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법외노조화. 민주주의의 위기
이경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외협력실장 l heejoyful@hanmail.net
또 전교조다. 박근혜 정권은 전교조가 이명박 정권에서 해직된 교사 9명을 배제하지 않으면 ‘노조가 아님을 통보’하겠다고 한다. 이번에는 으름장 정도가 아니라 최후통첩이다. 마치 큰 선심을 써 말미를 주는 듯 한 달 안에 결판을 내란다. 그러나 보자. 전교조의 역사를, 그리고 노조의 존재 이유를.
내가 전교조 상근활동가로 일을 시작한 것은 1989년 초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말기였다. 선배의 권유로 일을 시작한 지 며칠 후 한겨레신문에 <교사들 상반기 노조 결성하기로>란 기사가 실렸다. 교사조직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지식도 없었던 나로선 그 뜻이 무엇인지 헤아릴 길이 없었다. 더구나 교원노조 결성으로 정권이 어떤 수순을 밟아가며 탄압할지 도저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다만 무엇이 선생님들을 이렇게 학교수업 후 날마다 늦은 밤까지 회의를 거듭하며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는지 궁금했다.
“살인적인 점수 경쟁의 학교를 사랑과 우애가 넘치는 인간교육의 현장으로 만들어갈 것입니다.” 전교조 결성선언문 일부다. 극심한 경쟁교육으로 아이들 자살이 계속 이어지던 1980년대 후반 당시 현실에서 선생님들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500여명의 해직이라는 사상 유례없는 광풍을 온 몸으로 맞아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전교조 역사에 해직교사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사립학교 재단비리를 없애고 깨끗한 사학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제보한 조합원, 경쟁을 부추기는 자립형 사립고 도입과 일제고사를 반대한 조합원 등 전교조가 “모든 아이들에게 질 높은 공교육”을 요구하며 교육정책에 대해 입장을 밝힐 때마다 정권은 해직의 칼날을 휘둘렀다. 어떤 경우든 해직된 교사들은 몇 년 후면 법원의 무죄판결을 받고 모두 복직을 했다. 지금 얘기되는 9명의 해직교사들도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에 복직될 교사들이다. 그래서 전교조 규약은 이런 경우를 ‘부당해고’라고 규정하고,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전교조는 조합원들이 해직되면 본인의 의사를 물어 본부나 시도 지부에서 함께 일한다. 전교조의 이러한 관행은 특별한 조치가 아니다. 어려운 조건의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노조 본연의 역할이라면 노조활동을 하다 해직된 조합원들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노조 존재 이유의 기본인 것이다. 때문에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노동조합들은 해고자뿐 아니라 학생과 은퇴자까지도 조합원으로 인정한다. 같이 활동했던 동료로서 가져야 할 인간적 도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권은 전교조에게 의무를 무시하란다. 인간적 도리마저 저버리란다.
나는 결성 때부터 해직자들과 함께 사는 전교조의 모습을 지켜보며 아름다운 사람살이를 배웠다. 예상치 못했던 1,500여명의 해직자가 발생하자 동료교사와 단체를 비롯한 시민들이 보내준 후원금으로 나름의 합리적인 기준을 정해 생계비를 지급하는 조직, 턱없이 적은 액수지만 후원자들과 조직에 고마움을 느끼며 헌신하는 해직교사들. ‘노동조합은 서로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조직이구나’를 이론으로가 아니라 현실에서 생생하게 체험했다. 그 아름다운 정신은 전교조와 다른 노동조합들이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고, 앞으로도 지켜야 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정권의 이번 전교조 법외노조화 방침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한다. 다양성의 원리가 부정되고, 다양한 견해의 자유로운 표현이 억압되는 현실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 친일 독재미화 한국사 교과서, 복지공약 후퇴 등에 대한 국민적 우려와 저항의 시선을 돌리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국제단체들도 한국의 전교조 탄압상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계교원단체총연맹(EI),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 국제노동기구(ILO)가 한 목소리로 전교조 탄압을 즉각 중단하고, 노동조합 관련 법령을 국제기준에 맞게 고치라고 권고하고 있다. 특히 ILO는 전교조 상황과 관련해 지난 3월에 이어 최근(10월 1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우리정부에 긴급개입 통보를 했다. 게다가 경제협력개발기구 노동조합자문위원회(OECD TUAC)는 우리정부에 항의서한을 보내 “한국정부가 해직조합원 자격문제로 교원노조의 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한국정부가 OECD 가입 당시의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라며 강력 항의했다. OECD가 1996년 한국의 가입을 승인했던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정부가 “교원과 공무원의 결사의 자유 보장”을 약속한 때문이었다. 합리적인 정부라면 탄압의 칼날을 먼저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 발의돼 있는 관련 법 개정을 우선 검토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OECD 가입 17년이 지난 지금, 14년 동안 합법노조로 활동한 전교조를, 부당하게 해직된 교사가 있다는 이유로 법외노조로 만들겠단다.
정권은 틈만 나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친다. 기본은 민주주의다. 나와 다른 견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 비판의 목소리가 있기에 발전이 가능함을 인정하는 정부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