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이슈] 밀양 희망버스를 타는 마음 (2013년 11호)
등록 2013.12.0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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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희망버스를 타는 마음

 

이보아 녹색당 탈핵특위 위원장 l boah8596@naver.com

 

민주주의가 사라진 국책사업의 이면
밀양에 송전탑 공사가 재개된 지 벌써 50일이 넘었다. 정부와 한전은 그 자그마한 동네에 3천 명의 경찰을 투입해 공사 현장에서 수 km나 떨어진 곳에서도 공사방해의 가능성이 있다며 주민들의 이동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 주민 5~6명이 이동하면 기본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몇 겹으로 에워싸 ‘장벽’을 만들어 노상 감금시킨다. 주변도로에서는 심지어 검문까지 한다.
누구는 광주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교도소를 떠올려 보라. 교도소에서도 사람들은 걸어 다닐 수 있다. 이야기도 한다. 각자 방으로 돌아가면 소소한 취미 생활을 가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교도소의 높은 벽 안에서만 가능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감시 속에서 이루어진다. 지금의 밀양을 보면 이곳이 바로 창살 없는 감옥이구나 싶다.
밀양의 주민들은 이 감옥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하고 툭하면 사지가 들려 내팽개쳐지고 있다. 반대하는 주민 다수가 7~80대 할매와 할배들인 상황에서 당연히 이들의 몸에는 피멍 가실 날이 없고, 60여 명의 부상자(1명 뇌출혈), 20여 명의 연행자와 1명의 구속자가 발생하였다. 고령의 노인들에 대한 본보기식 마구잡이 줄 소환도 이어지고 있다. 여기까지가 국책사업의 희생양, 밀양의 한 측면이다.

 

8년의 투쟁이 남긴 것은 상처만이 아니다
밀양의 모습은 이런 희생의 측면만 보아서는 안 된다. 주민들은 힘없고 잘 몰라 당하기만 하는 가련한 희생양이 아니다. 밀양 주민들의 송전탑 반대 투쟁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최근일 뿐, 무려 8년을 이어져 왔다. 8년이면 학사-석사-박사 과정과 맞먹는다. 송전탑, 핵발전, 전원개발촉진법, 국책사업의 메커니즘을 다루는 학과가 있다면 주민들은 모두 박사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진심이다.
처음에는 동네에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서면 사람도 힘들고 소도 힘들고 농작물도 아프다는 소리에 반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잘 보니 이렇게 생명에 안 좋은 초고압 송전선로가 사람이 살지 않는 직선 구간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사람 사는 공간으로 구부러져 돌아가는 노선이었다. 더 알아보니 노선을 피해간 토지는 권력자의 땅이었다. 한편으로 평생 땅을 일궈 온 농민이 이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고 하니 은행은 “본건 담보물은 765kV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토지로 현재 상황으로는 담보대출을 반려한다”고 말한다. 송전탑이 들어서기도 전에 피해는 이미 심각한 현실이 되었다.
곧 주민들은 이걸 꼭 만들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그래서 또 파보았더니 76만 5천 볼트라는 초고압 송전선로가 도무지 밀양에서 쓰는 전기를 위해 필요한 게 아니더란 말이다. 바닷가에 밀집된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가 자기 지역에서 쓰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전기를 생산해 저 멀리 스스로 전기를 생산하지 않는 대도시의 소비를 위해 송전하려다 보니, 피해는 그 사이의 다른 지역에서 입는 구조였다. 이제 주민들은 이것이 잘못된 전력시스템 때문에 생겨난 일임을 알게 된다.
8년이라는 끈질긴 투쟁으로 주민들이 얻게 된 것은 상처만이 아니라 바로 이 시스템에 대한 이해,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각성이었던 셈이다. 나랏일은 그저 나랏님 하시는 대로라 생각하던 밀양의 할매와 할배들은 이제 ‘국책사업은 곧 공익’이라는 공식에 의문을 던진다.

 

패러다임의 전환? 밀양 희망버스를 타라
다들 밀양 주민에게 질문을 한다. 다른 곳은 가만히 있는데 왜 싸우는지, 왜 보상을 해준다는 데도 싸우는지, 다수를 위해 양보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틀렸다. 질문은 밀양의 주민들이 해야 하고  답해야 할 것은 우리다. 우리가 쓰는 전기를 위해 누군가 희생되는 것, 다수의 편의를 위해 누군가의 삶이 파괴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공익이라 볼 수 있는가. 돈이 아니라 삶을 택하는 것, 미래를 택하는 것은 왜 짓밟혀야 하는가.
반전 같은 이야기 하나 하자. 그렇게 많은 경찰병력을 투입하고, 그들이 하루 8천만 원이 넘는 세금을 써 가며 막고 있지만, 지금 진행된 공사는 전체 공정의 10%도 되지 않는다. 그만큼 주민들의 저항은 단단하다. 또한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언론의 대부분이 한전의 일방적 프레임을 그대로 싣고 있지만, 여론은 단기간에 주민들 편으로 돌아서고 있다.
공사 시작 당시 공사 찬성이 55%, 반대가 24%였다면, 현재는 주민들의 주장에 공감이 46%, 한전 주장에 공감이 42%, 주민 요구대로 공론화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가 67%, 한전 주장대로 필요 없다가 24%로 완전히 뒤집히고 있다. 정부와 한전이 아무리 물량 공세를 해도, 언론이 아무리 편파적 보도를 해도, 이제 국민들은 밀양송전탑 투쟁을 그들의 프레임으로 보지 않는다. 이미 낡은 패러다임은 깨지고 있다. 단언컨대 밀양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11월30일 전국에서 밀양희망버스가 출발한다. 우리와 밀양의 희망을 찾기 위해, 그리고 패러다임 전환의 현장을 찾아 밀양으로 간다. 이 현장에 당신도 함께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