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책] 색채가 없는 모든 이들과 그들이 순례를 떠날 지금(2013년10호)
등록 2013.10.3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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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모든 이들과 그들이 순례를 떠날 지금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민음사, 2013)

 

정원철 회원 l be-dreamer-@hanmail.net

 

 

10월 초, 책을 사기위해 서점에 갔다. 그런데 서평을 쓰려고 했던 책을 찾지 못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소중한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3년만의 신작 소설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올해 7월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른바 ‘하루키 열풍’이라고 불리는, 드문 구매열풍이 있었다. 사전예매 분이 모두 팔려나가고, 오프라인 서점에는 책을 구입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하루키의 소설을 꽤 읽어왔고, 좋아하는 편이지만 나는 이러한 ‘기현상’이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았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하루키의 소설을 관통하는 상실의 아픔과 치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학 2학년 여름, 고등학교 시절부터 ‘흐트러짐 없이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루었던 또래집단에서 이유를 모른 채 배제된 뒤 큰 상처를 입은 다자키 쓰쿠루는 아픔을 간직한 채 36살이 되었다. 스무 살 이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게 된 그는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었던 후배 하이다에게도 절교를 당한다. 관계에 더욱 담을 쌓게 된 쓰쿠루는 36살이 되어서야 사랑하는 사람, 사라를 만나지만 그녀는 쓰쿠루의 깊은 상처를 눈치 채고 이를 치유하지 않으면 자신과의 관계가 끝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그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순례를 떠난다.

다자키 쓰쿠루는 자신을 집단 밖으로 내몰았던 친구들과 16년 만에 차례로 대면한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순수함을 간직한 고등학생이 아니며, 자신을 배제하던 순간 그들도 큰 상처를 받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쓰쿠루의 순례는 자신의 상처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상처 또한 치유하는 과정이 된다.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50쪽)

어떤 상처들은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개인의 삶에 계속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상처를 입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알몸으로 전신거울 앞에 서서 변해버린 자신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다자키 쓰쿠루가 그랬던 것처럼. 섣불리 상처를 봉합하려했다간 덧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6년이 지나야 비로소 자신의 상처를 더듬으며 치유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인 일일지 모르나 그 상처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그때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혼의 맨 밑바닥에서 다자키 쓰쿠루는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은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은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거에 있는 것이다. (364쪽)

책을 읽다보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1949년생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다가온다. 그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가 그리는 인물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끼며 그가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실감되기도 한다.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와, 「태엽 감는 새」의 오카다 도루, 「1Q84」의 가와나 덴고, 그리고 이 소설의 다자키 쓰쿠루가 상실과 상처에 대응하는 태도가 조금씩 달라져 온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는다. 상처받은 누군가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듣다(읽다)보면 자신의 삶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루키 열풍’과 상관없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