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내기로 끝난 방송공정성특위
최진봉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l choi0126@gmail.com
올해 초 박근혜 정부는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해 방송 정책의 일부를 합의제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독임제 기구인 미래창조과학부로 대폭 넘기는 방안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시도에 대해 야당과 언론단체들은 방송의 공정성이 훼손 될 수 있다며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했으나 여당이 이를 무시하고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여야는 대치했다.
이처럼 방송정책을 어느 부서에서 관장하느냐를 놓고 여야가 극한 대치를 보이는 가운데, 박 대통령은 이미 확정된 부처의 장관 임명까지 미루는 몽니를 부리면서 야당이 국정의 발목을 잡아, 새 정부가 출범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야당을 압박했다. 결국, 야당은 정부와 여당의 압박에 굴복해 방송정책의 일부를 미래창조과학부에 넘겨주는 정부안에 합의해 주면서 국민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방송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방송공정성 특별위원회’를 국회에 구성하는 조건을 붙여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해 주었다.
이렇게 구성된 국회 방송공정성특위가 활동 시한인 6개월 동안 회의조차 변변히 열리지 않고 별 성과가 없이 끝날 기미를 보이자, 여야는 부랴부랴 활동시한을 2개월 더 연장해 총 8개월 동안 활동을 했다. 그러나 국회 방송공정성특위는 출범 후 8개월 동안 별 다른 성과와 결과물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지난 11월 28일 회의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종료했다.
방송공정성특위가 별 다른 성과와 결과물 없이 활동을 마치자, 그나마 방송의 공정성 회복을 위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언론단체나 시민단체들에게 더 이상 정치권으로부터는 방송의 공정성과 관련된 어떠한 기대도 할 수 없다는 참담한 현실을 일깨어 주는 계기만 마련해 주고 말았다.
이처럼 방송공정성특위의 활동이 별 다른 성과도 내지 못한 가운데 종료를 맞이하게 된 결과의 책임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모두에게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여당인 새누리당의 책임이 더 크다. 방송공정성 특위의 이상민 위원장은 지난 10월 특위 활동시한 종료를 앞두고, 여야에서 추천을 받아 방송공정성특위에 진술인으로 참석했던 방송 전문가들 중 여당추천 5명과 야당 추천 5명 등 총 10명의 전문가로 자문단을 꾸려 방송법 개정(안)을 마련해 여야에 개정안 추진을 요청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추천한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서 만든 개정안마저 거부했다. 이처럼 여야 추천 방송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도출해낸 합의안을 일언지하에 거부한 새누리당의 태도는 애초에 새누리당이 과연 방송공정성특위를 통해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방안을 만들 생각은 있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은 방송공정성 특위 활동을 하면서 단 한명의 의원도 방송법 개정안을 제안 하거나 발의한 적이 없다. 결국 새누리당은 현행 방송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더 이상 고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밖에 이해 할 수 없다. 이러한 새누리당의 태도는 단지 정부조직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 달래기와 생색내기로 방송공정성특위의 구성을 합의해준 것으로 볼 수밖에 없으며, 이는 야당과 방송 종사자들 그리고 국민들을 우롱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의 방송 공정성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결국 박근혜 정부의 방송 공정성에 대한 태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방송공정성특위 활동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게 된 책임에서 야당인 민주당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당은 이번 방송공정성특위 활동에서 전략부재로 인해 무능하게 새누리당에 끌려 다니는 모습만을 보여 주었다. 특히 민주당은 쟁점화 된 방송공정성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이를 정치적 협상카드로 활용하면서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여 중요한 언론현안들이 다른 정치적 이슈들과 현안 때문에 계속 뒤로 밀려나는 상황이 초래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특별다수제 도입과 보도·제작·편성책임자 임명동의제 및 중간평가제 도입 등 방송의 공정성 확립을 위한 방안들이 하나도 채택되지 못했고, 그 사이 방송의 공정성은 갈수록 후퇴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공정방송을 잃어버린 시민들에게 전가되고 말았다.
결국, 이번 방송공정성특위 활동은 여야 정치권이 각각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특위를 적당히 이용하면서 정작 특위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방송의 공정성 회복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서, 알맹이는 빠진 생색내기용 빈 껍데기 특위에 불과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