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권력>, 흐릿한 답만 남기다
박혜진 방송모니터분과 회원 l chic_qhqo@naver.com
“지금 당신의 권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S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최후의 권력>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던져주기 위해 떠난 멀고도 긴 여정을 총 5부작에 담았다. 1, 2부 <7인의 빅맨>에서는 대한민국 정치인 7인들이 오지에서 원시의 리더형태인 빅맨이 되어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려 했고, 3부 <왕과 나>에서는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는 왕의 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살펴보려 했다. 4부 <금권천하>는 미국의 모습을 통해 돈과 권력의 결탁이 국민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를 전달하려 했으며, 5부 <피플, 최후의 권력>은 결국 권력은 우리 손에 있었음을 전하며 마무리지었다.
<최후의 권력>은 ‘권력’을 주제로 다루면서 오늘날 권력을 위임하는 이도, 권력을 건네받은 이도 잊어버린 ‘진짜 권력의 소유자’에 대해 일깨워주려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 또한 1, 2부 <7인의 빅맨>은 섭외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리더십이라면 둘째가 서러운 전현직 정치인들이 아무 것도 없는 오지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보여주는 신선한 시도를 통해 시청자들의 흥미를 돋우었다는 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5부 각각의 의도,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의 전체적인 주제의식은 끝내 프로그램 내용 안에서 실현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먼저 이 다큐멘터리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큰 줄기를 따라 논리력 갖춘 ‘흐름 있는 구성’은 없고 여러 사례들만 나열해 전반적으로 산만하다는 것이다. 4, 5부의 경우 다양한 사례를 담고 있지만 각각의 사례는 스케치처럼 훑듯이 지나가버려 심도 깊게 다뤄지지 못했다. 또한 각 사례들 간의 연결고리가 거의 없어 왜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는 건지 시청자들이 납득하기 어렵게 했다. 특히 5부 <피플, 최후의 권력>은 도입부에 ‘돈이 곧 권력’임을 보여준 중국의 모습 이후에 ‘국민의 권력이 실천되고 있는’ 사례들이 등장하는데 이것들은 하나로 묶이지 못해 저마다 따로따로 떨어진 파편에 머물고 만다.
이 프로그램은 이렇듯 여러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 상당 비율을 차지하지만, 정작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물 흘러가듯이 넘어가버렸다. 4부에서 언급된 ‘셧다운제’나 ‘오바마 케어’에 대한 설명은 쫓기듯 빠르게 지나가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이해를 충분히 하기 어렵다. 설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소개되는 안타까운 사연들은 다큐멘터리가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논리성 대신 시청자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례들이 ‘진실’을 보여주는 것에 주저했다는 점이다. 3부에서 보여준 왕권국가의 모습은 마치 이 국가들의 왕들이 절대선(善)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일부 시청자들이 ‘브루나이로 이민가고 싶다’라 할 정도로 브루나이는 유토피아처럼 그려졌다. 하지만 왕이 국민에게 베푸는 부의 기반인 석유가 진정으로 왕의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 4부에서 미국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지만, 정작 정치와 경제 권력의 결합으로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사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5부에서 소개된 감곡마을 할머니들의 정치를 실천하는 이야기는 유쾌하고, 국민이 권력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필요성과 당위성을 잘 드러내는 사례였다.
그러나 방송은 마치 힘을 합치면 우리의 주장이 관철될 수 있을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면서, 밀양 송전탑 건설이나 국정원 선거 개입 문제 등 실제로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울부짖는 목소리에 정치권이 고개를 돌리고 귀 기울이지 않는 현실은 보여주지 않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권력을 빼앗긴 채 고통 받는 우리의 삶을 정면으로 보는 것은 회피하고 말았다.
권력이 국민의 의견에 귀를 막고 제멋대로 나가는 현 상황을 보면, 이 프로그램은 나름대로 시의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도, 좋은 메시지를 가진 프로그램이라도 제대로 된 전달방식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오랜 기간 제작한 <최후의 권력>에 아쉬움이 남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