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회원이 되며 : 시민이 선택하게 하라!
서명준 신입회원 l mjseo8425@gmail.com
독일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는 시민 계급이 득세하기 시작하는 중세 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독일의 자유도시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노래 경연 대회에 참가한 가수들의 예술 정신을 불태우는 한판 승부는 음악적 관습과 규칙에 맞춰 심사하는 소수의 전문 심사위원이 아닌 다수 시민의 박수로 판가름 난다. 혈통이나 가문, 재산과 무관하게 시민들의 갈채를 받은 가수가 명인가수-마이스터징거-에 등극한다.
19세기 리하르트 바그너가 작곡한 “마이스터징거”의 무대에는 새롭게 성장하기 시작한 시민들의 힘이 잘 나타난 반면, 오늘 “미디어”의 무대에는 150여 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성장한 시민들의 힘이 보이지 않는다. 마이스터징거를 연출한 위대한 작곡가 바그너는 시민을 위한 작품을 썼지만, 오늘 저널리즘을 “연출”하는 위대한(?!) 미디어는 시민을 위한 작품보다 자본과 정치권력을 위한 작품을 더 많이 쓰고 있다. 이른바 미디어정치 시대에 정치와 언론은 시민이 진정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는 것 같다. 언론은 여론이 형성되는 공론장으로서 시민의 최대 이익을 추구해야하지만, 자본과 정치권력의 이익을 추구하는 현실이다.
이른바 참여민주주의를 지탱해온 시민의 정치적 의식은 오늘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이다. 능동적인 유권자이자 뚜렷한 정치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시민은 언론의 공론장 기능이 매우 쇠퇴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오랫동안 여론 형성의 공간인 공론장이 소수 거대 언론의 독과점에 지배당했고 시민의 이익은 주변부화 했음도 알고 있다. 이러한 시민의 사회역사적 고뇌는 언론시민단체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 반대이다. 자본과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시민단체는 이제 자본의 비인간성을 지적하고 개혁하고자 하는 시민의 “인간적” 고뇌를 안다. 나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바로 이런 단체라고 생각한다. 민언련은 한국 언론 민주화의 역사에서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시민의 인간적 고뇌를 알고 이를 언론 현실의 개혁을 통해 관철시켜온 명실공히 대한민국 시민언론운동의 구심체이다. 정치, 언론과 함께 민주주의 초석이 되었고, 대한민국 언론의 굵직한 방향을 제시해온 ‘미디어 네비게이션’이다.
나는 삶의 많은 시간을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보다 정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지난 ’97년 독일로 유학을 떠난 뒤 오랫동안 나의 정치적 고향은 베를린이었다. 나는 베를린의 시민들이 갖는 정치적 자부심과 시민의식, 나아가 그런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많은 독일 언론들의 모습을 보았다. 정치마케팅이 대세라지만 여전히 독일 언론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치열한 정책결투(?!)를 담아 보여줌으로써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호응을 얻고 있다. 정책대결을 회피하고 현란한 말잔치로 일관하려는 정치인에게 독일 언론은 관대하지 않다. 이런 언론은 여전히 독일 시민의 선택을 받는다. 대표적으로 공영방송이 그러하다. 수십 명으로 구성된 공영방송 평의회 위원들은 저마다 각종 시민단체를 대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결정하는 주요 방송사업 정책들에는 시민의 이익이 최대한 반영되는 거버넌스 구조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준 높은 방송프로그램은 자연스레 시민들의 선택을 받는다.
얼마 전 귀국하여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나는 평소 존경하던 한 선배 교수님의 권유에 따라 민언련의 정책위원으로 “행동하게” 되었다. 나는 왜 민언련에서 행동하려하는가? 이 물음은 본질적이다. 이것은 내가 어떤 민언련 회원이 되려는가에 대한 물음이 아니다. 오히려 왜 내가 하필 지금 민언련 회원이 되고자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소수 거대 언론에 종속된 시민공론장이 붕괴되는 현실은 이에 대한 답변이다.
붕괴된 현실 위에 새 공론장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독일이 보여주는 다원주의 형식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시민이 선택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 시민은 스스로 문화주체가 되고 있다. 민언련 회원들이 바로 이런 문화주체이다. 그러므로 민언련은 끊임없이 시민이 주인 되는 언론을 만드는 숭고한 역사를 써나갈 것이다. 이 막아설 수 없는 흐름은 내가 민언련과 함께 하려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