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우리의 무심 속에 괴물로 쑥쑥 자라는 종편(2013년09호)
등록 2013.10.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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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무심 속에 괴물로 쑥쑥 자라는 종편

 

정연우 정책위원 l 58cyw@hanmail.nett

 

 

편향적 보도, 왜곡과 막말 표현 등으로 비판받는 종편의 시청률이 높아졌다. 출범 때부터 온갖 불법과 무리수, 특혜 논란으로 외면을 받아 4개사를 다 합쳐도 시청률이 1%가 되지 않는 좀비방송이라는 조롱마저 들었다. 그런데 지난 대통령선거 때 보수세력의 결집을 이끌어내는 선동매체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존재감을 보였다. 방송통신심의위로부터 수차례 시정명령과 제재조치를 받고도 반성하고 시정하기는커녕 또 다시 비슷한 사안으로 제재를 받는 일을 반복해 오면서 방송이라고 할 수조차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몇몇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지상파를 넘볼 정도로 높아지고 있고 특히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사정치 프로그램들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관심거리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토록 우려했던 이들의 여론 교란의 위험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시청자들의 경계심과 거부감도 조금씩 옅어지는 듯하여 큰 걱정이다. 종편의 선정적이고 편향적 방송에 무감각해지고 문제의식은 옅어졌다. 처음에는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길들여지기도 하고 적응하는 것이다. 긴장과 거북함을 해소하려는 심리라고 한다. 그러는 사이 독가스처럼 스믈스믈 스며들어와 우리의 건강한 의식과 판단력을 중독시킨다. 현실을 보는 잣대는 점점 흐려지고 냉철한 분별력은 희미해졌다. 종편의 왜곡보도 여론 교란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집어 삼킬 기세다.
 
미디어법 개정과 종편 출범에 결연히 반대했던 정치인들과 진보적 논객마저 종편에 기웃거리거나 출연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났다. 스스로 종편에 예속되어가면서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종편은 편향적 정파적 방송이라는 정체를 숨기며 영향력을 확장해갔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종편의 눈치를 살피고 종편에 저항할 엄두를 점점 내지 못하게 만들어 간다. 국민들마저 경계심을 늦추는 기색이다. 괴물에게 보약을 지어주는 짓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괴물의 힘은 무럭무럭 자라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종편이라는 괴물은 3년에 한 번씩 방송사업에 대한 승인을 받아야 한다. 내년 봄이면 이들이 방송을 설립한지 3년이 된다. 얼마 전 방통위는 종편·보도PP 재승인 기본계획안을 확정했지만 심사기준이 엉터리다. 요식적 절차를 거쳐 종편들을 모두 재승인해 줄 심산이라는 것이 뻔히 보인다. 겨우 2년도 안된 종편이 우리 여론지형을 파괴한 영향력을 감안해보면 재승인을 받아 3년이 더 지나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두렵기만 하다.

그런데도 이를 막기 위한 싸움과 노력은 아직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여론시장에 패악질을 해대는 종편을 바로잡기 위한 싸움은 큰 관심을 끌지 못하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조중동 방송저지 범국민행동을 만들며 싸웠던 시민사회, 연일 집회와 파업으로 맞서며 저항했던 언론 단체, 미디어법 저지를 위해 의원직까지 내걸고 반대했던 정당, 조중동의 방송진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던 학계, 미디어법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던 국민들, 적어도 겉으로는 당시와 비교해보면 다들 잠잠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국정원의 선거공작을 비롯하여 헌정질서에 도전하는 국기 문란 사건이 연이어 터진 것도 한 원인일 수도 있겠다. 언론개혁운동진영도 오랜 싸움에 지쳐있고 피로감이 겹겹이 쌓인데다가 저들이 워낙 막무가내여서 저항해봤자 잘 안 된다는 무력감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저들의 노림수에 말려드는 것이다. 3년 뒤에는 너무 늦다. 이번에 막아내지 못하면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호한 결기와 의지가 절실한 때다. 물론 쉽고 만만한 싸움은 결코 아니다. 지난번 미디어법 싸움 때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집권세력, 조중동만 해도 쉽지 않은데 이미 종편이라는 무기마저 손에 넣었다. 애초에 출범 못하게 막는 것보다 이미 시작한 방송을 제어하거나 취소시키는 과정은 더 복잡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재승인 심사는 어쩌면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다. 우리 앞에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종편 괴물은 독이빨로 민주주의를 물어뜯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