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희 회원
<말>지가 열어준 ‘언협’의 문
김경실 어떤 계기로 민언련 회원 활동 시작하셨어요?
진경희 1980년대 초에 <말>지를 통해서 언협이란 곳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직접 회원활동을 하게 된 건 아마 1994나 95년 정도인 것 같아요. 당시에 영화반과 산악회가 있어서 거기서 활동했어요.
김경실 평소 언론이나 시사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셨어요?
진경희 1980년대는 특별한 관심이 없어도 누구나 언론과 시사 문제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잖아요. 그래서 저도 고만만 하다가 이런 단체가 있다는 걸 알고 나서 굉장히 기뻤죠.
김경실 민언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활동은 어떤 것이었나요?
진경희 신문·방송 분과의 활동이요. 저는 분과원은 아니었지만 거기 속한 회원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언론 보도를 모니터링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걸 들었는데,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저 나름대로 언론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이 정립됐다고 할까요.
언론학교에서 배우자를 만나다
김경실 언론학교를 수강했다고 들었습니다.
진경희 당시 신미희 간사님(현 사무처장)이 언론학교 강의를 들으라고 계속 권유했어요. 몇 번 고사하다가 “수강료 할인해주면 들을게요” 라고 농담 삼아 말했는데 그게 진담이 되는 바람에 듣게 됐어요. 1996년 여름학기였는데 당시 언론학교 신청자가 150~200명 정도로 어마어마했어요. 한 조에 20~30명씩 7조까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는 3조였어요. 그때는 노조 활동 하는 분들이 많이 왔어요. 여름학기여서 그런지, 대학생들도 굉장히 많았어요. 당시 제가 30대였는데 갓 스무 살, 스물한 살 된 20대 대학생들이 언론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민언련이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죠.
김경실 당시 강사 분들 중 기억에 남는 분은요?
진경희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손석희 아나운서님.
김경실 언론학교에서 배우자를 만나셨다면서요.
진경희 같은 조였어요. 민언련이 연남동에 있던 시절이었는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언론학교 강의를 듣고 홍대 앞에서 밤새 토론하고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조원들과 뒤풀이 문화가 활성화됐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고 해야 하나요.(웃음)
김경실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한 분을 배우자로 만나게 되신 거군요. 잘한 선택이었나요?(웃음)
진경희 그렇죠.(웃음) 굉장히 잘한 선택이었죠. 언론학교를 권유해주신 신미희 간사님께 감사하죠. 제가 결혼할 당시 주례 선생님도 민언련에서 알게 된 동아투위 출신 김태진 의장님이었어요.
대선 후 절망감으로 열심히 했던 언론운동 후원 끊기도
김경실 시간이 흐르면서 언론환경도 많이 달라졌는데, 그에 따라 언론운동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생기진 않았나요.
진경희 그동안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못했고 민언련을 비롯한 시민단체에 후원을 해왔어요. 주로 ‘이이제이’나 ‘나꼼수’ 같은 언론 관련된 곳들에요. ‘국민TV’가 개국한다고 했을 때도 후원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얼마 전 아쉬운 선거 결과를 접하면서 후원을 끊었어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지금 민언련이 존재하는 걸 보면서 ‘희망의 씨앗이 다시 싹트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김경실 언론이 양극단으로 진영화돼서 여론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기도 해서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습니다. 이런 때에 민언련은 어떤 방식으로 활동을 해야 할까요.
진경희 저에겐 언론학교를 수강한 게 굉장한 힘이 됐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런 걸 좀 더 활성화하면 시민들이 언론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앞으로 시대를 이끌어갈 2030세대의 길잡이로서 언론학교가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또 하나는 가짜뉴스 양산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특히 60대 이후 세대가 가짜뉴스에 매몰되지 않고 언론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민언련 같은 시민단체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경실 요즘 주로 어떤 매체를 통해서 뉴스를 접하세요?
진경희 포털이나 유튜브 시사채널을 통해 접해요. TV 뉴스는 거의 안 보다시피 하고요,
일상 전반에 스며든 극단적 양극화에 대한 안타까움
김경실 계속 언론 이야기만 하니 좀 딱딱하죠?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진경희 여행사 29년 다니고 프리랜서로 여행업을 하다가 코로나 터지면서 ‘더 이상 여행업은 대안이 아니다’ 싶어서 1인 플랫폼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김경실 그러면 요즘에 뭐가 가장 큰 걱정이세요?
진경희 특별히 걱정은 없고요.(웃음) 저는 원체 긍정적인 자세로 사는 사람이라 걱정은 없고 ‘그냥 조금 따뜻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정치 갈등으로 사회가 너무 양분화돼 있어서 그게 좀 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죠. 일례로 저희 가족도 이사를 갔는데, 이사 간 곳 국회의원이 윤상현 의원이래요. 그래서 대번에 “우리 다시 이사 가야겠다” 했어요. 그 정도로 너무 극단적으로 되다 보니까 한편으로는 그런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더라고요.
김경실 그러게요. 어떤 면에서는 어느 정도 융통성이랄까, 화합을 위한 노력도 필요한데, 특히 586세대는 옳으냐 그르냐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강해서 여유가 좀 없는 것 같긴 해요.
‘선한 부자,’ 그리고 ‘온유한 자가 잠들다’
김경실 아무 제약 없이 유튜브를 할 수 있다면 어떤 채널을 운영해보고 싶으세요?
진경희 ‘선한 부자’(?)라고 할까요. 요즘 제가 1인 기업을 하다 보니까, 한편으로 ‘경제적 독립이 인격적인 독립’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선한 부자로서의 삶? 나눔의 삶? 이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좀 해봤어요. 뭐가 생기면 움켜쥐는 것에 급급해 있었던 것을 좀 내려놓고 싶어요. 예를 들면, 원래 예전부터 입양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미혼모·미혼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는데 구체적으로 행동하진 못했어요. 남편도 취약 계층을 위한 봉사활동은 간혹 하는데, 그런 생각과 활동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영향력 있는 방송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봤어요.
김경실 선한 부자, 콘텐츠를 잘 만들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송이 될 것 같은데요.
진경희 제가 고등학교 때 독서토론회를 했는데 당시는 80년대 초반이라서 그런지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생각한 게 ‘나중에 만화방을 해야겠다’였어요. 4층짜리 건물에서 1층은 문방구로 해서 경제적으로 돈을 좀 벌고, 2층은 독서토론 같은 걸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3층에는 만화가게를 만들어요. 그렇게 청소년들이 쉴 만한 공간을 하나 만들어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4층에서는 제가 살고요. 이런 꿈을 꿨는데 유튜브 콘텐츠도 그런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옛날에 꿈꿨던, 청소년을 위한 것들이 이미 다 갖춰져 있더라고요.
김경실 어쨌든 당시에 굉장히 사회성이 있는 꿈을 꾸신 거네요.
진경희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웃음)
김경실 요새 책을 쓰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만약 회원님이 자서전을 쓴다면 어떤 제목을 붙이고 싶으세요.
진경희 그 생각은 안 해봤어요. 제목이 사실 굉장히 어렵잖아요. 제목이 정해지면 내용은 쉽게 정해질 정도지요. 제목이 주는 의미가 많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생을 마감하게 됐을 때 붙이고 싶은 문구는 생각해봤어요. ‘온유한 자가 잠들다’요. 저는 단순하게 마음 따뜻한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온유’가 그런 뜻이 전혀 아니더라고요. ‘온유’라는 표현이 그냥 함부로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 나를 완전히 내려놓는다는 뜻을 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는 정말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막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김경실 사회를 위해서든 회원님 자신을 위해서든 앞으로 꼭 한 가지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진경희 예전에는 직장을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직장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하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끊임없이 하면서 5~6년을 보냈어요. 추가로 더 하고 싶은 건, 계속 사진을 배워왔는데 좀 더 깊이 있게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산에 다니고 걷는 걸 좋아하는데요.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버킷리스트에 있는 ‘순례자의 길’, 거기 한 달 다녀오는 걸 하고 싶어요. 개인적인 소망은 이런 거예요. 그다음에는 아까도 얘기했듯이 미혼모·미혼부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어요. 저도 내일모레면 60세가 되는데, 좀 더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회원 배가를 위해 해보고 싶은 회원 활동, ‘독서 낭독회’
김경실 민언련에서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진경희 민언련에 예전에는 영화반이 있었는데요. 그런 것처럼 민언련이 ‘독서낭독회’ 같은 걸 열어서 ‘회원배가운동’을 하는 것도 참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 얘기를 자꾸 하게 되는데(웃음) 제가 요즘 나이를 먹다보니 책을 제대로 못 읽겠어요. 혼자 두꺼운 책 같은 걸 못 읽겠더라고요. 그래서 지인들과 모여 책 낭독을 몇 년간 해오고 있어요.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다소 주춤하긴 했지만요. 민언련에서 그런 독서모임을 한다면, 회원배가운동으로 좋지 않을까 싶어요. 언론을 바라보는 책들도 굉장히 많이 나와 있잖아요.
김경실 낭독회는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는 거죠?
진경희 먼저 책을 정한 다음, 모여서 책을 읽어요. 읽다가 책 분량이 너무 많으면 “집에서 어디까지 읽어 와라” 하고 나서 각자 의견을 얘기해요.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과 독서토론을 병행하는 거죠. 만약 신화를 읽게 되면, 신화에 관계된 장소가 많잖아요. 거기 답사도 가보고, 답사하면서 책 내용에 대한 얘기도 할 수 있어요. 그러면 머릿속에 책 내용이 더 쏙쏙 들어오게 되죠. 민언련에서 그런 활동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경실 민언련 회원들을 위한 분과 활동의 하나로 고려해봄 직한 이야기네요.
진경희 민언련을 멀리서 지켜만 보시는 회원분들도 민언련에 꾸준하게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저는 민언련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이 올바르게 정립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다른 회원분들도 민언련에 지속적으로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김경실 민언련 활동가들 기운 낼 수 있도록 한 말씀 해주세요.
진경희 민언련 활동가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덕분에 시민들이 언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시민들이 민언련을 잊지 않고 계속 후원하다 보면 분명 언론은 달라질 겁니다. 파이팅 하자고요!
김경실 감사합니다.
인터뷰 김경실 이사
정리 김경실 이사 박진솔 활동가
사진‧동영상 이병국 회원
▼날자꾸나 민언련 2022년 가을호(통권 222호) PDF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