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목을 아무리 비틀어도 우리에겐 말할 자유가 있다"
어느새 우리 시대 대안언론의 든든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뉴스타파’를 모르는 민언련 회원은 없을 것이다. KBS 탐사보도팀장을 거쳐 지금은 뉴스타파의 대표로서 새로운 ‘탐사저널리즘’을 실험하고 있는 김용진 회원은 민언련의 오랜 벗이기도 하다. 얼마 전 있었던 <제15회 민주시민언론상 시상식>에서 본상을 수상한 뉴스타파를 대표해 자리를 빛내 준 김용진 회원을 만날 수 있었지만 워낙 빠듯한 일정 탓에 인터뷰 약속을 쉽게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메일로 질문지를 보냈고 김용진 회원은 바쁜 시간을 쪼개 성실한 답변을 보내 왔다.
기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처음 품게 된 것은 언제였고, 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막연하게나마 꿈을 가졌던 건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그런데 대학 와서 우리 사회에 대한 고민들을 하다 보니 언론 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하게 됐죠. 현장에 뛰어드는 건 자신이 없고, 사기업 취업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사회에 뭔가 기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있었고, 그래서 자연스레 이 길에 들어선 거죠. 개인적으로 당시로선 별로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기자라는 이름으로 처음 불리게 된 것은 언제 어디서였나요? 그 시절 이야기를 짤막하게 부탁드립니다
딱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아마 1987년에 KBS 기자를 시작하면서 불리기 시작했겠죠. 제가 KBS에 들어갔을 때는 전두환 말기였는데 당시 KBS는 여전히 골수 관영방송이었습니다. 사실 대학 졸업반 때 시험 삼아 본 KBS 입사시험에 덜컥 붙어버려서 다니긴 했는데, KBS 기자 초기에는 참 회의가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취재에 잘 응하던 취재원도 내가 KBS 기자란 사실을 알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공무원들이 “우리끼리 왜 그래”라며 노골적으로 같은 편 취급을 할 때도 참 씁쓸했죠.
하지만 KBS 내에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공정방송 투쟁이 전개되면서 좀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낙하산 관제사장에 반대해 일어난 KBS의 90년 4월 투쟁은 KBS가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였고, 저도 개인적으로 KBS라는 공영방송 시스템에 애착을 갖게 된 분기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KBS는 24년 전 90년 4월 투쟁 이전으로 고스란히 회귀해 버린 것 같습니다. 요즘 현장에서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된 KBS 후배들을 보면 제가 전두환 말기에 KBS에 들어와 겪었던 모멸감이 그대로 떠오릅니다. 가슴 아픈 현실이죠.
KBS 탐사보도팀에 대한 자긍심이 크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KBS 탐사보도팀이 만들어진 계기와 활동, 그리고 탐사보도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탐사보도는 누군가 감추고자 하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기자의 직접 조사로 밝혀내는 언론 행위라고 하죠. 한마디로 권력을 감시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보도행위라고 보면 될 겁니다. KBS 내부에선 ‘탐사보도팀’이라는 용어가 공식 거론되기 이전에도 KBS 내에서 데일리뉴스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파헤치고 맥락을 짚어주는 ‘진짜 뉴스’를 좀 만들어보자, 그런 논의들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런 논의들이 모아져서 2004년 하반기부터 기자협회, PD협회 차원에서 본격 논의가 됐고요.
그래서 현업자들의 고민이 당시 경영진에 전달됐고, 2005년 KBS 탐사보도팀이 탄생하게 됐죠. 한국 방송사에서는 첫 탐사보도팀이었고, 우리 언론 전체를 통틀어서는 가장 큰 규모인 동시에 가장 시스템이 잘 갖춰진 탐사보도 조직이었습니다. 실제 여러 의미 있는 보도들을 일궈냈고, 특종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몇 년간에 걸쳐 구축했던 KBS의 탐사보도 시스템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죠. 지금 생각해도 한국 언론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큰 손실이라고 봅니다.
정연주 사장 시절의 KBS와 이후 낙하산 사장 시절의 KBS는 어떻게 달랐나요?
언론조직은 기본적으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이어야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정연주 사장 시절엔 자율성과 독립성이 나름대로 보장됐습니다. 정권 비판도 얼마든지 가능했죠. 하지만 MB 정권 이후 모든 것이 후퇴하고 맙니다. 그 후퇴들이 응축된 것이 지금 KBS의 모습이죠.
KBS에 사표를 내고 뉴스타파에 합류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뉴스타파가 2012년 1월 27일 첫 방송을 했는데 그 몇 달 전부터 준비 모임이 있었습니다. MBC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해고자 신분인 이근행 PD와 KBS 탐사보도팀 출신으로 언론노조 민실위원장이던 박중석 기자, YTN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역시 해고자 신분인 노종면 기자 등이 함께 했습니다. 저는 당시 KBS 울산 소속이었는데 준비 과정에 틈틈이 참석했고, 방송시작과 함께 자문위원으로 일했죠.
사실 2012년 뉴스타파는 일종의 결사체였고, 한시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고 엄청난 후원의 물결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그냥 접기에는 불가능한 그 뭔가가 돼 있었던 거죠. 누군가가 책임이 지고 가야할 순간이 온 거죠. 내부 논의 끝에 KBS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뉴스타파에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대학 때 못했던 현장 투신을 30년 뒤에 한 셈이라고 할까요.
뉴스타파의 조세회피처 보도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의 역외 탈세 국제 공조 취재가 시작되는 것을 보고, ICIJ 쪽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우리 쪽에 경험 많은 탐사보도 취재인력과 전문 리서치 팀이 있으니 한국 쪽 취재는 우리에게 맡겨라, 뭐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얼마 뒤 우리와 함께 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 이후 잘 아시는 것처럼 몇 개월 동안 수십 건의 관련 리포트를 내보냈죠. 국세청, 관세청 등에서 뉴스타파가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면 조사를 실시했고, 1조 가까운 역외 탈세를 적발했습니다. 국회에서도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역외탈세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법안들이 제출돼 있는 상태입니다.
뉴스타파를 비롯해 요즘 ‘대안언론’이라 불리는 언론들이 적잖게 늘어났는데, 그런 언론들이 앞으로 가야 하는 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희들은 스스로 대안언론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비영리 독립언론의 형태로 전문적인 탐사보도를 할 뿐이죠. 영리를 추구하거나 권력의 영향권 내에 있는 언론은 기본적으로 독립된 목소리를 내기 힘듭니다. 시민들 편에 서서 권력을 감시하고, 그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취재해 전달하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거죠. 뉴스타파처럼 전적으로 시민들의 후원에 바탕을 둔 언론은 그것이 가능합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저희 뉴스타파가 특별기획으로 내 보내고 있는 ‘세상을 바꾸는 힘, 비영리 탐사매체’ 시리즈를 보시면, 요즘 미국 등 해외에서 수많은 독립매체들이 탄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주류매체에 환멸을 느낀 언론인들이 독립언론을 만들고, 주류매체에 실망한 수용자들이 독립언론에 호응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저널리즘 지형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를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민언련과는 처음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민언련과의 인연이 김용진 대표님의 기자 생활 혹은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또는 끼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언론학교 강의도 맡고 계신데요. 언론학교 강의는 대표님에게 어떤 의미이신지요?
아마 10년 전쯤일 텐데 민언련이 주는 우수 프로그램 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인연을 맺게 됐죠. 적은 액수지만 후원도 하게 됐고요. 민언련은 언론감시단체이기 이전에 한국 언론운동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언련의 존재 자체가 항상 언론인으로서 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민언련 언론학교에서 탐사보도 강의를 한지 제법 오래됐는데,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탐사보도를 알리고 싶은 생각에서죠. 특히 언론학교에는 언론 지망생들이 많이 오는데 그들에게 진짜 언론이 뭔가를 보여주고, 그들이 언론 현장에 들어가서 제대로 된 언론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작은 길잡이 역할이나마 하고 싶어서이죠.
지금까지의 기자 생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보도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예전 기자 초년병 시절에 말로만 떠돌던 노동계 블랙리스트 디스켓을 입수해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 정말 보도하기 힘들었던 리포트였지만 결국 보도를 했죠. 개인적으로는 한국기자상까지 받은 보도여서 더욱 기억에 납니다. 제가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뉴스타파가 올해 보도한 국정원 트위터 대선개입 폭로와 조세피난처 보도는 평생 잊지 못할 기념비적 보도가 될 겁니다.
끝으로, 험난한 시절을 견디고 있을 민언련 회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 개인이나 뉴스타파를 함께 하는 최승호, 이근행 PD, 최경영 기자 등 뉴스타파의 많은 동료들이 이명박 정권 때 고난을 겪었지만 그걸 바탕으로 뉴스타파라는 한국 언론에 하나의 희망을 줄 수 있는 조직이 생겼습니다. 언론의 목을 아무리 비틀어도 결코 말할 수 있는 자유, 국민의 알 권리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저들에게 보여줬으면 합니다. 저도 민언련 회원으로서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