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묵 회원
미디어 환경은 크게 변했지만, 주류 언론의 지배 방식은 그대로
민언련 언제, 어떤 계기로 민언련 회원이 되셨나요.
최형묵 1980년대 후반 대학원에 다니면서 지인들을 통해 민언련을 알게 되었어요. 1991년 군대에 갔다 온 후에 민언련(당시 공식명칭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의 회원이 되었고 곧바로 정책위원회에 합류하여 김동민 교수, 정용준 교수, 박형상변호사 등과 함께 여러 활동을 벌였던 기억이 납니다.
민언련 민언련에서 했던 활동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건 어떤 것인가요?
최형묵 초창기에는 이곳저곳으로 여름수련회를 다녔는데 여러 가지로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신미희 사무처장(당시 간사)의 고향인 충북 화양동 쪽으로 수련회를 가서 ‘난장’을 벌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후 언론학교, 대학언론학교와 같은 대중 강좌를 시작했어요. 입소문이 나서 한동안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수강했고요. 사람들로 꽉 들어찼던, 그리 크지 않았던 당시 민언련 강의실의 모습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민언련 언론학자로서 민언련에서 <시민과 언론> 편집위원장으로, 정책위원으로 오랫동안 시민언론운동을 해오셨는데, 그 사이 우리 사회도 많이 달라졌고 언론 환경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언론운동에 대한 생각이나 시민운동의 방향성에 대한 생각의 변화 같은 것이 생기지 않았나요?
최형묵 디지털, 모바일, 글로벌화로 미디어 산업과 소비는 완전히 달라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처음 언론개혁운동을 시작한 1990년대 초에는 사실 방송국 몇 개와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신문 정도가 우리 대중매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언론시장과 산업은 거의 빛의 속도로 변화해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론운동의 방식은 30년 전과 그리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국내 언론운동의 딜레마는, 미디어 환경이 크게 변했지만 본질적으로 조중동을 축으로 하는 국내 기득권 세력의 여론 조작과 지배 방식은 변한 것이 별로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이 건재하는 한 과거 방식의 언론개혁운동은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문제는 디지털 원주민 MZ세대를 어떻게 언론운동 판에 끌어들일 수 있느냐에 있겠지요. SNS나 유튜브로 미디어운동 영역을 확대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미디어 접근이 쉬워진 세상, 이용 가능한 영역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자
민언련 신문 방송뿐 아니라 인터넷을 기반으로 각종 정보를 얻는 통로는 다양해졌지만 시민들의 선택은 정치적 견해에 따라 진보, 보수로 양극화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정보의 오염도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때에 민언련에서 어떤 활동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최형묵 민언련은 객관과 가치 중립을 추구하는 ‘공공조직’이 아니라 조중동과 같은 기득권 언론의 편파와 왜곡, 여론조작과 부당한 국가영역 개입 행위를 지적하고 고발하는 시민언론 단체라고 생각합니다. SNS의 보편화로 세상과 여론이 양극화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과 같은 공공미디어가 거시적 공론장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민언련이 오랫동안 공영방송의 ‘공공성’ 문제에 집중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민언련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요즘, 그 자유를 가짜 뉴스 양산이나 혐오를 부추기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돈을 버는 데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언론운동에 힘을 보태온 시민들은 오히려 언론 개혁에 회의감이 들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때에 언론학자로서 우리 회원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씀이 있을까요.
최형묵 한국 주류 언론의 신뢰도는 수년간 세계 최하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독자의 이탈과 광고주의 이동으로 존망 위기에 처한 주류 미디어들은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황입니다. 민언련 회원님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 심각한 ‘미디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누구나 미디어에 접근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입니다. 주류 미디어에 주눅 들지 말고 유튜브 등 자신이 이용 가능한 미디어 영역에서 즐겁게 자신의 목소리로 ‘소리를 지를’ 필요가 있습니다. 무력감, 귀차니즘, 패배주의가 가장 큰 적인 것 같습니다.
민언련 대학에서 가르치고 계신데, 민언련은 물론이고 다른 시민단체들도 20-30 회원들을 찾기 어렵습니다. 시민운동의 미래를 위해 청년들을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형묵 그들을 억지로 오게 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함께 놀 수 있는 현실 공간과 미디어 공간을 확대해야겠죠. 동시에 민언련 관계자 모두가, 딱 한 명씩 젊은 회원 끌어들이기(멘토와 멘티 식으로) 운동을 벌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민언련 만약 아무런 제약 없이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다면 어떤 콘텐츠로 해보고 싶은가요.
최형묵 미디어의 흑역사
민언련 자서전에 붙이고 싶은 제목은?
최형묵 다 지나가리라
서먼인터뷰 조영수 협동사무처장
▼날자꾸나 민언련 2022년 가을호(통권 222호) PDF 보기▼
https://issuu.com/068151/docs/_2022_861f229554e9a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