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이슈] 세월호 침몰 사건 보도와 재난보도 준칙 (2014년 4_5호)
등록 2014.05.2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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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호 침몰 사건 보도와 재난보도 준칙


김성재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l sjckim@Chosun.ac.kr



대형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건은 부실한 한국의 사회체계가 초래한 비극적인 대재앙이다.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은 이 사건에서 한국의 사회체계는 자본과 권력의 횡포에 짓눌린 허약 체질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국의 언론체계 역시 자본과 권력에 종속된 무질서와 무능력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반복되는 오보, 무질서한 취재경쟁, 권력자 지향 보도, 희생양 찾기, 재난 피해 당사자를 배려하지 않는 인터뷰 강요와 선정적 보도 등 모든 언론사는 무한경쟁에 몰입했다. 그래서 사건을 일으킨 선박회사, 긴급 재난구호에 무능한 정부, 취재경쟁에서 보도의 정확성보다 신속성을 중시하며 특종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언론사는 모두 피해 당사자의 적이 되고 말았다. 


지금 희생자 유가족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느끼는 불신과 분노의 대상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한국의 전체 사회체계, 곧 국가다.


세월호 보도 속에서 부각되는 언론체계 혁명의 필요성


권력과 유착된 부정한 돈에 팔려버린 국민의 안전은 아무리 많은 주검으로도 보상될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살아남은 자의 분노가 사회체계 혁명을 일으킬 의지밖에 없다. 세월호 침몰사건이 자연재난이 아닌 인간의 부족한 안전예방의식에서 비롯된 기술재난이기에 더욱 그렇다. 언론체계의 혁명도 예외가 아니다.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서해페리호 침몰사건(1994), 삼풍백화점 붕괴사건(1995), 대구지하철화재참사(2003) 등 대형 재난이 있을 때마다 모든 언론매체가 준수해야 할 재난보도준칙 제정이 논의되었지만, 아직 개별 언론사에서 마련된 가이드라인만 부분적으로 존재한다. 이번 대형 참사가 일어난 뒤 한국기자협회가 재난보도준칙을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이 준칙이 언제 확정·제정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보도준칙이 마련된다고 해도 이는 언론체계 혁명의 시작에 불과하다. 준칙을 준수해야 할 언론인의 반복된 학습과 실행훈련이 없다면 종이쪽지 위의 허망한 구호에 불과하다. 언론윤리실천요강에는 재난 보도 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거나 피해자의 치료를 방해해서는 안 되며, 희생자 및 가족에게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취재준칙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재난 현장에서 속보경쟁에 매몰된 기자들은 윤리강령이나 실천요강을 지키지 않는다. 재난 보도 시 언론인이 지켜야 할 기본 덕목은 불안, 공포 그리고 슬픔에 빠진 사회공동체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번 세월호 침몰사건을 다룬 기자들은 소속 언론사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어뷰징(인터넷에서 일어나는 기만적인 검색어 장사)을 통한 상업화, 흥미를 유발하는 과장보도와 희생양 찾기 묘사를 이용한 극화 그리고 선정주의적 인간 표적보도에 아까운 시간과 지면을 허비했다.



재난보도준칙이 반드시 담아야 할 내용은


더 이상의 언론체계 붕괴를 막을 대안은 없는가? 언론체계의 혁명을 위한 첫 걸음으로서 제정·준수되어야 할 재난보도준칙에 다음과 같은 사항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재난보도는 피해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재난구호 및 예방의 차원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이 때 자극적인 기사와 보도영상은 자제되어야 한다. 


둘째, 재난보도는 재난을 당한 사회가 일체감을 가지고 재난을 효율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사회공동체 유지에 주력해야 한다. 동시에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유사한 재난을 사회공동체가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예방보도도 함께 수행되어야 한다. 


셋째, 재난보도에서 피해자의 생사문제에 치중한 나머지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명예가 훼손될 수 있는 선정주의적 개인화 보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이 때 피해자에 대한 기자의 직접적인 접근을 막기 위한 포토라인(photo line) 설정이 요구되며 클로즈업과 같이 지나치게 강조된 보도사진이나 영상은 억제되어야 한다.


넷째, 기자는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하고 재난의 긴급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보도준칙의 학습과 실행훈련을 수시로 실시해야 한다. 또한 언론사는 재난보도 전문기자를 육성하기 위해 체계적인 인력양성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다섯째, 기자는 중앙재난대책본부와 같은 정부기관이나 재난구호기관이 제공하는 기자회견 및 보도 자료를 신중하게 확인하여 보도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오보로 인해 입을 수 있는 재난 희생자의 정신적 피해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언론인 최후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