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토달기] 조ㆍ중ㆍ동의 '방황하는 칼날' (2014년 4_5호)
등록 2014.05.2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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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ㆍ중ㆍ동의 '방황하는 칼날


전다은 신문모니터분과 회원 l ekdms302@hanmail.net



“기자 선생님들이 사실을 쓰면 한 사람을 살리는 거고, 사실을 왜곡하면 한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3월 15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간첩 증거조작 사건 국민 설명회’에서 사건의 피고인 유우성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과 왜곡 사이, 5대 일간지들은 어디쯤 위치해 있었을까? 검찰이 제출한 문서 3건이 모두 위조라는 중국대사관의 공식 발표가 있었고, 국정원 협조자 김 모씨의 자살 기도가 있었다. 검찰은 ‘진상 조사’에서 ‘공식 수사’로 전환했고 이후 국정원 권 모 과장의 또 다른 자살 기도가 있었다. 신문분과는 중국대사관의 위조 확인이 있었던 2월 14일부터 권 모 과장의 자살기도가 있었던 3월 22일까지 국내 주요 일간지(조선·동아·중앙일보, 한겨레·경향신문) 보도를 조사했다. 


사실은 감추고 추측은 부풀린다


증거위조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유 씨가 간첩이라는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추측에 불과하다.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간첩이냐 아니냐를 ‘판결’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 아니다. 일부 신문들은 위조가 확인됐음에도 보도에 소극적이었다가 3월5일 김 씨의 자살 기도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본격적인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3월5일 이전과 후의 보도량 차이를 보면 이는 분명히 나타난다.


 

 2/14~3/5(총20일)

3/6~3/22(총17일) 

 조선 

 10

 56 

중앙

 12

39

동아

 19

50

한겨레

 55

81

경향

 46

65

           <표1> 신문별 국정원 협조자 자살 기도 사건 전후 보도량 비교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중국의 위조문서 확인이 있었던 2월 14일부터 거의 매일 다량의 기사를 내보냈다. 위조 과정에 참여한 인물들과 위조문서의 이동경로, 위조의 세부 내용 등을 그림과 증거물들의 사진을 활용해 독자들에게 최대한 자세히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반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3월 5일 이전의 보도량이 그 후 보도량의 1/5에서 1/3에 불과했으며 그 중에서도 상당수가 여전히 유 씨의 간첩 혐의를 염두에 둔 기사들이었다.   


동아일보는 2월 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1심 재판 과정에서 증인으로 나선 A씨(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재판에서 배척)의 인터뷰를 그대로 실었다. 의혹은 있지만 간첩은 맞다는 식이다. 조선일보의 <北에서 中으로 ‘入·入·入’… ‘出’기록 없는 간첩사건 미스터리>(12면/2.24)는 제목에서부터 변호인 측 증거물을 “미스터리”로 지칭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또 <국적은 中國… 왜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 왔나>(12면/3.3)에서 중국 정부가 민변의 “손을 들어줘” 간첩 혐의 여부는 “증발하고”, 이 사건이 증거 조작 사건으로 “비화했다”고 말한다. 



누가 사람을 죽이고 있나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신문이 진행 중인 재판의 피고인에 대한 불필요한 신상 정보를 남발했는지다. 유 씨가 말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의 기사 <유우성, 2012년 대학원 다닐 때 연예인들과 찰칵 (중략) 대학원 선배 하희라·안재욱>(10면/3.18)은 사건의 본질과 동떨어진 개인의 사생활을 사진과 함께 들춰내고 있다. 전날의 <北에 26억 송금 (중략) 유우성은 對北송금 브로커?>(12면/3.17) 기사도 마찬가지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유 씨의 유럽여행 사진과 함께, 그가 수억 원의 돈으로 호화생활을 했다면서 이런 행동은 북한 보위부의 비호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검찰 측의 추측을 인용한다.


중앙일보의 <검찰 “형편 어렵다며 12번 해외여행” 유씨 “세차로 돈 벌며 영국 어학연수”>(12면/3.18) 기사와 한겨레신문의 <잠 못 드는 하루하루…얼굴 알려진 뒤 과외 알바도 잘려>(3면/3.1) 기사는 둘 다 유 씨의 인터뷰 기사임에도 내용과 구성에서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먼저 중앙일보의 기사는 유 씨를 인터뷰하면서 기사 중간중간에 검찰 측 의견을 넣었다. 예컨대 유 씨가 해외여행에 대해 보수언론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한 내용 바로 밑에 “※유씨는 한국에 온 뒤 총 12차례 해외를 다녀왔다.”라는 설명을 다는 형태다. 독자에 따라서는 유 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만한 구성이다. 반면 한겨레신문의 기사는 토요판 커버스토리로 유 씨와 유 씨 가족, 친척, 친구 등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자세히 풀어나가며, 사건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하고 있다.


또 다른 쟁점은 사건의 발단인 유가려 씨의 증언이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 내의 가혹행위와 유도 진술 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조명했는지다. 한겨레신문은 <제2의 유우성은 또 나온다…합신센터 있는 한>(17면/3.22)에서, 경향신문은 <독방 구금 유씨 동생 “조사관이 ‘싸가지 없는 X’ 등 욕설·강압”>(3면/3.14)에서 합신센터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했다. 하지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에서는 이와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법원이 3월 9일에 유가려 씨에 대한 수사 절차가 부당했다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세 신문은 모두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사실마저도 싣지 않은 것이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원칙


5개의 신문들은 공통적으로 사설을 통해 국정원과 검찰의 책임을 묻고 있다. 하지만 비판의 세기는 각기 다르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이 즉각적인 특검 도입과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반면, <조선>·<중앙>·<동아>는 애매한 논조를 펼치고 있다. 동아일보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지키려면 특단 조치 취하라>(사설/3.10)를 통해, 중앙일보는 <간첩사건 증거 조작, 몸통 제대로 밝혀야>(사설/3.8))를 통해 특검도입에 “수사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경우”라는 조건을 붙인다. 검찰이 범죄의 당사자 격인데도 이들이 사건을 수사하는 것을 일단 믿어보자는 식이다. 또 동아일보는 <문서 위조 연루된 국정원, 남재준 원장은 답해야 한다>(사설/3.8)에서 검찰의 불법행위를 “직무 태만”으로 표현한다. 조선일보는 <이런 무능·부도덕 국정원에 安保 맡길 수 있겠나>(사설/3.8)에서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무능”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미 이들 국가기관의 범죄 실상이 드러났음에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 <이런 무능ㆍ부도덕 국정원에 안보 맡길 수 있겠나>(조선사설/3.8)


하지만 이 세 신문의 원칙은 대상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진다. 앞서 얘기했듯 유 씨의 간첩 혐의 앞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유죄추정의 원칙’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이 유 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집중하기보다 이번 사건에서 명백히 드러난 조작사건에 집중하는 것과 대비된다.


전가의 보도, ‘국익’


 ‘국익’이라는 미명하에 한 사람과 그의 가족을 간첩으로 몰아간 국정원과 검찰. 이 국가기관들이 힘을 합쳐 초유의 범죄를 일으켰음에도 이들을 겨냥하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칼날은 너무나 무디다. 헌데 이 세 신문들이 벼려놓은 칼날은 엉뚱하게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민주당을 겨냥하고 있다. 그것도 국정원과 검찰이 강조하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 <민주당의 간첩 사건 조사에 국익은 실종됐다>(동아사설/2.26)


동아일보는 <민주당의 간첩 사건 조사에 국익은 실종됐다>(사설/2.26)를 통해 민주당의 진상조사를 “국익에 반하는 행위”라고 비난한다. 중앙일보도 <정치권의 대북 인적정보망 훼손, 정신 나갔다>(사설/2.27)에서 민주당이 “북한에 표적을 갖다 바쳤다”고 표현하며 원색적으로 비난한다. 중앙일보는 여기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휴민트가 망가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더하기도 한다(<대북공작 라인도 개입…국정원 두 축 진흙탕 빠졌다>중앙,3면/3.12). 조선일보의 칼날은 주로 민변에게 향해있다. <검찰 놔두고 民辯만 접촉… 수상한 中대사관 女직원>(12면/2.26) 기사는 중국대사관 직원을 굳이 “여직원”이라고 표현하고 “친북 성향 인사”라는 점을 강조해 민변과 “특별한” 커넥션이 있다는 것을 아무런 검증 없이 내보내고 있다. 더 나아가 조선일보는 <[양상훈 칼럼] 민변의 쾌거가 꺼림칙한 까닭>(34면/3.20)에서 과거의 ‘왕재산 사건’을 거론하며 민변이 문서 위조를 밝혀낸 것이 “독이든 사과를 받아든 것 같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게 한다고 말한다.


4월 14일.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결론은 대공수사 처장(3급)을 최고위급 책임자로 한 대공수사팀 과장급(4급) 직원들이 벌인 날조극이었다는 것. 남 원장은 2분짜리 짧은 사과를 한 뒤 자리를 보전했다. 또 국정원 수뇌부와 공판 관여 검사들은 모두 면죄부를 받았다. 이에 대한 4월15일 자 조선일보의 사설 한 구절이 흥미로워 붙여 둔다. “나라의 최고 방첩기관이 변호사 단체에 완패하고 말았다.” 조선일보가 국민의 판단력을 얼마나 얕잡아 보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