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들의 야만적 ‘진실탐구’
-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의혹 (2013.9.6~2013.9.28)
김정현 신문모니터분과 회원 l jhkim33770@gmail.com
“지금 한국 사회를 보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에게 문명은 존재하는가”
중앙일보의 권석찬 논설위원이 <사생활이 요격미사일인가> 칼럼에 적은 글이다. 10월 5일 누군가의 집 대문 앞에서 24시간을 감시하는 이들이 시사IN의 사진에 담겼다. 기자들이다. 귀와 등을 대고 그 안을 엿듣고 있었다. 검찰총장과 내연관계라는 ‘임 여인’이 숨어들었다는 집이다. 밤새도록 진을 친 기자들 사이엔 신문과 방송,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누군가가 소리쳤다. “한겨레랑은 전화통화 했다면서요. 이 아줌마가.”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채동욱 사건이라는 ‘문’ 앞에 선 언론에게 문명이란 존재했는가. 신문분과는 9월 6일부터 28일까지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아들 논란을 다룬 조선, 중앙, 동아, 경향, 한겨레의 보도를 분석했다.
조선 9월 6일 단독보도로 포문…‘혼외아들’ 규명 명분 아래 전 방위적인 사생활 취재
조선은 6일 1면 톱으로 보도한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숨겼다> 기사로 포문을 열었다. 공인의 의혹을 해명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11일 사설 <검찰총장의 처신과 판단>에선 △왜 지금까지 그 사실을 숨겼느냐 △고위 공직자 재산 신고 때 왜 혼외아들을 기른 비용과 전셋집을 숨겼느냐는 부분을 지목했다.
채 총장이 사적 문제에 검찰 조직을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11일자 2면 <범죄정보기획관실·대변인… 채 총장, 사적 문제에 검찰 공조직 동원> 기사에서 “몇몇 검찰 간부가 본지에 채 총장의 혼외 아들 관련 기사가 나가는 것을 알고 채 총장이 본사에 전하는 협박성 메시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당일 사설에선 “검찰총장의 사적 물의를 ‘검찰 조직의 안정’과 결부하며 쟁점화하는 것이 조직의 최고 책임자로서 합당한 처신인지도 의문”이라고 적었다.
조선은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내연녀’의 이모, 그녀가 운영했다는 술집까지 전방위적인 취재를 벌였다. 결과물은 9일 10면 <채 총장 혼외아들 학교 기록에 ‘아버지 채동욱’>, 22일 5면 <“조카와 채 검사, 가게서 아이 문제로 티격태격했단 말 들어”>에 실렸다. 이날 지면에 인용부호를 씌워 실린 내용은 한 아이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출생 당시의 성(姓), 뉴욕으로 이동한 이유 등의 민감한 사생활 정보다.
‘공익’은 어그러지고 사건을 쫓는 선정성만이 남았다
조선은 11일 사설에서 “검찰총장은 사생활 보호 원칙을 내세워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를 피할 수 있는 사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건 공익의 문제라는 강변이다.
외부의 비판도 받아쳤다. 13일 박정훈 디지털부국장은 <채동욱 총장과 이만의 장관의 차이>라는 칼럼에서 2009년 ‘이만의 환경부 장관의 혼외아들 사건’과의 다섯 가지 차이를 밝혔다. 당시 이만의 장관을 옹호했던 배경과 지금이 다르기 때문에 채 총장 비판을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그 중 하나는 “이 장관 사건은 사실관계가 단순 명확해 딱히 의혹이랄 것이 없었다. 반면 채 총장의 경우 당사자들의 애매한 피해가기로 의혹을 증폭시켰다”라고 적었다.
‘술집여자’는 지능적인 행위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논리도 든다. 조선은 기사에서 “한 법조인은 주점을 운영하던 여성이 썼다고 보기에는 편지의 문장이나 논리가 정연해 전문가의 지도를 받은 것 같다”(11일 3면 <임씨, 본지 취재 들어가자 5일간 잠적…채 총장이 정정보도 청구한 당일, 언론사들에 편지>), “두 곳의 우체국에서 편지를 보낸 정황 등 임씨가 법률가의 조언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13일 10면 <채 총장, 이름 도용했다는 임씨에 왜 법적대응 않나>)고 해설했다.
한 달 동안 조선 발 혼외아들 추적기가 온 언론을 메웠다. 각 신문은 사건의 내막을 해설하면서 지면에 사생활을 흘렸다. 동아는 26일 12면 단독으로 <채동욱 ‘혼외아들 의혹’ 임씨, 전세 아닌 월세 살았다>에서 “임 모 여인이 보증금 1억 원, 월세 290만 원에 입주 계약을 했다”는 민감한 내용을 제시했다. 28일 법무부 조사를 인용하면서 동아는 8면 <“임씨 2010년 ‘채동욱 부인’이라며 채 집무실 찾아왔다”>, 한겨레는 5면 <“2010년 임씨가 부인이라며 채동욱 사무실 찾아가 만남 거절당하자 ‘피한다고 될 문제 아니다’ 말해”> 같은 제목을 달았다.
조선 보도 두고 일제히 권언유착설 제기
한편으론 타 신문들이 조선의 보도에 비판적이라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모니터한 신문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한 것은 ‘권언유착설’이다. 한겨레가 기사만 30건, 내부칼럼 7건으로 가장 많은 기사를 내보냈다. 14일 1면 탑 단독 <‘채동욱 찍어내기’ 청와대 직접 압박> 기사에서 사정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게 근거다. 기사에서 정부 관계자가 “혈액형은 유력한 증거이니 (채 총장이) 사퇴하는 게 맞다”, “진상규명을 위해 청와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개입설을 전했다. 당일 한겨레는 의혹기사를 6면까지 쏟아냈다.
경향도 사퇴 발표가 있었던 14일 1면 탑에 <채동욱 “지난주부터 청와대에서 메시지 받았다…의혹 사실 아니라 해도 나가라는데 어떡하겠나”>라는 제목을 적었다. 제목에 적힌 채 총장의 멘트는 사의를 표명한 뒤 대검 부장·과장·연구관들과의 마지막 인사 자리에서 나온 것이라 썼다. 중앙 14일 사설 <박근혜 정부, 검찰 독립 지킬 의지 있나>, 동아 16일 사설 <채동욱 사건 ‘두 갈래의 진실 규명’ 필요하다>도 비판의 맥이 같다. 그러나 한겨레와 경향이 정부와 법무부, 조선일보의 ‘채동욱 기획낙마설’에 방점을 찍는 반면 중앙과 동아는 채동욱 총장도 진실을 밝히라며 양쪽을 비판한다. 중앙 김진 논설위원의 18일 <검찰은 자기 칼부터 깨끗해야>(시평)와 동아의 14일 사설 <‘감찰’ 한 방에 무릎 꿇은 채 검찰총장 떳떳지 못했다>가 이에 해당한다.
한편 동아는 조선의 주장을 직접 규명하려고 시도했다. 앞서 언급한 동아의 26일 12면 단독보도는 조선이 채 총장을 비판하는 근거가 된 ‘고가의 전세 자금’이 존재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채동욱 비판’ 조선 vs ‘권언유착설’ 한겨레
조선을 비판하는 한겨레의 보도는 독했다. ‘채 총장 기획 낙마설’ 관련으로 경향이 10건의 기사를 내는 동안 한겨레는 30건의 기사를 냈다. 단독기사가 나간 14일에는 11명의 기자가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조선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기사도 6건, 내부칼럼도 7건으로 가장 많았다. 제목도 독했다. 7일 5면 <조선일보 ‘하수구 저널리즘’ 비판하더니…>, 18일 한겨레 프리즘 <언론과 공사판의 공통점>, 24일 김종구 논설위원의 <권력과 조선일보의 ‘혼외정사’> 등 제목도 자극적이었다. 조선은 한겨레가 7일 5면 기사에서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혼외자 논란 당시 조선의 태도를 지적하자 13일에 칼럼으로 맞불을 놓았다.
14일 기사를 비교해보면 경향은 채동욱 본인이 퇴임식 직전 한 멘트를 인용해 청와대의 사퇴 압박이 있었다는 합리적인 근거를 제공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이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사정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조선의 최초보도 다음날인 7일부터 모니터 기간 동안 한겨레는 적합한 근거 제시보다 권언유착설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데만 열을 올렸다. 합리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진영논리에 의한 보도라는 의구심을 살 수 있다.
두 언론은 각자의 입장에 맞춰 여론을 재해석했다. 18일 한겨레 5면 <69%가 ‘조선일보 혼외아들 보도’에 부정적> 기사는 “고위 공직자의 공적 업무와는 상관이 없는 사생활 문제이기 때문에 사실관계 확인 없이 함부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라는 문항에 68.9%가 답했다는 조사였다. ‘공적 업무와는 상관이 없는 사생활 문제’라는 단서를 달았다. 응답자가 ‘보도하는 게 잘못’이라 답하는 것으로 유도할 수 있는 문항이다.
조선은 22일 5면 MBC 여론조사를 <추석 민심 67% “채 총장, 감찰에 적극 응해야”>라 보도했다. 그러나 이날 여론조사는 채 총장에 비판적이지만은 않다. “법무부의 채 총장 감찰은 ‘사퇴 압박’”이라는 응답이 ‘그렇지 않다’는 응답보다 오차범위 내로 낮게 집계됐고, 검찰 독립성 흔들기라는 응답도 39.2%로 집계됐다. 한편 JTBC는 16일 뉴스9에서 “채동욱 검찰총장 사의 표명 부적절”이 55.7%, “사퇴 과정에 정치적 외압이 있었다”가 46.3%로 각각 가장 높게 나온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진실규명, 끝장이 최선인가?
아동인권단체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은 “공직자의 윤리, 국민의 알 권리, 표현의 자유 등의 가치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이 공인도 아니며 성인도 아닌 한 아이의 사생활 정보를 낱낱이 파헤쳐 공개할 근거는 절대로 될 수 없다”고 유엔아동권리협약 16조, 17조를 들어 비판했다. 17일 동아일보 최영해 논설위원의 <채동욱 아버지 전 상서>칼럼에 뒤따른 성명이나, 비판의 화살은 진실규명에 끝장을 보려는 언론을 향하고 있다.
언론사들도 스스로를 잘 알고 있을 테다. 이미 조선의 채 총장 혼외아들 논란 보도가 비정상적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동아 심규선 논설실장은 16일자 칼럼 <끝장이 최선이다>에서 “(논란에 대한) 조선일보의 취재는 꼼꼼했다. 그런데 혼외아들임을 입증할 ‘마지막 한방’은 없었던 모양이”라며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혼외아들의 존재를 단정적으로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중앙, 경향, 한겨레도 당사자로부터 사실관계 확인을 받지 않은 이상 혼외아들 문제를 단정적으로 보도하면 안 된다는 요지로 비판했다. 사실관계도 불충분하고, 아이의 사생활은 유린됐다. 이런 진실공방에 의문을 던진다. 끝장만이 최선일까.
*이 글은 신문모니터분과의 모니터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