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_
[시민비평공모-가작] 서른 둘 서울시민의 당부
등록 2013.09.30 14:05
조회 563

우리 단체가 주최하고 <오마이뉴스>가 후원한 <시민비평 공모 - 시민, '좋은 방송'을 말하다>에 참여해주신 시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현 정부들어 위기에 처한 공영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가치를 알리자는 취지로 기획된 이번 공모에 48편의 글이 들어왔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이중 8편을 선정했고, 그 수상작을 싣습니다.


[가작] 서른 둘 서울시민의 당부

‘MBC PD수첩 8월 5일 방송분’ / 김동규

▲ <MBC PD 수첩>

지난 8월 5일, MBC <PD수첩>은 '종합부동산세'와 '서울시의회 금품 살포'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중에서 특히 '서울시의회 금품 살포'의 논리적 전개와 정확히 짚어낸 문제의 핵심에 감명을 받아 이렇게 소감을 납깁니다.

MBC <PD수첩> '서울시의회 금품 살포'는 사건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위주로 김귀환 서울시의회 의장의 금품 유포 혐의를 조명했습니다. 또, 다른 지방의회도 사정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며, 문제의 원인이 결국엔 지방자치제도의 본질적 결함에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방의회의원의 정당공천제였습니다.

이 사건이 막 불거졌을 때, 문제 당사자가 특정 정당원이란 이유로 정치적 공방의 근거가 되었고, 많은 언론의 보도도 이번 사건이 어떤 당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PD수첩>의 시각은 좀 더 객관적이었고, 흥미보단 문제해결방법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밝혀낸 이 사태의 본질적 원인은 시민들의 정당한 이유제기에도 불구하고 지방의회의원의 정당공천제를 관철시킨 국회의원들에게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자 사건의 추이를 바라보는 제 시각도 변했습니다. '어느 당에 유리할까?'에만 초점이 맞춰졌던 제 관심은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 그 자체로 옮겨졌습니다.

전 서른두살 서울시민입니다. 서울시장의 이름을 알고 지역구 국회의원의 이름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의회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방송에서는 '지방의회에 대한 불신'이란 말이 나오지만 전 그 '불신'조차 없을 만큼 지방의회의 존재, 그리고 지방자치제도에 무관심했습니다. 제 주민의식 부족이 직접적 원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지방자치제도, 특히 지방의회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라 생각합니다.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지방의회의원들조차 의장직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국회의원으로 가는 통과의례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들만을 비판할 일은 아닙니다. 지방의회의원직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존경과 관심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전통적인 중앙 권력만을 권력으로 인정하려는 주민의식 부재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지역마다 지방자치를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제대로 된 감시가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지방의회에 대한 관심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자신들의 지역문제조차 중앙 권력의 눈에서 평가하고 판단하려드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방자치의 올바른 정립, 즉 지방의회가 단체장의 독주를 견제하고 지역민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기관이 되기 위해서 우선 필요한 것이 지역민의 관심입니다. 제가 <PD수첩>을 통해 지방자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보면, 주민의 지방의회에 대한 관심환기에 방송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역문제와 주민의 권리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해결방안 제시입니다.

시사비평프로그램의 존재이유는 이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울시의회의 금품살포 사건은 사실 뉴스를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그때 제 반응은 '저런 나쁜 ○○'이란 잠시의 분노가 전부였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바뀌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PD수첩>은 돈을 받은 일부 의원들이 표현했듯, 저조차 없어지지 않을 '관행'이라고 생각했던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주고, 그것이 우리의 관심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전달력은 막강했습니다. 흔히 방송은 신문보다 깊이가 없고 표현에 한계가 많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방송 스스로도 객관성의 문제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 인쇄매체가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진실을 전달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힘은 바로 감정(感情)입니다. 이번 <PD수첩>의 경우 사건관련자들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돈을 받은 혐의가 있는 의원 대부분이 자신들은 억울하다고 얘기했습니다. 또 일부는 '관례'라고도 말했습니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돈을 주고받는 상황을 관례로 용인하고 있는 모습이 의아했습니다. '나만 그랬냐'고 말하는 의원의 모습이나 돈을 받지 않은 의원이 "제 입으로 어떻게 얘기하겠느냐"라며 인정 아닌 인정을 하는 부분에서는 실소도 흘러나왔습니다.

이것이 제가 사는 서울시의회 의원이 모습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의아함과 실소라는 감정적 반응은 방송의 어떤 메시지보다 강하게 절 움직이는 요인이었습니다. 시사프로그램이 갖는 메시지와 이런 감정의 전달력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 됩니다.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로 인한 촛불집회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시사비평프로그램은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시민의식 함양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지닙니다. 그래서 그것은 단지 방송사만의 것이 아닌 국민 모두의 소중한 재산입니다. 지금처럼 정권이 언론의 사명인 '날선 비판'에 '선동'이란 단어를 씌우며 온갖 불합리한 조처를 하는 것은 국민의 재산권을 침범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법과 원칙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긴다는 이 정권이 스스로의 자의적 잣대로 언론의 원칙과 국민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것은 부조리이고 모든 부조리에 저항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래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언론인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어떤 정당을 지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와 다른 의견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볼테르의 말처럼, 대한민국이 '톨레랑스'를 갖춘 민주사회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대한민국의 모든 '볼테르'들의 당연한 염원일 뿐입니다.

<PD수첩> 제작진 여러분, 나아가 모든 시사프로그램 제작자 여러분. 저희 모두의 바람을 기억하시어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올바른 방송을 위해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가능성이 있단 믿음을 줍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방송을 '선동'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성숙을 위해 힘쓰는, 여러분의 희생을 동반한 '분투'라고 생각합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