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_
[공지] 지역언론과 관련된 강의가 있습니다.(5/2)회원여러분
현재 지역언론법 제정과 관련하여 지역민언련에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민언련 활동가 및 회원들도 같이 고민하고 공유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마침 장호순(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선생님이 지역언론법과 관련한 강의가 5/2일(금)에 있습니다.
참고로 강의는 45기 언론학교 강의입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필히 같이 들었으면 합니다.
-일시 : 2003년 5월 2일 (금) 오후 7시
-장소 : 민언련 교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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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안>
지방분권 실현과 지역언론 활성화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1. 머리말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지방분권이 한국사회의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과거 영호남간의 지역감정에 가려졌던 수도권-비수도권 간의 불평등과 격차에 대한 우려와 불만들이 비로소 언론을 통해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언론재단의 신문기사 검색 사이트인 KINDS에서 서울에서 발행되는 10개 일간지가 2002년 한해 동안 지방분권이란 단어가 들어간 기사를 게재한 것은 328건이었다. 2001년에는 73건에 불과했다. 그런데 2003년에는 2달 사이에 무려 485건으로 늘었다.
지금까지 한국의 언론은 중앙과 지방 간의 격차에 대해서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한국에는 사실상 중앙언론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방일간지, 주간지역신문, 지역방송 등이 있긴 하지만, 중앙언론의 곁가지에 불과한 실정이다.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한 한국 언론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중앙집중의 정도가 심하다. 언론은 권력의 주위에 맴돌며 이득을 챙겨왔고, 권력은 언론을 가까이에 두고 편리하게 통제해 왔다. 대부분의 언론은 서울에, 그리고 지역언론도 지역권력의 중심지에 포진해 있다. 한국신문 발행부수의 92%가 서울에서 발행되고 있고, 방송프로그램의 90%가 서울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또한 이들을 먹여살리는 절대다수의 광고주들이 서울에 소재하고 있다. 한국의 중앙언론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병폐나 다름없는 지역 간 격차에는 큰 관심을 보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지방언론, 특히 지방일간지는 지방권력이 분배하는 각종 배급을 받아먹고 연명하는 수준이다.
지금과 같은 언론구조 하에서 지방분권이란 불가능하다. 지방분권이 실현되려면 행정수도의 이전과 같은 상징적이고 획기적인 작업도 필요하지만, 각 지역사회의 기초를 다지는 차분한 준비도 필요하다. 지방분권이이란 정치나 행정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교육 등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유기적이고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선 순위를 정해 장기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실시해야할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지방분권의 실현을 위해 먼저 해야할 일 중의 하나가 중앙에 집중된 언론권력의 분산, 즉 중앙언론과 지방언론의 균형을 갖추는 일이다. 지역사회의 물리적 기반으로서 도로나 상하수도 전기와 같은 기반시설이 필요하다면, 지역주민들이 정보와 의견을 교환해서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지역 언론이 있어야 한다. 과도하게 집중된 중앙언론의 힘을 지역적으로 분산시키지 못한다면 지방분권은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 지역격차와 지역언론
1960년대부터 본격 실시된 산업근대화는 수도권과 지방간의 격차를 크게 증폭시켰다. 한국경제는 농촌의 잉여노동력들을 도시의 임금노동자로 전환시켜, 산업화 초기 단계에 필요한 저임금 노동력을 풍부하게 공급함으로써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경제 성장은 도시와 농촌, 공업과 농업,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와 지방간의 극심한 불균형 구조를 기반으로 했다. 1990년대 밀어닥친 세계화의 물결도 지역 간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켰다. 자본과 금융의 세계화는 이미 굳어진 지역적 격차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지역의 경제형편상 거대 자본을 유치하는데 필요한 사회간접시설과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데 소요되는 재원을 지역 스스로 해결하기는 힘들다. 결국 중앙정부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지역의 독립성과 주체성은 그만큼 약화될 수밖에 없다.
세계화의 논리에서 "지방"이란 자주적이고 고유한 지역사회의 의미가 아니라 생산과 영리 활동을 유리하게 만드는 장소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이윤추구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지역의 생태환경, 지역 고유의 관습과 전통, 민주적 의사결정과정 등은 비효율이라는 이름으로 폐기되거나 효율성의 기준아래 종속되기 마련이다. 세계화로 재편된 경제체제 하에서는 국가와 대자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지역만이 발전할 수 있다. 지역의 정치는 지역 외부에 위치한 자본의 논리에 의해 그 운명이 결정되며, 지역사회의 문화와 전통, 환경과 복지를 추구하는 정책은 우선 순위에서 경제개발 논리에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80년대 들어 정부가 수도권 분산정책을 폈지만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본사는 정치권력과의 유착, 국제자본과의 유대 및 금융경영-시장-기술 등에 관한 제반 정보접촉이 용이한 서울에 위치시킨 반면, 생산작업시설만 사회간접자본이 갖추어지고 저렴하고 유순한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대도시 주변이나 지방의 공단에 배치했다. 서울에는 본사, 지방에는 공장이라는 산업적 계급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산업 및 노동기능의 지역적 분화는 자연스럽게 지역 간 불평등관계로 굳어졌다.
중앙집중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방자치제는 오랜 중앙집권 체제하에서 굳어진 지역 간의 불균형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지역사회가 발전하는데 필요한 조건, 즉 해당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마침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자치란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권리를 지키는 필수적인 도구로, 지방자치는 자치의 권리를 지역적인 단위로 행사하는 것이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권력의 분산과 견제를 통해 권력의 남용과 독재정치의 출현을 방지하기도 한다. 따라서 소수개인의 권력독점뿐만 아니라 특정지역의 권력집중화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반도의 정치체제는 전제왕권, 일제식민지, 군사독재 시기를 거치면서 지역사회를 중앙권력의 통치를 받는 하부단위로 관리-통제만 할 뿐, 지역주민들의 여론반영이나 정치적 참여는 근원적으로 차단했다. 삼국시대이후 지역사회의 중요사안은 국왕이 파견한 관리에 의하여 결정되었고, 그 행정에 지방주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길은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정권이 위기에 몰리자 군사정권은 6. 29선언을 발표하면서, 직선제 개헌과 동시에 지방자치의 조기실시를 약속했다. 1987년 개정 공포된 헌법 제 117조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며 지방자치에 관한 사항을 명시했고, 1988년 4월에는 지방자치법이 개정되었고, 1991년 3월 26일에 기초의원선거, 동년 6월 20일에 광역의원선거가 각각 치루어지면서 지방의회를 선두로 지방자치제가 출범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방자치를 실시한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러한 중앙권력의 지역분산이라는 기본조건은 충족되지 않았고, 결국 지역사회 발전이라는 지역주민들의 숙원이나 지역 간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는 달성되지 못했다. 오히려 지역사회가 당면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점들은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우선 지방의회 선거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토착보수주의를 기득권으로서 정착시켰다. 지역의회 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은 대다수가 중소상공인, 지주 등으로서 주로 지역의 상층지배계급이나 토착유지들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선거결과는 지역의 기존 보수적 관변단체나 지역정치 조직망을 장악해온 여권 성향의 인사들이 지역지배력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지자세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부분의 지역토호 세력들은 지역주민의 무관심과 감시 소홀의 틈을 이용, 겉으론 행정감시나 주민권익보호를 앞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기득권 세력과의 야합과 타협을 통해 자신들의 사리 사욕과 집단이익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지방의회의원들과 자치단체장들은 관광성 해외연수를 떠나 예산을 낭비하고, 각종 이권에 개입해 뇌물을 받고, 청탁 인사의 대가로 상납을 받는 등의 구조적 비리와 부패가 만연했다.
지방자치제를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간의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우선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와 영향력이 아직도 상존하는 불완전한 지방자치이기 때문이다. 정부 권한의 중앙집중도가 여전히 높고, 특히 지역사회에 중요한 교육과 치안분야가 지방자치에서 제외돼 실질적인 자치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독립이 이루어지지 못하다보니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간섭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방분권에 가장 큰 걸림돌은 부실한 지역언론이다. 중앙정부가 가진 권력을 지역으로 분산시키는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필요한 지역주민들의 여론을 결집할 지역언론매체가 없는 것이다. 언론없는 민주주의를 상상할 수 없듯이, 지역언론 없는 지방분권이란 있을 수 없다. 지역여론을 수렴하고 지역정부를 감시-비판하는 수단이 없다면 지방분권이나 지방자치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1년 부활된 지방자치는 사실상 지역언론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시되었다. 지역언론의 부실로 인해 후보자에 대한 능력검증이나 정책에 대한 의견수렴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출신지역, 가문, 출신학교 등 연고가 튼튼한 사람이나 선거자금이 많은 지역유지들이 지역의 정치적 대표자로 선출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까지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들이나 지역행정가들 조차 지역언론의 활성화보다는 행정 제도 보완에 중점을 두어 왔다. 지자제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비리를 저지르거나 무책임한 단체장을 주민들이 해임할 수 있도록 하는 주민소환제 및 중요한 사안은 주민들이 투표로 결정하는 주민투표제 등의 주민 참여제도 도입을 적극 주장한다. 지방자치단체의 무분별한 예산낭비, 행정오류 등에 대해 해당지역 주민들이 직접 감사를 요구할 수 있는 '주민감사청구제'를 활성화하고, 지방행정의 투명성, 공개성, 공정성을 검증하는 장치인 '행정정보공개청구제'의 활용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단체의 계획이 실천에 옮겨져 수확을 거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주민소환이나 주민투표 운동을 하기 위해 먼저 해야할 일, 즉 지역주민들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여론을 수렴할 지역언론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언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전국에는 80여 개의 지방일간지, 12개의 지역민간방송, 500여 개의 지역주간신문들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 그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중앙언론 중심구조에서 더부살이해온 대다수 지방언론들은 오히려 지방자치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지방언론은 지역사회발전이나 지역분권 차원에서 기능을 발휘하기보다는 중앙집권체제의 연장을 위한 형식적인 장치에 불과했다. 따라서 진정한 지방분권이 이루어지려면 지금과 같은 지방언론의 존재구도는 제거되어야 한다.
3. 한국 지역언론의 역사
한국 최초의 신문이라고 알려진 신문은 "한성"순보였다. 한국 언론의 원조는 지방신문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적 지방신문은 일본인들이 먼저 시작했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이후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일본은 서울뿐만 아니라 각 지방에서 일본인들을 위한 일본어신문을 발행해 정보수집과 교류에 힘썼다. 그 결과 한반도에서 발행된 최초의 신문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들에 의해 발행되었다. 부산의 일본인 상법 회의소는 한성순보보다 1년 10개월이나 앞선 1881년 12월 조선신보 발행했다. 1883년 한성순보 이후 독립신문, 매일신문,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 여러 신문들이 잇달아 창간되었지만 모두 서울에서 발행되었다. 지방에서도 신문을 발행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재정적인 이유로 거의 성사되지 않았다.
한일합방과 더불어 이땅의 지방언론 탄압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한일 합방이후 일제는 철저하게 한국 신문을 탄압해 당시 1200만 한국인을 위한 신문은 3천부 정도를 발행하던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발행부수 2000부의 경남일보뿐이었다. 그러나 한반도에 진출한 16만의 일본인들을 위해 발행된 신문은 서울의 경성일보, 인천의 조선신문을 비롯해 부산, 평양, 나남, 대구, 전주, 군산, 목포, 진남포, 신의주, 원산 등지에서 모두 16개의 신문이 발행되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일제는 1920년 창간을 허가했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한국어 신문에는 폐간명령을 내렸지만, 청주와 춘천을 제외한 각 도청 소재지에서 하나의 일본어 신문을 계속 발행토록 허용했다.
해방과 더불어 전국 각 지방도시에서 잇달아 신문이 발행되었다. 부산의 인민해방보, 대구의 영남일보, 전주의 전북신문, 군산의 남선신문, 인천의 인천신문 등, 일본인이 발행하던 지역신문사의 인쇄시설을 접수하여, 각 지역에서 신문을 발행했다. 그러나 미 군정청은 일도일지 원칙에 따라 각 도청소재지에서 발행되던 일본어 지방지들은 친미우익적 성향의 인사들에게 불하되었고, 결국 해방후 지방신문은 보수우익 성향의 상업적 언론으로서 정치권력에 취약한 언론자본이 되고 말았다.
4-19 혁명이후 5-16 쿠데타 직전까지 서울에서 발행되는 일간신문은 61개, 지방의 일간지는 52개로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5-16 군사정권은 언론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신문의 숫자를 줄였다. 쿠데타 일주일만인 1961년 5월 23일,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사이비 언론인 및 언론기관 정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신문 등 정기간행물의 일제정비를 단행했다. 신문제작에 필요한 인쇄시설과 통신발행에 필요한 송수신 시설을 갖추지 못한 신문과 통신의 등록을 취소하고 당분간 언론사 신규등록을 접수하지 않았다. 불과 닷새만에 전국 916개의 언론사 가운데 약 91퍼센트에 달하는 834개가 등록 취소되었다. 일간신문 39개 (서울 15개사, 지방 24개사) , 통신 11개, 주간신문 32개만이 생명연장의 허가를 받았다.
국가재건회의의 포고령에 담긴 소위 "시설 기준" 조항은 1962년 7월31일에 공표된 '언론정책시행기준령'과 1963년 12월12일 제정된 '신문·통신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 속에 포함되었다. 시설 기준에 따라 서울시에 본사를 둔 신문사는 윤전기 3대 또는 매 시간당 타블로이드판 4면 기준으로 7만 부 이상을 찍을 수 있는 윤전기 1대 이상과 기타 제작시설을 갖추어야 하고, 인구 30만 명의 도시에 본사를 둔 신문사는 윤전기 2대 또는 매 시간당 타블로이드판 4면, 기준으로 4만 부 이상을 찍을 수 있는 윤전기 1대 이상과 기타제작시설을 갖추어야 했다. 이후 1989년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정기간행물 등록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한국에서는 윤전기라는 고가의 외제 장비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신문발행을 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군사정권 하에서는 신문 창간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시설기준은 군사정권이 신문의 숫자를 제한하여, 비판과 감시의 눈을 피하고, 기존의 신문사에게는 각종 특혜를 부여함으로써, 장기집권을 하는데 필요한 정보차단과 여론왜곡을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정책도 박정희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11월 "건전 언론 육성과 창달"이라는 구실로 신문과 방송의 통폐합을 단행했다. 기존의 6개 통신사가 단일통신사로 개편되었고, 지방일간지는 태평양 전쟁 시절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채택했던 1도 1사제가 실시되어, 서울에 10개, 지방에 10개의 신문만을 허용했다. 언론통폐합에서 살아남은 신문들은 엄청난 성장과 수익을 기록했다. 신규신문의 시장 진입 차단과 내수시장의 확대로 크게 늘어난 광고시장을 신문사들이 거의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은 언론인들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서 공익자금을 조성, 해외연수, 자녀학자금 지원, 소득세 감면, 생활안정자금 융자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1990년대 들어 한국의 언론인들은 귀족화, 특권화되기 시작해, 과거의 지사적 위치에서 지배계급 대변자로서 그 지위와 역할이 달라졌다.
1987년 6월 항쟁이후 군사정권이 퇴각하고 언론의 자유가 다시 보장되기 시작하면서 지역신문의 숫자가 다시 크게 늘어났다. 일간지의 경우 1987년에는 30개였으나 1988년에는 65개로, 주간지역신문도 1년 사이 226개에서 496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군사정권 하에서 자본과 시장과 기술을 축적한 기득권언론의 경쟁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군사정권하에서 한국 언론시장의 구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기형으로 성장해, 200만 부 이상을 발행하는 3개의 중앙일간지가 전국시장을 거의 독차지하게 만들었다. 중앙지가 전체 신문시장의 90%이상을 점유하고, 방송국도 전국네트워크가 사실상 지배하고 지방방송은 구색에 불과해졌다. 한국광고주협회가 2000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지역신문의 구독 비율은 8.7 퍼센트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과 독일의 지역신문 비율은 94퍼센트, 프랑스는 73퍼센트, 일본이 44퍼센트, 영국이 28퍼센트이다.
한국처럼 소수의 거대 신문이 전국의 신문시장을 사실상 장악하고 지역언론이 사실상 빈사상태에 빠진 것은 세계적으로 볼 때 예외적이다. 인터넷, 위성 등 지역과 국가간의 경계가 무너지면 미디어 산업에 큰 변화를 몰고왔지만, 전세계 대부분의 언론은 여전히 지역언론 중심체제로 남아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남아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거대 중앙지들의 위세가 줄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언론구조가 권력이나 언론사주에게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중앙언론체젝는 권력으로하여금 언론통제를 용이하게 해주고, 언론사주에게는 이윤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대신 대다수 국민들은 서울시민이든 전남도민이든 관계없이 희생자가 된다. 단지 자신들이 희생자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4. 한국 지역언론의 현실
지역언론의 부재로 인한 불편은 서울이나 지방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 즉 생활지역에서 발생하는 뉴스나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기가 매우 어렵다. 중앙언론에서 지역단위의 뉴스까지 소상히 제공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21세기 첨단정보의 시대, 세계화 시대에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등잔 밑이 어두운 봉건시대적 불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지역언론이 없거나 있어도 제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당연히 지역사회에 대해 무관심하게되고, 자기 동네에 쓰레기장이 들어설 때처럼, 자신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니고는 대부분 지역사회내의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참여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신체에 비유하자면 동맥과 정맥만 있고 실핏줄은 없는 무기력한 인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는 그 증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익숙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체질화된 것이다.
지역언론이 무시를 당하고 외면받아온 것은 지역에 대한 그릇된 고정 관념 탓도 있지만, 언론으로서 전국언론에 비해 질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지방일간지와 지방 공중파방송 등의 지방언론이 존재해오긴 했지만 중앙언론에 비해 규모도 작고, 내용도 중앙언론을 중계하거나 답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편 오랫동안 중앙일간지에 익숙해 있고, 지역뉴스보다는 중앙뉴스나 국제뉴스에 익숙해있던 지역주민들은 지역뉴스의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했다. 왜곡된 언론문화가 교정되지 않은 채 봇물터지듯 늘어난 지방지들은 오히려 지역언론 환경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었다. 지방일간지들의 숫자는 크게 늘었지만 독자들의 숫자는 늘지 않았고 자연 지방지는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지역민방이 늘어나고 지방일간지의 발행이 자유로워지긴 했으나, 지방언론은 2류 언론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민방은 중앙방송의 중계소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지방일간지들은 언론비리의 온상이란 인식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현재 대부분의 지방일간지들은 지역주민들의 보편적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지역사회의 일부 계층에만 영향을 주는 정도이다. 대부분의 지방신문들은 논조나 편집 이념, 표적 독자확보 전략 등 고유한 색깔에 따라 차별화되지 못하고, 중앙신문보다는 읽을거리가 적고, 디자인 등 형식에서도 상당히 뒤떨어지는 이류신문으로 취급받고 있다. 심층적으로 취재 보도하는 탐사보도 역시 미흡하고, 지역주민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뉴스도 찾기 힘들다. 자연 지방신문이 지역주민의 생활필수품과 같은 요긴한 물건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설사 지역기사를 다룰 때에도 지역이기주의나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등 독자들의 감정에만 영합하는 지역선정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또한 지방신문의 경영악화는 기자들의 저임금과 임금체불로 이어지면서 지역언론인들의 자질을 떨어트렸다. 기자들이 부수확장이나 광고수주에 나서는 것은 물론, 촌지수수, 이권 개입 등의 비리를 야기시켰다. 지난해 광주-전남 기자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 기자들의 67.4퍼센트는 고유업무인 취재보도 활동 외에 광고수주나 신문구독 권유 등 영업활동을 회사로부터 강요받는다고 밝혔다. 40.6퍼센트는 영업활동 때문에 취재보도에 지장을 받는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신문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언론사주들이 "지방신문 그 자체의 사업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신문 경영의 부산물로 얻을 수 있는 신문 외적인 이익이나 영향력 확대에 더욱 뜻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지방신문 사주들은 지역여론을 자기 자신이나 소유기업)에 유리하게 관리하거나 조작하고, 유사시에는 신문을 방패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방 신문경영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다. 지방신문의 사주는 지방신문을 통해서 지역세도가로 위상이 높아지며, 기자를 통해 온갖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데다가, 사주가 운영하는 다른 기업들에게 때로는 해당 관청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패막이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웬만한 규모의 지방일간지는 거의가 재벌, 부동산, 건축업 등으로 축적한 향토 대기업의 계열사이다.
지역사회 발전과 지방자치 실현에 필수적인 지역신문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언론을 육성해 지역주민의 알권리를 보호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방자치를 활성화하려는 사회적 공감대나 정책적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방자치 시행을 위해 엄청난 예산을 지출하는 정부지만 지역언론에 대해서는 정부광고나 계도지 구입이나 촌지 등을 통해 회유하고 이용하려고만 했을뿐 건실한 지역언론 육성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다. 지방일간지의 폐해를 답습하지 않겠다며 시-군-구 지역에서 주간 지역신문들이 잇달아 창간되었으나 신문발행 경험부족, 영세한 재정규모, 지역사회의 무관심 등으로 인해 대부분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여야 했다. 결국 한국의 지역언론은 제도적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는한 소생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지역신문의 경영상태가 부실한 근본적인 이유는 수백 년 동안 굳어진 중앙중심적 제도와 관습이 지역언론을 발붙이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중앙지에 길들여진 지역주민들은 아직 지역신문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그 결과 지역신문 구독 습관이 정착되지 않고 있다. 권력에 의해 강요되었던 지역언론 탄압정책은 시일이 지나며 지역의 고유 문화로 굳어졌다. 그래서 아무리 지역감정이 강한 곳이라도 언론만은 지역언론이 아닌 중앙언론을 선호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지역언론을 배양할 경제적 토양도 척박하기 이를데 없다. 지역경제는 늘 불황에 허덕이고, 신문을 발행할 수 있는 혹은 양질의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인적자원이나, 재정적 자원은 일찌감치 서울에 흡수되고 있다.
5. 정치개혁과 지역언론
민주주의는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전제로 한다. 국민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을 감추고 유리한 것만을 선전하면서 상대 정치인들의 약점만을 들추어낸다. 특히 선거 때일수록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마구 유포시켜 유권자를 현혹시키기 마련이다. 유권자들은 후보자 개인신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아울러 그가 속한 정당이 제시한 정책에 대해 숙지하고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후보자 자신들의 선거유인물이나 선거유세 만으로는 유권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다. 상인들의 말만 믿고, 혹은 상품광고를 곧이 곧대로 믿고 물건을 사들이는 살림꾼이 있다면 그 집안 골이 어떻게 될지 뻔한 것 아닌가. 선거가 끝난 후에도 뽑힌 사람들이 선거전에 약속한 대로 그리고 뽑아준 유권자의 뜻에 따라 일을 하는지 감시, 평가해야한다. 한편 정치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국민의 주권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언론을 통해 유권자들의 의사를 탐지할 수 있어야한다.
사기업인 언론사가 언론의 자유라는 특권을 누리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공익적 기능 때문이다. 따라서 상업적 이윤 추구에만 매달리고 국민의 알권리를 외면하는 언론사는 언론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 언론의 자유는 권력의 압력이나 보복을 두려워하지 말고 국민의 입장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이다. 따라서 국민의 알권리 중 언론사가 가장 우선적으로 충족시켜주어야 할 대상이 정치인과 공직자들에 관한 정보이다.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심부름꾼들이 주인이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의 정치보도는 국민의 알권리를 수행하는 가장 기초적인 기능이다. 국민들은 언론을 통해 얻은 정보를 근거로 여론을 형성하고, 그것은 그들을 대신해 주권을 수행하는 정치인들에게 전달한다. 불합리한 정치제도의 개혁도 중요하지만, 유권자와 정치인들을 연결해주는 언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정치개혁의 또다른 축이 되어야 한다.
결국 지역언론 없이는 정치개혁도 민주주의도 불가능하다. 대통령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정치인이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인 선거는 지역단위로 이루어진다.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각 지역마다 선출하는 정치인들이 다르기 때문에, 전국지나 지방지일수록 정치보도가 부실해진다. 다루어야할 정치인들이 너무 많은 탓이이다. 아무리 정치면을 많이 늘린다 해도 모든 정치관련 뉴스를 다룰 수 없다. 결국 수백, 수천 명에 달하는 정치인들을 단편적으로 피상적으로 훑어주는 수박 겉핥기식 보도나 지도자급 정치인이나 스타 정치인의 보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권후보자나 주요당직자들의 근황만을 반복 소개할 뿐이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더욱 그렇다. 중앙언론이 선거분위기는 주도해가지만 정작 후보자를 선택하는데 필요한 뉴스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뉴스는 무성하지만 정작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정치정보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인들을 개별적으로 감시-비판하고 유권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가장 충실히 제공할 언론매체는 거대한 중앙언론이 아니라 지역언론인 것이다.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치뉴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대표해 선출된 정치인들의 활동 소식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선거 때 약속한 공약을 지키고 있는지,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유권자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뉴스는 해당 지역의 지역언론만이 제공할 수 있는 뉴스이다. 따라서 정치뉴스의 제공, 특히 선거 보도는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지역신문들이 그 위상을 확고히 하는 기회가 된다. 선거기간동안에는 지역주민이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를 원하기 때문에 지역사회 전체에서 정치 뉴스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이러한 수요를 가장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언론매체는 현재로서는 지역신문뿐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신문들이 지역신문 위주로 형성되어 있는 주된 이유도 이러한 정치보도의 지역성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신문과 방송을 통해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 수 있다. 타 지역의 정치인에 대해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이 아닌 이상 관심을 갖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특히 선거 철이 되면 지역언론의 중요성이 확연해진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주지사, 연방의회 의원 등 덩치 큰 정치인에서부터 시장, 경찰서장, 판사, 검사, 보험감독관 까지 거의 모든 주요 공직자를 2년마다 혹은 4년마다 직접선거로 뽑는다. 그러나 선거기간동안이라도 우리처럼 길거리에서 후보자의 유인물이나 명함을 돌리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도로변 잔디밭에 꽂힌 후보자 포스터 표지판이 선거를 알리는 유일한 게시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유권자들은 거의 모든 후보자들의 신상과 공약에 대해서 쉽게 알 수 있다. 지역 신문들이 후보자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이었다. 지역언론이 후보자에게는 정견발표의 장이 되고 유권자들에게는 자질을 검증할 창구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각 선거 때마다 수십여 명의 후보자들이 선거운동에 뛰어들지만 선거비용이 크게 문제되지 않고 선거부정 사례도 거의 없다. 미국의 1500여 개의 일간지, 6600여 개의 주간지, 1500여 개의 지역텔레비전을 통해서 돈 안들고 깨끗한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이었다.
민주주의 두려워한 한국의 과거정권은 지역언론의 정치보도 기능을 근원적으로 차단했다. 깨끗하고 공정하고 현명한 선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선거 비용이 많이 들었고 자연히 선거부정이 만연했고, 정치적 부패와 무능이 고질화되었다.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언론을 통해 제공받을 수 없었고, 후보자들은 효과적으로 자신의 능력이나 자신의 정견을 유권자들에게 알릴 수 없었다. 한정된 중앙언론의 지면을 통해서 자신들을 지역구민들에게 알리기는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따라서 선거가 닥치면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는 방법 외에 효과적인 선거운동방법이 없었다. 자연히 많은 선거비용이 필요했고, 얼마를 선거운동에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당락이 좌우되었다. 이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 당선된 사람들은 당선이 되자마자 선거운동에 투자한 본전을 뽑아야 했고, 다가올 선거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정치구조와 언론구조가 권력과 부패한 자본이 유착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한편 언론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선거는 깨끗하고 현명한 선거문화 정착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최근 대통령선거에서 거듭 입증되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유권자들이 후보자에 관한 정보입수의 수단으로 TV가 44.7%, 신문이 33.1%, 선거홍보책자가 3.3%로 나타남으로서 TV가 유권자의 선택에 큰 도움을 주었음이 입증되었다. 1992년 대선에서는 후보자에 관한 정보입수 경로로 전파매체가 41.3퍼센트, 신문잡지가 19.3퍼센트, 가족 등 주위사람이 10퍼센트, 홍보물이 7.1퍼센트, 선거유세 7.1퍼센트 등이었다. 1997년 대선이 끝난 후 실시한 유권자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정도가 tv토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였으며, TV 연설이 16.8퍼센트, 신문방송보도가 10.5퍼센트, 신문방송광고가 6.9 퍼센트의 순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대인 커뮤니케이션, 선거유세, 선거 홍보물은 전부 합해도 채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TV토론은 전국적으로 동일한 후보를 선택하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효과를 보이지만, 전국 각지에서 각기 다른 후보를 뽑는 지방자치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기력해진다. 우선 지역단위의 방송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지방국과 지역 민방이 있지만 서울 프로그램의 중계에 대다수 시간을 채우고 있고, 지역편성 마저도 각각의 시군 지역단위가 아니라 도단위 광역화되어 지역차별성을 지닌 방송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일부 지역에서 유선텔레비젼 방송이 후보자 토론회를 중계했으나, 가입율이 적어 시청율도 낮고, 지역주민들에게 후보자를 알리는 역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지방자치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에는 언론매체보다는 선거운동이나 선거유세 그리고 유인물이 유권자들의 주된 정보습득 창구였고, 언론보도는 유권자에게 별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
결국 지금과 같은 언론구조하에서는 정치개혁이란 소망에 그칠 뿐이다. 인터넷이 대통령 선거에는 영향을 발휘해, 중앙언론의 의제설정기능을 견제하고 기존의 선거문화를 바꾸었지만 지역단위의 선거에서는 아직 그런 기능을 발휘할 단계가 아니다. 결국 국회의원선거나 지방자치선거에 있어서는 여전히 불법적이고 비효율적인 선거방법이 동원될 수 밖에 없고,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는 지역주민들의 의지는 제대로 반영되기 힘든 것이다. 지역단위의 선거에서도 인물검증과 정책경쟁이 벌어질 수 있게 하려면, 그래서 21세기를 이끌어갈 지역대표를 선출하려면 지역언론의 활성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6. 지방분권과 지역언론
노무현 정부의 개혁정책에 시동이 걸리자 예상대로 기득권 세력의 반발과 저항이 만만치 않다. 검찰이나 재벌 등 당사자 뿐만아니라, 조선 동아 등 보수 신문들은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재벌개혁이나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분명해 이들 분야에서의 개혁작업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개혁정책에 비교적 우호적인 방송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진보적 신문과 인터넷 매체가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여론 왜곡도 우려할 사항은 아니다. 오히려 보수신문이 재벌과 검찰의 편을 들면 들수록 국민들은 더욱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어려운 문제는 지방분권이다. 추진 주체의 힘이나 여론의 지지 모두 미약하기 때문이다. 서울 독점 체제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의 힘에 비해, 지방분권을 원하는 지방사람의 힘은 그야말로 오합지졸 수준이다. 특히 여론주도력에 있어서는 비교가 안된다. 한국사회의 여론은 서울사람에 의해, 그들의 입장과 이익을 우선 반영해 형성된다. 이를 주도해온 것이 언론이다. 그래서 한국 언론은 보수, 진보 관계없이 중앙에 포진한 기득권 세력이다. 적어도 지방분권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다. 그들은 지역격차를 체감하지도 지방분권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왔다.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한국언론은 권력의 주위에 맴돌며 갖가지 이득을 챙겨왔고, 권력은 언론을 가까이 두고 편리하게 이용하고 통제해 왔다. 그 결과 한국 신문의 95%가, 방송프로그램의 90%가 서울에서 만든 것이다.
자연 신문지면과 TV화면 대부분은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채워진다. 지방에서 발생한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대구 지하철 사고처럼 대형사고가 터진 경우이다. 중앙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지방의 모습은 낙후하고 궁핍해서 사람살기 힘든 곳일 뿐이다. 잠깐 주말에 놀러가거나 쓰레기 처리하는데 필요한 장소일 뿐이다. 물론 지역에도 언론은 있다. 대도시마다 지역방송국과 지방일간지가 있고, 중소도시에는 주간지역신문이 발행된다. 그러나 지역언론은 모든 면에서 중앙언론의 곁가지에 불과하다. 지방방송국은 중앙방송의 중계소나 다름없으며, 지방일간지는 지역내 부조리의 산실이고, 주간지역신문은 지역유지의 홍보창구로 전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무현 정부가 지금과 같은 언론구조, 즉 비대한 중앙언론과 부실한 지역언론을 그대로 둔 채 지방분권을 추진한다면 저항을 이겨내기 힘들 것이다. 설사 정부차원에서는 지방분권이 실현된다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지방분권이 새삼스러운 국정목표는 아니다. 이미 10여 년 동안 지방자치제를 통해 지방분권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구호만 요란했을뿐,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지 못한 채, 지역 기득권 세력들을 위한 "그들만의 자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역 간의 불균형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중앙언론의 분산없이 행정기능의 분산만 시도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지역내의 정보교환과 여론을 수렴해주는 지역언론의 기능을 간과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지방분권이 이뤄지려면 행정수도의 이전과 같은 상징적이고 획기적인 작업에 앞서, 각 지역사회의 기초를 다지는 차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지방분권이이란 정치나 행정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교육 등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유기적이고 종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과제이다. 또한 우선 순위를 정하고, 지역 간의 이해를 조정해가며, 순차적으로 실시해야할 국가적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지역 내에서는 물론이고, 지역과 지역 간, 국가 전체적으로 원활한 정보교환과 의견수렴이 가능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물리적 기반으로서 도로나 상하수도 전기와 같은 기반시설이 필요한 것처럼, 지역주민들 스스로 지역사회를 정비하고 발전시킬 건강한 지역언론이야말로 지방분권의 첫 번째 조건인 것이다.
지금처럼 중앙언론이 여론을 독점한 상태에서, 지역언론이 부실하고 부패한 상태에서, 지방분권을 추진한다면 실패할 것은 자명하다. 지방분권의 필요성과 절박성을 대다수 국민들에게 설명할 경로가 없기 때문이다. 설사 지방분권이 강력하게 추진된다하더라도, 장차 비대해질 지방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지역언론이 없다면 오히려 지방정부의 부조리와 비효율적 역기능만 늘어날 것이다. 결국 "지방분권" 역시 "지방자치"처럼 한때의 유행어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중앙에만 집중된 기형적인 한국언론의 구조를 지역적으로 고루 분산된 정상적인 언론구조로 바로 세워야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지방분권을 할 수 있다.
7. 맺음말
지역언론이 부실한 상태에서 향후 한국사회의 개혁에 분수령이 될 향후 국회의원선거나 지방자치선거가 제16대 대선처럼 깨끗하고 효율적으로 치러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역단위에서는 기존언론은 물론이고 인터넷 역시 활발한 지역 내 정보교환 수단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정보 없는 중앙언론만이 사실상 존재하는 상태에서, 지방분권에 필요한 여론수렴이나 합리적 정책결정이 지역차원에서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오히려 섣부른 지방분권은 감시와 견제가 없는 상태에서 지방권력의 남용과 부패를 더욱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 지역언론의 사실상 부재로 인해, 지역사회내의 정보교류나 여론 수렴의 수단이 없으니 사회적 효율성이 떨어지고, 지역사회내의 현안을 민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중앙정부의 권한이나 예산을 지방에 이양한다고 해서 개선되지 않는다. 결국 지역언론의 부실은 지역언론자체나 지역사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비능률과 비효율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중앙중심적 언론구조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작업은 지금의 기형적 언론구조를 만든 정부가 우선 맡아야 한다. 한국에서만 유독 지역언론이 뿌리내리지 못한 것은 역대 정권이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지역언론을 규제하고 탄압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언론탄압에 대한 과오의 시정으로서, 그리고 지방분권의 효율적 토대를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정부차원의 지역언론 지원책이 시급히 나와야 할 것이다.
지역언론 육성 지원법 시안
제1조 (목적) 이 법은 지역언론의 건전한 발전기반을 조성하고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실현과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정의) 이 법에서 "지역언론"이라 함은 전국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일부 시, 도 혹은 시, 군, 구 지역만을 대상으로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매체로서 다음 각호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1)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에 따라 중소기업에 해당되는 언론매체.
2) 발행주기를 일간, 주간 또는 월간으로 하여 1년 이상 정기적으로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 혹은 하루 10시간 이상 방송을 실시하는 매체
3) 전체 지면 중 광고의 비율이 절반 이하인 언론매체.
4) 전체 뉴스의 자체 제작 비율이 절반 이상인 언론 매체
5) 인쇄매체의 경우, 발행부수공사에 등록된 언론매체
6) 방송매체의 경우, 전국네트워크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방송
제3조 (언론의 자유와 독립) 국가는 지역언론의 취재 및 보도의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제4조 (국가의 책임) 1) 국가는 지역언론의 육성과 지원을 위한 계획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 지역언론 육성 및 지원은 지방정부가 아닌 문화관광부가 맡는다.
2) 지역언론의 육성과 지원을 위한 계획 수립과 시행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5조 (지역언론 육성 및 지원 계획) 지역언론의 육성과 지원을 위한 계획에는 다음 각호의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1) 지역언론 육성 및 지원의 기본방향
2) 지역언론 육성 및 지원을 위한 중장기 계획 수립 및 연도별 계획
3) 지역언론 육성 및 지원을 위한 조사, 연구에 관한 사항
4) 지역언론 육성 및 지원을 위한 기술개발, 교육 및 인력지원에 관한 사항
제6조 (법제상의 조치) 정부는 지역언론의 육성과 지원을 위한 시책을 실시하기 위하여 필요한 법제상, 재정상 및 금융상의 조치를 할 수 있다.
제7조 (지역언론발전기금) 국가는 지역언론의 육성과 지원을 위하여 "지역언론발전기금"을 설치, 운영한다.
제8조 (지역언론발전기금의 조성) 지역언론발전기금은 다음 각호의 재원으로 조성한다.
1) 정부의 출연금 및 융자금
2) 개인 또는 법인으로부터의 기부금품
3) 문화관광부 소관의 다른 기금 등으로부터의 전입금
4) 기금운용으로 생기는 수익금
5) 기타 대통령으로 정하는 수입금
제9조 (지역언론발전기금의 용도) 지역언론발전기금은 다음에 해당하는 사업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1) 지역언론의 시설 및 설비 현대화 지원
2) 지역언론의 경영개선
3) 지역언론의 인력양성
4) 기타 지역언론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
제10조 (지역언론발전기금의 운용) 1) 지역언론발전기금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관리·운용을 위하여 지역언론발전위원회를 설치한다.
2) 지역언론발전위원은 지역사회와 지역언론에 관하여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사람 중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이 위촉하는 9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3) 지역언론발전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위원회규칙으로 정한다.
제11조 (지역언론발전기금 신청) 지역언론발전기금을 직접 지원받고자 하는 지역언론사는 사업의 목적과 내용, 소요비용, 기타 필요한 사항을 기재한 신청서를 당해 회계연도 3월말가지 지역언론발전위원회에 제출하여야 한다.
제12조 (벌칙) 1) 지역언론발전기금 신청서에 허위의 사실을 기재하거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교부받은 자는 보조금을 환수하고,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 교부받은 지원금을 사업계획서에 기재한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한 자는 지원금을 환수하고,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부칙
이 법은 공포후 3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