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낙인 찍는 건 바로 이 맛 아닙니까
최재혁 신문모니터분과 회원 l beatmaro@naver.com
미디어의 낙인찍기는 의외로 어렵지 않다. 특정한 사건을 근거로 해서 그럴싸한 이름만 지어주면 대상자는 어느새 그 낙인이 찍힌 마녀가 된다. 11월 22일 저녁, 전북 군산시 수송동 성당에서 열린 시국미사도 이런 낙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국 미사의 목적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규탄’ 이었다. 그러나 박창신 원로 신부의 26분 강연 중 약 3분간의 연평도, NLL관련 발언으로 인해 미사는 어느새 북한을 추종한 세력이 모인 미사가 되었다. 트위터 121만건의 추가 발견으로 인해 궁지에 몰렸던 새누리당과 정부는 이것을 국면전환용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미사를 주도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종북사제(從北司祭)’ 운운하며 비난했다. 이들이 정말 종북 사제라 시국미사를 연 것인가?
우리 분과는 시국미사에 관한 첫 보도가 있었던 11월 23일부터 11월 30일까지 8일간의 모니터링 기간 동안 5개 주요 일간지가 정의구현사제단의 이번 전주 시국미사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 종교인의 정치개입은 타당한가
<중앙일보>는 <[노트북을 열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30면/11.27)에서 예수의 이 말은 자신의 복음이 현실의 정치, 사회적 문제에 대한 ‘판결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 이야기했다. 즉 복음을 실천해야 할 사제가 복음을 따르지 않고 이번 시국미사처럼 현실의 정치문제에 개입한 것은 큰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입장은 중앙뿐만 아니라, 조선, 동아일보 역시 견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조선일보>는 <[사설] 정의구현사제단, 왜 세상의 조롱거리 됐는지 아는가>(35면/11.26)에서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를 명시하고 있고 천주교 교회법도 사제들의 교화권(敎化權)이 정치와 과학 분야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다” 며 종교인의 정치개입을 비판하고 있다. <동아일보> 역시 <[사설] 대통령 사퇴 요구 신부들 ‘정치구현사제단’인가>(31면/11.23)를 통해 “지금이 종교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목소리를 못 내는 시대냐”고 반문하며 세속의 일은 세속에 맡겨야 된다고 성토했다.
▲ <정의구현사제단, 왜 세상의 조롱거리 됐는지 아는가> (조선 사설/11.26)
반면 다른 입장도 존재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의 말은 세속에 사제가 개입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는 해석이 있다. 예수의 이 말은 국가에 대한 의무도 다하면서 성도로서의 의무도 다하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개입이나 변혁을 하지 말라는 말과는 엄연히 별개의 말이다. 이런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신문이 <한겨레>와 <경향>이다.
<한겨레>와 <경향>은 정치개입에 대한 직접적인 판단을 내리는 기사는 거의 없지만 교황의 발언과 교황청 교리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사제의 정치개입을 지지하고 있다. 한겨레는 <프란치스코 교황 “더 잘 통치하도록..능력껏 정치에 참여해야”>(2면/11.26)에서 “능력껏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의 사회교리에 따르면 정치란 가장 높은 형태의 자선입니다.” 라는 교황의 발언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동일한 면의 <교황청 사회교리, 사제의 ‘현실 참여’ 보장>(2면/11.26)에서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285조와 287조를 보면 직접 개입 금지란 △공직을 맡는 것 △정당 가입 △노조 가입, 이 3가지에 대한 금지를 말한다” 고 가톨릭 사회교리를 설명한다. 이 3가지가 아닌 이상 정치개입은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종북 단체’?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관점 역시 조선, 중앙, 동아 와 경향, 한겨레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선 정의구현사제단의 행적에 대한 해석이 판이했다. 조선일보는 <[정의구현사제단 파문] 정의구현사제단은 어떤 단체...>(4면/11.26)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은 민주화 이후에 국가보안법 폐지, 반미(反美), 통일, 반전(反戰) 운동 등으로 방향을 돌리면서 이념적 편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 말했다. 중앙 역시 “민주화가 이뤄진 87년 이후 사제단은 이념색 짙은 사실상의 정치활동을 해 왔다.” 며 <문규현 방북 이후 이념색 짙어져..끊임없는 종북 논란>(6면/11.25)에서 밝혔다.
반면 경향은 <[여적] 정의구현사제단>(26면/11.23) 기사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걸어온 행적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인혁당 사법살인,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 등 민주가 짓밟히고 정의가 유린될 때마다 온몸으로 독재에 맞선 단체”라고 기술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성격을 가진 단체가 시국선언을 할 정도면 지금의 시국은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본 것이다.
▲ <北 노골적으로 편든 신부, 도대체 어느 나라 사제인가> (동아 사설/11.25)
그런데 동아는 행적 비판에 더 나아가 노골적으로 종북을 덧입히려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北 , 각종단체 내세워 대남 선전 선동 강화>(3면/11.25) 기사를 동일한 면에 기재한 <靑 “종북발언 신부들 조국이 어디인지 의심”>(3면/11.25) 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4대강-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 주도>(3면/11.25) 사이에 집어넣었다. 마치 북한이 정의구현사제단을 충동해 이번 시국미사를 일으킨 것처럼 읽힌다.
또한 <[사설] 北, 노골적으로 편든 신부, 도대체 어느 나라 사제인가>(31면/11.25)에서는 사제단의 국가 정체성을 거론하며 “우리 영토에 170여 발의 포탄을 쏟아부어 군 장병 2명과 민간인 2명을 숨지게 한 도발을 두고 북한의 정당방위라니 박 신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제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 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한겨레는 <[김종구 칼럼] 조국이 어디냐고 묻는 당신에게>(34면/11.26)에서 “39년간의 사제 생활 동안 박 신부가 그려온 조국의 모습은 선명하다. 민주화된 나라, 소외된 이웃이 없는 나라,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다. 지금 박 신부를 향해 종북몰이를 하는 이들이 추구해온 조국은 과연 어떤 나라였던가”라고 말했다. 둘 중 하나는 다른 조국을 가슴에 품은 것인가.
▲ 11월 22일 전북 군산시 수송동성당에서 열린 <불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촉구 시국미사>
본질(本質)을 말해줘
이번 미사는 일부 사제의 돌출된 행동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인가? “천주교 전국 15개 교구 사제들은 지난 7월5일 부산교구를 시작으로 9월까지 국가기관의 대선 불법 개입에 항의하는 시국선언과 시국미사를 이어가며 사태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며 한겨레는 <“지난 대선은 부정선거…박대통령이 책임져야”>(7면/11.23)에서 말했다. 이번 미사는 이미 천주교계 상당수 성직자들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다, 국정원 직원들의 불법 대선 개입 혐의가 속속 드러나는 상황이어서 대통령 사퇴 요구 움직임이 타 종교계로 확산될지 주목되었다. 그 예상은 현실이 되어 천주교뿐만 아니라 조계종 승려 1,012여명은 11월 28일 서울 조계사에서 시국선언을 하였고, 개신교 목사모임인 ‘전국 목회자 정의평화 실천협의회’도 시청광장에서 금식기도 모임을 열 예정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종교계까지 규탄에 나설 정도로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이 전사회적으로 들고 일어났지만 박창신 원로신부의 연평도 발언을 재료삼은 종북 프레임은 시국미사의 원래 의도를 희석시켰다. 그 희석된 상태를 정화시키고자 한겨레는 <[사설] 본질은 국가기관의 대선 불법개입이다>(35면/11.25) 라고 사건의 본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유레카] ‘환상적 낭만주의자’에서 ‘종북’까지>(34면/11.28) 에서는 “본질을 가리고 유신 때 붙인 환상적 낭만주의자에 이어서 또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일 계획이냐”며 강하게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고 있다. 경향도 <여권, ‘국가기관 대선개입’은 언급 않고 “종북구현사제단” 역공>(3면/11.25)에서 “시국미사의 직접적 계기가 된 국가기관 대선개입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정의구현 사제단의 본 의도를 적확히 말해주었다.
삼인성호(三人成虎)? 삼언성적(三言成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세 명이 모이면 호랑이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로 거짓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곧이 들린다는 비유다. 현재 대한민국 언론 상황에 가장 적합한 비유가 아닌가 싶다. 조선, 중앙, 동아라는 세 언론이 어느 대상에 대해 ‘종북’ 을 외치면 자연스레 그것은 의도치 않게 붉은 물로 젖어든다. 전교조가 그랬고, 민주노총이 그랬고, 통합진보당도 그랬다. 세 명이 외치면 ‘붉음’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정의(正義)구현 사제단 역시 적의(赤義)구현 사제단으로 몰리고 있다.
이러한 낙인을 통해서 여당과 정부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 이번 박창신 원로 신부의 발언뿐만 아니라 최근 민주당 양승조, 장하나 의원의 발언을 통해 더더욱 새누리당은 기세를 잡고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국가기관 대선개입이라는 의혹이 묻혀 진다면, 종북이라는 호랑이의 뒤에 몰래 숨어 있는 대선개입이라는 교활한 여우를 직시할 수 없다. 언론은 바로 이 여우를 보여주어야 한다. 언론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소중하게 지켜온 민주주의라는 열매는 이 여우에게 모조리 뺏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