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위한 단체 ‘반올림’ 상임활동가, 반도체 노동자 직업병 소송으로 삼성과 싸운 노동인권 변호사,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KBS ‘저널리즘토크쇼J’ 패널. 시사에 관심 있는 시민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이름, 임자운 변호사다. 민언련 회원이라면 그가 현재 민언련 감사라는 것도 알 것이다. 민언련 언론학교 출신으로 신문분과에서 모니터 활동을 하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키웠다. 그래서 그는 민언련과 만남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2001년 만든 이메일 아이디 paperwatch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는 오래된 회원, 임자운 감사를 만났다. |
민언련 미워하셨던 부모님, 그 미움 사라지게 만든 아내
김경실 이사 이미 2013년 11월 <날자꾸나 민언련> 회원 인터뷰를 한 적이 있더군요. 앳된 모습이에요.
임자운 감사 그때가 반올림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에요.
김경실 신문분과에서 활동했는데 당시 함께한 분들과 연락하고 지내나요?
임자운 많지는 않지만 계속 만나고 있어요. 한 분이랑은 지금 같이 살고 있고요(웃음).
김경실 아, 그분이 누군가요. 신문분과에서 활동하다 만난 건가요?
임자운 박꽃님이라고요. 분과활동을 함께하진 않았고 민언련 모임을 통해 아는 사이 정도였다가 연애 한 건 한참 뒤인데, 어쨌든 신문분과 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결혼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요. 부모님은 민언련을 별로 안 좋아하셨는데, 민언련 때문에 제가 사회에 불만을 갖고 삐딱해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시거든요. 그런데 다행히 아내랑 결혼하면서민언련에 대한 미움이 사라졌어요. 민언련에서 좋은 짝을 만나 결혼했다고 생각하시니까요.
김경실 박꽃님 회원님, 훌륭한 분이네요! ‘뭉클’이라는 신문분과 OB모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나요? (박꽃님 회원은 민언련 오랜 회원입니다)
임자운 정상훈 선배가 처음 제안했던 것 같은데, 그 형 포함해 몇이서 뭉클 쪼가리 모임 같은 걸 해요. 술 한 잔 하자, 오랜만에 얘기 좀 하자, 이런 식으로 만나요. (정상훈 회원 역시 민언련 오랜 회원입니다)
<날자꾸나 민언련> 회원인터뷰를 하는 임자운 회원(2013년 11월호)
노동자 직업병 소송, 지친다고 안 할 수는 없는 일
김경실 변호사님 삶에 ’반올림’을 빼놓을 수 없는데, 상임활동가를 그만둔 지금 어떤 활동을 하나요?
임자운 반올림 활동 연장선에서 반도체 직업병 소송을 계속 하고 있어요. 정보공개소송도 하고요. 반올림 활동에서 법률파트는 소송, 업무상 질병 인정 소송, 작업환경 자료공개 소송 외에 법안을 만드는 입법연구 같은 걸 하죠.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를 꾸려 활동하는 게 있고,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산재보상보험법 개정을 위한 연구와 개정안을 직접 만드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김경실 지금 진행 중인 소송은 어떤 건가요?
임자운 요즘엔 생산라인 하부인 화학물질 공급설비 있는 데서 제보가 와요. 그 공간과 관련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사건을 항소심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해당 사건 재판부가 처음으로 그 공장에 직접 들어가 보겠다고 해서 얼마 전 다녀왔어요. 2013년부터 했는데 그런 일은 처음이에요. 판사님이 직접 보겠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지만 세팅된 환경에 들어가는 것이니 위험부담도 커요. 하지만 판결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앞으로 계속 나올지 모를 다른 직업병 사건들도 방향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김경실 공익활동을 하면서 회의감이 든 적은 없는가요?
임자운 회의라기보다 좀 지친 게 있죠. 반올림 활동 초반인 2013년부터 서면에 쓴 문장 혹은 법정에서 구두변론으로 한 말을 지금도 똑같이 하고 있거든요. 쓰다 보면 지쳐요. 내가 이 말을 언제까지 해야 되나 싶어서요. 우리가 주장해온 것들이 2017년 집대성되는 느낌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적이 있어요. 근로복지공단이 이 판례를 적극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옛날에 했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지치죠. 근데 뭐 어쩌겠어요?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는 거니까.
이제야 누가 같이 싸워주는 느낌이 든다
김경실 지담에서는 어떤 업무를 하나요?
임자운 노동사건 비중이 크지만 노동분야만 한정하진 않고 있습니다. 제 경우는 아무래도 질병 쪽 사건들이 많죠.
김경실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실망해 본 적은 없는가요?
임자운 왜 없겠어요. 당연한 얘기지만, 노동사건 맡기는 노동자라고 해서 모두 인격적으로 훌륭하시고 그런 건 아니잖아요. 또 소송이라는 건, 특히나 노동자들에게는 자기 인생이 걸려 있는 싸움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면 싸움에 대한 정서적 부담까지 변호사한테 안기는 분들이 많죠. 그렇더라도 여러 사건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변호사가 그런 것을 고스란히 떠안으면 못 살아남을 거예요.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둬야 하죠.
김경실 그럴 땐 이렇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임자운 공익사건은 스트레스를 비교적 덜 받는 편이에요. 일반 사건에서는 예상 못한 지점에서 의뢰인에게 감동하는 경우도 꽤 있어요. 최근 학교폭력 피해자 대리를 맡았는데, 서면을 써서 보내드렸어요. 변호사로서는 사건에 대해 냉정하게 써야 하는데 가족 입장에선 예민할 수밖에 없죠. 제 딴에는 열심히 썼지만 이분들 입장에서는 부족해 보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 감사하다는 이메일이 왔어요. ‘이제야 비로소 누가 같이 싸워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쓰셨더라고요. 엄청 기분이 좋았죠. 설령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같이 싸우고 힘이 되어드리는 것이 참 보람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변호사의 중요한 역할, 필터링
김경실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나 봐요.
임자운 어떤 분이 장문의 메시지를 주셨어요. ‘덕분에 이 문제에서 조금 벗어나 가족들과 온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오랜 기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셨는데, 그 말씀이 뭉클하더라고요. 노동 사건이나 괴롭힘 사건이나 학폭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사건을 맡기면서 해당 사건이랑 거리를 두지 못하면 엄청 힘들어요.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변호사를 찾아 맡겨놓고 스스로는 거리를 좀 둬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거든요. 이분도 그게 필요한 분이어서 그렇게 말씀 드렸는데 다행히 그렇게 해주셨던 거예요. 그걸 고마웠다고 말씀해 주시니 저로서도 좋았죠.
김경실 다소 유치한 질문 한 가지 해볼까요. 사람이 비교를 안 하면 참 좋지만 비교가 자연스럽게 될 때가 있잖아요. 이를테면 연수원 동기인데 힘 있는 큰 로펌에 있다든가, 정계에 진출했다든가 하는 분들을 볼 때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진 않는지요?
임자운 원하는 게 다르면 스트레스 받는 부분도 다르겠죠. 변호사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필터링이라고 생각해요. 법원으로 갈 사건과 가지 않을 사건을 선별하는 것. 가령 노동자가 해고당했다고 모두 부당해고인 것은 아니거든요. 노동위원회든 법원이든 가도 승산 없는 사건도 분명히 있어요. 그러면 사실대로 말씀드리는데도 하겠다고 하시면 진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실망도 많이 하고 어떤 분은 화도 내시죠. 처음부터 ‘이건 해봤자 안 되는 사건인데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맡았어.’ 저는 이런 경우는 아직 없어요.
법률제재 강화 vs 자율규제, 악의적 허위보도 해법은?
김경실 변호사이기도 하고 <저널리즘토크쇼J> 같은 언론비평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도 있어서 여쭤보는데요. 허위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법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하려는 국회의원들과 자율규제를 주장하며 입법을 반대하는 언론현업단체가 충돌하고 있는데 해법이 있을까요?
임자운 저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국회에서 추진한 방식은 굉장히 잘못된 거였고, 지금 추진하는 방식도 문제가 크다고 생각해요. 이 문제는 입법을 추진하는 측에서 섬세할 필요가 있습니다. 좀 더 차분하게 법을 잘 만들어서 대응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별로 그럴 마음이 없어 보여서 우려됩니다.
김경실 언론계에서 손배제도 도입을 환영하기는 어렵겠지만, 자율규제라는 게 과연 실효성이 있는 건지도 의문입니다.
임자운 이 논의는 잘못된 언론보도에 따른 폐해를 개선 혹은 방지하기 위해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해요. 계속 자율규제만 얘기하는데 그건 대책이 될 수 없어요. 다른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해요. 이제는 징벌적 손배제도 자체를 반대만 하지 말고, 제대로 잘 만들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를 언론현업에서 얘기해야 할 시점이에요.
김경실 한 사람의 인생이 순식간에 망가질 정도로 허위보도 폐해가 커 징벌적 손배제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언론탄압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반론도 거센데요.
임자운 징벌적 손배제는 민사영역인데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형사영역이랑 섞여서 얘기되는 것도 있어요. 그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죠. 그리고 악용됐을 때 상황을 전제로 많이 얘기하는데, 그렇게 가지 않도록 하는 데에 언론현업에 계신 분들의 몫이 크거든요. ‘이 정도 선이라면 위축되지 않을 것 같다’라는 구체적 의견을 언론노조 등에서 제시할 수 있어야 된다고 봐요. 일단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자는 합의를 하고 배상범위나 판단기준 등을 논의해가는 게 필요하죠. 지금 정청래 의원 안을 보면 ‘악의적 허위보도’가 그 대상인데, 악의적 허위보도의 판단기준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언론현업단체랑 논의기구를 꾸리는 방식으로 절차를 만들어서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일 잘하는 기자들이 진짜 이상한 기자들과 한통속으로 묶이면서 무력감을 느끼고 있어요. 잘 만들어지면 기자들에게도 힘이 되는 제도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활발한 회원활동 그땐 가능했는데, 지금은...
김경실 민언련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감사보고서를 꼼꼼하게 쓰셨던데 5.18 같은 연례행사는 좀 더 프로그램을 개발하자고 한 부분도 띄더라고요.
임자운 세대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행사라도 매번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면 아무래도 참여율이나 재미가 떨어질 것 같아 적긴 했는데,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제가 민언련에 가진 애정만큼 꼼꼼하게 감사 역할을 하고 있지는 못합니다.(웃음) 민언련을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과 제 활동에 대한 지향성을 갖게 됐던 게 사실이에요. 그것이 감사직을 수락한 가장 큰 이유고요.
김경실 예전엔 회원들이 신문모니터 등 분과활동을 열심히 했고 노래패 같은 취미 동아리도 활발했는데 요즘은 회원활동이 잘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회원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을까요?
임자운 그게 될까요? 그게 벌써 수십 년 전인데 그때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서너 시간 회의하고 보고서 작성하고, 분기별로 엠티 가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새벽까지 술 마시면서... 그 에너지로 분과가 유지가 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어렵죠.
김경실 지금은 왜 어려워졌을까요?
임자운 활동가들이 신입회원들과 더 적극 관계를 맺고 대응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잖아요.
유지예 활동가 제가 회원사업을 맡고 있는데, 회원분들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신입회원분들은 직접 참여하는 게 쉽지 않더라구요. 참여를 요청 드리면 ‘회비 납부로 활동을 지지하고 있으니 다른 일들은 활동가들이 수고해달라’는 대답이 오곤 합니다. 그 간극을 좁히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비판과 감시 중요하지만, ‘좋은 보도’ 알리는 것도 비평의 역할
김경실 회원으로서든 감사로서든 민언련에 바라는 것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임자운 <저널리즘토크쇼J>를 하면서 제일 아쉬웠던 게 언론비평이 네거티브 비평으로 가는 거였어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컸는데 제가 참여한 방송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그 안에서 좋은 보도를 발굴하고 소개해보려고 했지만 전체 분위기가 그렇진 못했어요. 비평이라는 건 나쁜 걸 찾아 지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좋은 걸 찾아서 알리는 활동도 중요해요. 민언련에서 계속 ‘좋은 보도상’ 시상을 하고 있는데 좀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람입니다. 그래서 언론운동을 하는 시민단체가 기자들을 감시하고 비판도 해야 하지만, 진짜 열심히 하는 기자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힘이 되어주는 이미지도 같이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김경실 이사
정리 김경실 이사 유지예 활동가
사진 이병국 대의원
▼날자꾸나 민언련 2024년 여름호(통권 227호) PDF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