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한 세제개편안
- 세제개편안 보도 모니터(2013.8.9~2013.8.24)
강선일 신문모니터분과 회원 l dupperduke@naver.com
지난 8월 8일, 정부가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연봉 3,450만 원 이상 근로소득자들의 세율 인상이 핵심 내용이었다. 대기업 및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져야 할 부담을 근로소득자들에게 지웠다는 비판이 일었다. 정부는 세율 인상 기준이 되는 근로소득자를 연봉 5,500만 원 이상으로 조정했다. 하지만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우리 분과는 2013년 8월 9일~8월 24일까지 세제개편안 내용을 다룬 다섯 신문사의 기사들을 모니터했다. 각 신문의 해당 사안에 대한 논점과 지나친 왜곡이나 정치공학적 접근 등의 문제 유무, 대안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했나 등을 파악해 보았다.
보수언론, “증세와 복지 중 하나는 포기해!”
흥미롭게도 다섯 신문사 모두 이번 세제개편안이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구호의 허구성을 드러냈다고 봤다. 다만, 그 구체적인 비판 내용이나 대안 제시 측면에서는 차이점을 보였다. 우선 보수언론의 보도태도부터 보자.
조선은 <稅制 개편, 불요불급 公約 정리하고 수정안 만들어야>(사설/8.13)에서 알 수 있듯, 복지를 하려면 증세하고, 증세하기 싫으면 복지공약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주장이었다. 또한 세제개편안 수정안 발표 직후부터 ‘분노의 중산층’ 기획을 마련하고 통계적 차원에서 중산층을 분석했다.
중앙과 동아도 조선처럼 증세와 복지 중 양자택일하라는 논조를 보였다. <불가피한 증세라면 솔직히 고백하라>(중앙, 사설/8.13), <‘복지=세금’ 고백하고 공약 재검토하라>(동아, 1면/8.14) 등 증세와 복지정책 설계의 모순점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많았다.
한편 동아는 <복지병 고친 북유럽 vs 만성 복지병 남유럽… 한국은 어디로>(2면/8.16), <공약 구조조정과 일자리 창출만이 답이다>(사설/8.16)에서 무리한 복지정책을 이행하려면 남유럽처럼 경제위기에 부닥칠 것이란 주장을 펼친다. ‘남유럽의 경제위기는 복지병 때문이다’는 주장은 최근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남유럽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가계부채 폭증, 제조업 미비로 인한 경제구조 기형성(관광업 편향) 등 다양한 원인이 언급된다. 그럼에도 동아는 ‘남유럽의 복지병’을 남유럽 경제위기의 주원인으로 논하는 우를 범했다. 복지 확대를 반대하기 위해 사례를 끼워맞춘 왜곡보도다.
큰 틀에서 봤을 때 보수언론은 ‘증세와 복지 둘 중 하나의 포기’를 공통적으로 주장한다. 하지만 중앙의 <“증세보다 복지 공약 구조조정이 먼저”>(8면/8.19), 동아 일부기사에서의 ‘남유럽 복지병’ 관련 언급 등을 보면 사실상 ‘복지 포기’에 더 방점을 둔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세금 올리기 전에 줄줄 새는 복지예산부터 막아라>(동아, 사설/8.15), <증세 논쟁 앞서 복지예산 누수부터 막아라>(중앙, 사설/8.15)에서 확인할 수 있듯, 복지예산 누수부터 막아야 된다는 취지의 사설을 싣기도 했다.
진보언론, ‘부자감세’ 정책 철회 강력하게 주장
한편, 한겨레와 경향은 이번 세제개편안의 최대 문제로 ‘부자감세’ 문제가 빠졌음을 지적했다. 한겨레는 재차 대기업 및 고소득 자산가에 대한 감세정책 철회 및 증세 실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부자감세 놔두고 월급쟁이 쥐어짜는 세제개편>(사설/8.9), <대기업과 부유층의 낮은 세부담이 역풍 불렀다>(사설/8.12) 등에서 그러한 입장이 잘 드러난다. 모니터 기간 동안 무려 4회에 걸쳐 사설에서 ‘부자증세’ 문제가 언급되었다. 여기에 더해 <‘복지증세’ 핵심 비켜간 세제개편 수정안>(사설/8.14)에서는 근로소득자들에게도 개세주의를 적용해 누진적으로 세 부담을 조금씩 늘려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 또한 <소득이 대기업 6배·개인 1.8배 늘 때 세금 증가율은 엇비슷>(5면/8.15)에서 북유럽 선진국들의 사례를 들며, 저소득층 세 부담 경감 및 고소득층 증세를 추진해야 함을 언급한다. <다시 주목받는 ‘부유세’… 세법 논란의 대안 부각>(1면/8.19)에서는 9억 원 이상 소득 보유자로부터 평균 1%의 부유세만 매겨도 연간 세수 7조 원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부유세 방안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복지 수준 높인다는 확신 주면 몇 만원 더 감당할 수 있다”>(2면/8.19)는 시민 인터뷰 기사로, 대체로 시민들이 “증세가 양질의 복지로 이어진다면 증세도 감당할 수 있다”는 의견을 가졌다고 언급한다.
‘중앙’과 ‘동아’의 지나친 정치공학적 보도
언론이 정책을 보도할 때는 특히 그에 따르는 문제가 없는지 면밀히 분석하고,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지나친 정치적 접근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이 사안에 있어서 지나친 정치공학적 보도태도를 보였다.
그 중 가장 심한 곳은 동아였다. 동아는 민주당의 ‘정치공세’ 강화를 비판했다. <세제개편안 ‘중산층 짜내기’ 반발 커지는데… 靑 “거위 깃털을 살짝 뺀 것”>(1면/8.10)에서 “그동안 국가정보원 국정조사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 국면에서 열세를 보였던 민주당이 세금 논란을 반격의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도 숨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야당, 부자 vs 중산층 - 서민 편가르기 대신 통합적 대안 마련 통큰 모습 보여야>(4면/8.14)는 민주당이 “대여 투쟁의 동력을 얻기 위해 조세저항을 유도”한다는 평까지 내렸다.
세제개편안 자체에 관한 얘기보다 ‘민주당 공격’에 치중한 것은 중앙도 마찬가지였다. <세금이 장외투쟁으로 풀 문제인가>(사설/8.12), <[노트북을 열며] 민주당의 거리만능주의>(내부칼럼/8.14)처럼,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사설 <세금이 장외투쟁으로 풀 문제인가>에서는 “길거리에서 서명 받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 세금은 구호가 아니다”면서 민주당의 행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노무현 종부세, MB 부자감세 여당에 악재 … 선거서 잇단 고배>(6면/8.12)는 마치 민주당이 과거 여당 시절과 변화된 입장을 보이는 것처럼 교묘하게 물타기를 시도했다. 노무현 정권 때 도입한 종합부동산세는 공시가격 6억 원 이상의 집을 소유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지금의 세제개편은 거의 모든 직장인들에게 해당되는 문제라서 동일비교가 어렵다. 그럼에도 이러한 기사를 은근슬쩍 집어넣어서 마치 민주당이 입장을 바꾼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중앙과 동아는 공통적으로 민주당이 세제개편안을 투쟁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보았다. 나아가 ‘세금폭탄’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이 옳았는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차분한 분석보다 사설 및 내부칼럼 등에서 민주당을 공격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정치공학적 보도보단 ‘대안 고민’을 향해 나아가야
세제개편안이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구호의 허구성을 드러냈다는 데에 있어서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언론의 의견이 일치했다. 다만, 그 다음이 달랐다. ‘증세 없는 복지’에서 ‘복지’를 포기하는 데 방점을 둔 언론도 있었고, ‘복지’를 위해 ‘다른 방식의 증세’를 주장하는 언론도 있었다.
어떤 주장을 하든, 이 세제개편안 문제는 향후 국민경제 발전 및 국민생활 안정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세제개편안 내용의 허점 및 이것이 대다수 국민, 그 중에서도 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진지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중앙, 동아의 정치공학적 접근이 그런 ‘진지한 판단’에 도움이 됐다고 보긴 힘들다. 이런 접근방식은 이번 세제개편안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을 넘어 부유세 및 근로소득자들에 대한 개세주의 적용 등 각자 대안 고민에 노력했던 진보언론의 보도태도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물론 보수언론도 복지예산 누수 문제를 지적하는 등 나름대로 대안 제시를 했지만 좀 더 근본적인 대안까지 고민하지는 않았다. 아울러 세제개편안 문제를 언급하는 데 있어 세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복지정책의 수행 방식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진보와 보수언론 모두에서 찾기 힘들었다. 언론은 좀 더 거시적 관점에서 세금과 복지 문제를 바라보고 대안 제시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글은 신문모니터분과의 모니터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