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과 사랑에 빠지기까지
손성배 회원 l 89sungbae@gmail.com
지난 4월 25일(금) 밤 7시, 민언련 신입회원의 날 행사가 민언련 사무실에서 열렸습니다. 신입회원의 날 행사는 비공식적으로 민언련 역사상 최초였습니다. 행사 참석을 위해 불타는 금요일, 친구들과의 약속을 뒤로 하고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부터 고소한 김치전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습니다. 민언련 사무실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신입회원들과 앉아있자니 참으로 어색했습니다. 하나 둘 들어올 때마다 어색한 기류가 사무실에 더해졌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견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글쓰기 강좌 10번에 신문분과 모임 2번으로 총 12번이나 왔었던 익숙한 장소인데도 책장을 배회하면서 꽂혀 있는 책들의 제목을 눈으로 훑었습니다.
“떡볶이 드세요. 김치전 드세요. 오렌지, 포도 주스 드세요”
어색한 분위기는 활동가님들이 준비하신 떡볶이와 김치전 덕분에 이내 깨졌습니다. 오신 분들과 간단히 인사를 하는 동안 유민지 활동가는 떡볶이는 국그릇에, 김치전은 명절 차례 음식처럼 접시에 산처럼 쌓아서 주셨습니다.
식사와 함께 통성명을 한 후 김태진 선생님께 ‘언론의 존재 이유’와 언론시민운동의 역사에 대해 들었습니다. 김 선생님은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한 동아일보 기자셨습니다. 언론운동의 산증인께 우리나라 언론의 시작이었던 조선시대 깃발을 단 인력거꾼부터 오늘날 팟캐스트,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대안언론까지 그 의미와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땅의 언론은 청와대의 진두지휘 하에 움직이고 있다”
김 선생님은 이 말씀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입법, 사법, 행정권에 더해 언론은 민주국가를 구성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제4부’라고 배웠습니다. 언론이 망가지면 삼권분립이 모호해지고 견제와 균형이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가 무너진다고도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언론붕괴의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정언유착’이었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전국적으로 50여개의 지하신문이 있었습니다. 그중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 발간한 조선독립신문은 3.1운동을 앞두고 당시로는 엄청난 1만부를 찍어 신문을 배포하면서 거국적으로 민중들이 일어날 수 있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랬던 우리나라의 신문이 왜 망가졌는가. 일제가 친일언론을 양성했기 때문입니다. 유신체제에서도 반정권언론에는 고관세를 부과하고 공무원들에게는 구독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애완견 같은 친정권언론에는 정부가 나서서 호텔을 지어주고 사옥을 마련해줬기 때문입니다. 편집국에 중앙정보부 요원을 상주시키고 1단짜리 기사도 검열을 통과해야 지면에 실었기 때문입니다.
2시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 강연자와 듣는 이 모두 아쉬워하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신입회원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자기소개, 민언련 회원이 된 계기 등을 말하며 친목을 다졌습니다. 뒤풀이를 시작하면서 가장 오랜 시간 민언련과 함께하신 사무처장님이 건배사를 고사하셔서 가장 신참 회원인 제가 건배사를 했습니다.
“월 1만 원에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민언련 만세!”
조건 없이 함께 하게 해주고, 아낌없이 가르쳐주고, 올바른 언론이 가야할 길을 제시해주는 민언련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을 그때 했습니다. 다른 회원들도 자기소개와 입회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유민지 활동가가 교회 누나고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회사에 다니는 이소룡을 닮은 신입회원, 공정선거보도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고 후원하고 싶어서 왔다는 갓 스무 살 남학생 등 민언련 회원이 된 이유는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신입회원의 날 후기를 쓰기 전날인 5월 7일(수), 촛불집회에 처음으로 참석했습니다. 민언련 회원이 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2008년 광우병 파동 촛불집회는 아버지와 을지로에 자장면 먹으러 가다가 가두행진을 하는 시민들을 발견했지만 멀찌감치 서서 구경했습니다.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촛불집회는 매일 시청 앞에서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으면서도 시청 앞뜰에 발조차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2014년 5월, 여의도 MBC 정문에서 ‘MBC가 방송이면 리어카는 페라리’라는 자보 옆에 서서 ‘재난 키우는 관제방송 규탄 국민 촛불집회’ 현수막을 들었습니다. 정론직필, 바른 주장을 펴고 사실을 그대로 전한다는 언론의 정도를 잊은 언론사 앞에서 민주언론을 꿈꾸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섰습니다. 그리고 집회에 참여하면서 꿈을 꾸었습니다. 민언련을 비롯한 민주언론운동 시민단체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언론인이 아니라 시민들이 바른 언론인이라고 칭찬하고 엄지손가락 치켜세워주는 언론인이 돼야겠다는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