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준경 미디어오늘 기자가 2022년 10월 18일 시민 미디어리터러시 3차 강좌에서 ‘시민을 속이는 언론, 나쁜 뉴스 솎아내기’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지인의 추천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해 10월 진행한 미디어리터러시(문해력) 강좌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강좌 프로그램에 나온 6개 강의가 모두 듣고 싶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유일하게 금준경 미디어오늘 기자의 “시민을 속이는 언론, 나쁜 뉴스 솎아내기” 강의만 들을 수 있었다. 강의는 재미있고 유익했다. 나쁜 뉴스를 솎아내고 좋은 뉴스를 골라내는 것이 왜 중요한지, 또 뉴스를 제대로 골라내기 위해 시민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뉴스를 왜곡시키는 다섯 가지 요인
우리는 세상을 직접 보는 게 아니라 대부분 뉴스라는 창을 통해 본다. 하지만 특히 영향력이 큰 뉴스를 만들어내는 레거시 미디어도 늘 나쁜 뉴스를 만들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우선 언론사주가 정치권력이나 신문권력, 자본권력이기 때문에 권력의 통제를 받는다. 매스미디어의 생존에는 광고가 필수인데 광고주도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삭제하거나 왜곡하라는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신문방송이 처한 무한경쟁 환경,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의 무한경쟁은 기자들이 정보 확인을 소홀히 해서 대형 오보를 만들어내는 배경이 될 수 있다. 특정 언론사가 가진 지나친 의도와 편견 역시 나쁜 뉴스를 만드는 원인이다. 이런 여러 가지를 모두 고려해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를 골라내야 하는 것은 이제 우리 시대 시민의 숙명이다.
좋은 기사의 조건에 대한 설명도 인상 깊었다. 예를 들어 미국 퓨리서치센터는 좋은 기사의 조건으로 출처가 분명한 취재원이 4명 이상인가, 이해 당사자가 빠짐없이 등장하는가, 단일한 관점이 아닌 복합적인 관점이 담기는가라는 세 가지를 들었다. 앞으로 뉴스를 볼 때 반드시 참고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왜 BBC와 CNN 뉴스가 더 객관적인가
금 기자의 강의를 듣다보니 답답함이 더해진 것도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늘 기득권의 편에 서 있는 한국사회 레거시 미디어의 나쁜 뉴스는 시민의 힘으로 바로잡기에 역부족일 정도로 압도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형식적으로는 해방되었지만 친일 기득권 세력이 경제, 교육, 사법 세력의 중심으로 외피만 바꾸어 지배하고 있는 사회이다.
조선, 중앙, 동아와 같은 신문이 여전히 영향력이 큰 이유도 그들이 친일에서 출발해 지금도 기득권으로 상징되는 계층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BBC나 CNN 같은 외국 미디어를 통해 발신되는 우리나라에 관한 뉴스가 국내 미디어에 비해 더욱 객관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 이유는 외국 언론이 한국을 보는 시각이 한국사회 기득권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상대적으로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하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기자와 지식인의 교육배경도 나쁜 뉴스에 영향
나는 언론이 나쁜 뉴스를 만드는 데는 구조적 환경뿐만 아니라 기자들과 지식인들이 가진 사회적 교육적 배경과 특성도 한 몫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한국 기자들이 아무런 질문을 못해 중계를 지켜보던 시민들과 오바마까지 답답하게 한 적이 있다. 기자들의 교육적 배경이 이런 풍경을 만들었다. 한국사회는 창의적인 문제의식을 기르기보다는 주어진 문제 풀이에 익숙하게 만드는 교육에 집중하고, 정해진 문제 풀이를 잘 하는 사람들이 사회로 나와 지식 집단 또는 엘리트가 된다. 기자들 역시 대체로 주어진 문제풀이에는 익숙하지만 새롭고 낯선 것에 부딪치거나 창의적인 문제이식을 갖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사회의 지식 집단은 평가에 의해 만들어진 집단이며 평가 권력을 통해 스스로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런 지식 집단에서 언론이 원하는 목소리를 내는 엘리트의 말을 언론이 적극적으로 증폭시켜 준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시민들이 언론에 나온 전문가와 언론의 의도에 늘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면 시민의 이익에 반하는 시각을 수용할 위험이 커진다.
오웰리즘을 극복하려면
나쁜 뉴스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현 정부가 52시간 노동시간 개편을 추진하는데, 여러 언론에서는 이를 노동개혁이라 표현한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더 나쁘게 하는 게 분명한데도 노동 ‘개혁’이라는 긍정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언론은 객관적이지 않고 나아가 왜곡된 언어를 통해 대중의 의식을 조작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는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이미 공공연한 사회 현상으로서 ‘오웰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속의 빅브라더가 대중들의 의식을 자기 뜻대로 만들기 위해 대중을 기만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오웰리즘을 위해서는 소위 전문가라는 간판을 가진 스피커들도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언론을 통해 발신되는 전문가들에 대해서도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그들의 주장을 늘 검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즉 시민들 스스로가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판단 기준을 높여야 한다.
우리는 미디어를 보는 관점을 키우기 위해 늘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스스로가 정보주체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쁜 뉴스와 좋은 뉴스를 제대로 걸러냈을 때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김철회 회원
▼날자꾸나 민언련 2022년+2023년 겨울호(통권 223호) PDF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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