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의 질문들 - 군대도, 전쟁도 당연하지 않다>(이용석 지음, 오월의봄, 2021)
평화, 가능한 일일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3달이 넘었다. 그 사이 민간인 학살과 전시 성폭력 등 러시아군의 만행도 벌어졌다. 세계 각국이 러시아 제재 및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고, 온 세계 시민들이 러시아를 비난했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런 소식을 듣다 보면 우울해진다. 사람들은 죽어나가는데 강대국은 전쟁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우리는 평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나. 평화라는 게 가능하긴 한 것인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당신이 군인이 되어야 한다?
〈병역거부의 질문들〉은 평화가 가능하다고, 그것도 무기 없이 가능하다고 믿는 평화활동가의 책이다. 저자는 평화단체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이며,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에 다녀온 '양심적 병역거부자'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 책은 '질문'의 책이다. 당연하게 여겨진 생각들, '평화를 지키기 위해 강한 군사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대해서 "정말 그럴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병역거부자 재판에서 검사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이 존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 일본군이 지인 여성을 데려갈 경우 어떻게 행동할 거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즉, "이 땅의 여성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군사력이 필요하고 당신이 군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인식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정말 그럴까? 저자의 답변은 이렇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한국군 '위안부'가 존재하게 된 것과 같은 이유다. 전쟁과 군대가 여성을 착취하기 때문이다. 군사력이 강한 군대든 약한 군대든 다양한 형태의 위안소를 운영한다.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국가가 군사력을 통제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나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운동을 열심히 할 것이며, 군대가 쳐들어와서 지인을 강제로 끌고 가려 한다면 목숨을 걸고 비폭력적 방식으로 저항하겠다." 또한 저자는 검사의 주장에 "'지켜주는' 존재로서의 남성과 '보호받는' 존재로서의 여성이 전제되어 있다"고도 지적한다.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는 주체의 자리에는 늘 비장애인 남성이 있고 그 외의 나머지 존재들은 수동적인 자리에만 놓인다. 게다가 보호받는 존재는 한편으로 약탈당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여성을 착취하는 군대'와 '여성을 보호하는 군대'는 거울의 양면인 셈이다.
끊임없이 흔들리며 길을 찾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
이와 같이 저자는 "남성성에 대한 성찰, 군대와 전쟁이 초래한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 공권력의 폭력성과 무책임함" 등 여러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군대에 가는 '정상적'인 사람과 군대에 갈 수 없는 '비정상적' 인 사람이 함께 동료 시민이 되어 비폭력적 시민불복종으로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병역거부운동의 목표는 단지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의 권리 확대만이 아니다. "지금 당장 전쟁을 중단시키거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군사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병역거부는 "이 명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써의 행동"이다. 이게 과연 될까? 사실 잘 모르겠다. '죽이거나 죽을 필요도 없이' 평화롭게 살아 가는 세상은 존 레논의 노래 가사에서만 가능할 것 같다. 나만이 아니라 평화활동가들도 함께 하는 고민이다. 이런 사람들은 한 치 흔들림 없는 굳건한 신념의 소유자 같아 보이지만, 저자는 "양심은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신념이 아니라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비추어보는 거울에 가깝다"고 "사실 내 양심은 지 금도 흔들린다"고 말한다. 책에는 그런 흔들림의 흔적, 고민의 과정들이 가득하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저 자 자신이 20년 동안 해온 병역거부 운동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병역거부운동이 중산계급 고학력자의 운동이 되는 것은 아닐까',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 수 있을까', '대체복무제 이후의 병역운동은 어떠해야 하나' 아마 저자는, 그리고 많은 평화활동가들은 이런 질문을 안고, 때때로 의심하면서 자주 흔들리면서 운동을 이어나갈 것이다.
도로 표지판을 바꾸고 철도는 끊고... ‘무기 없는 저항’의 길
지금도 우크라이나 침공은 계속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저마다 국방비를 늘리고 무기를 사들인다. 러시아 침 공은 막지도 못하고 전범 푸틴도 처벌하지도 못하면서 군비경쟁의 악순환만 재현되는 셈이다. 가장 득을 보는 것은 무기 판매상이다. 그러나 무기를 들지 않고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군이 길을 헤매도록 도로 표지판을 바꿨다. 옆 나라 벨라루스 철도 노동자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철도망을 무력화했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지역의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국기를 흔들면서 러시아 반대 시위를 벌인다. 총을 들지 않고서도 누구나 평화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군비경쟁의 악순환보다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평화의 길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다 함께 무기를 내려놓고 평화의 길을 찾아볼 수 없을까. 〈병역거부의 질문〉이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글 권박효원, 책보다 수다를 좋아하는 도서관 우수회원
▼날자꾸나 민언련 2022년 봄+여름호(통권 221호) PDF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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