간을 또 가져볼 수 있을까? 인도에서 찍어 온 사진들을 다시금 들여다았다. 화면 속 사람들의 표정이 어찌나 해맑은지…. 보고 있으니 입 꼬리가 절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