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사표를 썼습니다
「사표: 첫 사표」, 「사표: 두 번째 이야기」(절망북스 편집부 지음/절망북스, 2013)
조윤주 회원 l doolychan@hanmail.net
개그콘서트의 엔딩이 끝나기 무섭게 밀려오는 월요일의 두려움. “하아. 일요일은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이런 당신에게 필요한 월요병 퇴치 에세이가 나타났다. 발행인이 퇴직금을 털어 만든 『사표: 두 번째 이야기』이다. 월요일이 두렵다고 했지, 사표까지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고? 그런 분들에게도 필요한 에세이다. 『사표』의 필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쥐꼬리만큼의 실업급여라도 받으면 다행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사표를 던진, 곧 던질, 언젠가는 던질 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말이다. 종이책이 품절되어 E-book으로만 구매 가능했던 창간호 『사표: 첫 사표』가 최근에 2쇄를 찍고 있다는 사실은 월요병을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사표’에 대한 갈망이 컸음을 말해 주고 있다.
『사표: 두 번째 이야기』의 탄생 배경도 들어볼 만하다. 『사표: 첫 사표』에서 사표의 권리를 이야기했던 이 대리가 다시 그 책을 읽고 퇴직금을 털어서 두 번째 『사표』를 만든 것이다. 발행처는 절망북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재미있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절망북스 출판연대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친구들이 구성원이다. 절망북스의 모토가 ‘모든 절망이 없어져 신나게 망하는 모임’이라고 하니 이 친구들의 두 번째 이야기도 절로 기대된다. 그 누구의 소유가 아닌 자발적인 기획을 가진 구성원이 돌아가면서 발행인을 맡는 운영원칙에 따라 이번에 새로운 발행인이 된 한나는 기획부터 편집, 제작,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담당했다. 무엇보다도 퇴직금이 기반이 된 제작비 전액을 부담했다. 그래서 퇴직금을 털어 만든 ‘피눈물 흡혈 잡지’로 불리고 있나 보다.
취업 준비생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 욕을 된통 먹을 지도 모르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취준생에게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어딘 가에 취직하여 노동자로서 살아가기로 다짐한 이상, 언젠가는 던질(!)지도 모르는 사표를 위해서 말이다. 근로계약 당시 연봉 협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퇴직금은 물론이고 급여 수준까지 달라질 수 있다. 친절하게도 여기서는 사표를 냈을 때 알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그러나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점들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알려주고 있다.
퇴직금을 ‘먹튀’하는 사장들한테 당하지 않기 위한 퇴직금의 정산방식이나 퇴직금 지급 의무 기간 등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이야기 하고 있다. 간혹 급여를 연봉의 1/13으로 나누는 요상한 회사가 있는데, 이 경우 12개월하고도 남은 1개월 치가 바로 자신의 퇴직금이 된다. 퇴직금이 아예 없는 경우나 마찬가지다. 퇴직할 때 울고불고 해봤자 소용없으니 근로계약을 맺을 때 눈에 보이는 숫자만 믿을 것이 아니라 퇴직금 정산 방법도 꼼꼼히 따져보고 연봉 협상할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사표의 유혹, 사표의 현실, 사표의 상담, 사표의 회상 등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아파하는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들의 매력은 바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언가 거창하고 큰 사회변화를 염두해 두고 쓴 서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인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을 다 읽고 나면 오늘날 사회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재미있게 즐기면서 바꾸고 싶어 하는 절망북스의 모토와도 맥락이 닿는 대목이다.
『사표』를 만들고 나서 제일 놀랐던 것은 재취업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없다는 비판의식을 모두 갖고 있다는 거였어요. 이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드러내면 회사 안에서 위험해지니까, 다 숨기고 사는 거죠. 그런데 『사표』를 보곤 “오 겁나 웃긴데!” 이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속에 구조에 대한 인식이 다 들어 있었어요.
필자들은 말한다. 『사표』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정작 ‘사표’ 자체에 대한 책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형 서점에 가면 주로 사표를 낸 후에 세계 일주를 하고, 귀농을 하고, 창업을 어떻게 하는지 등의 책은 많아도 사표를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나 과정에 대한 책은 막상 없다. 사표를 던질 주체가 될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도, 들려 줄만한 곳도 없다. 그런 점에서 『사표: 첫 사표』와 『사표: 두 번째 이야기』가 주목을 받고 있는 점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 책들이 ‘사표’로 표상되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함을 의미하는 사표’ 이야기, 사표 쓰기 전에 언젠가는 꼭 봐야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