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생크탈출/주인공 앤디>가 모차르트 산들바람의 노래를 틀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피가로의 결혼>에서 주인공 앤디(팀 로빈스)는 LP 한 장을 턴테이블에 걸고 교도소 운동장을 향해 스피커를 올린다. 예기치 못한 음악 소리는 재소자들의 굶주리고 메마른 영혼에 큰 감동을 일으킨다. 영화의 내레이터인 레드(모건 프리먼)가 당시를 회고한다.
“두 이탈리아 여자가 무엇에 대해 노래했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말 안하고 두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는 법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래서 더욱 가슴 에이게 하는 어떤 아름다운 것에 대 해 노래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자리의 누군가 꿈꿀 수 있는 것보다 그 음악은 더 높이, 더 멀리 울려 퍼졌다. 아 름다운 새들이 새장에서 뛰어나와 날개짓을 하며 순식간에 벽을 넘어가는 느낌….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쇼 생크의 모든 사람들은 그 순간 자유를 느꼈다.”
영화 쇼생크탈출,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중 ‘산들바람의 노래’
앤디가 교도소 운동장에 쏟아 부은 음악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3막에 나오는 ‘산들바람의 노래’(Canzonetta Sullaria)다. 영화에서 레드는 “두 이탈리아 여자가 노래했다”고 했지만, 가사가 이탈리아 말일 뿐 실제로는 독일의 군둘라 야노비츠(Gundula Janowitz)와 스위스의 에디트 마티스(Edith Mathis)가 노래했다. 레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래서 가슴 에이게 하는 어떤 아름다운 것에 대해 노래하는 것 같았다”고 했지만, 실제 노랫말은 단순하다.
(백작부인) 산들바람이 부드럽게….
(수잔나) 산들바람이 부 드럽게!
(백작부인) 산들바람이 속삭이는 오늘 밤….
(수잔나) 산들바람이 속삭이는 오늘 밤!
(백작부인) 수풀 속의 소나무 아래….
(수잔나) 소나무 아래?
(백작 부인) 수풀 속의 소나무 아래!
(수잔나) 수풀 속의 소나무 아래….
(백작 부인) 그렇게 쓰면 나머지는 다 알아들으실 거야
(수잔나) 분명히 다 알아들으시겠죠.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중 ‘산들바람의 노래’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 미렐라 프레니)
바람둥이 알마비바 백작은 피가로와 결혼을 앞둔 수잔나를 유혹하려고 추근댄다. 백작 부인은 남편을 밀회 장소로 유인해서 꼼짝 못하게 현장을 잡을 계획을 세운다. 백작 부인은 수잔나로, 수잔나는 백작 부인으로 변장하고 현장에 나갈 작정이다. 백작의 데이트 요청에 응하는 척 하는 편지, 백작 부인이 구술하고 수잔나가 받아 쓴다. 그래서 ‘편지의 이중창’이라고도 한다.
이 단순한 노래가 악명 높은 쇼생크 감옥의 재소자들에게 자유를 맛보게 해 주고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 주다니 놀랍기 짝이 없다. 이 영화의 선곡이 절묘한 건 오페라 이 영화 <피가로의 결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유와 존엄, 평등과 정의를 예찬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는 <피가로의 결혼>을 인 용하면서 “이 영화가 <피가로의 결혼>과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하려 한 게 아닐까.
앤디는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두 주 동안 징벌방 신세를 지게 된다. 다시 돌아온 앤디와 동료들 사이의 대화.
동료A, “하루가 1년 같았을 텐데, 어떻게 지냈나?”
앤디, “모차르트 선생이 함께 있었지.”
동료B, “축음기를 들고 간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앤디,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여기 있었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거야.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
레드, “(묵묵히 듣다가) 뭘 안 잊어?”
앤디, “돌로 만들어진 세상 말고 다른 세상도 있다는 거요. 이 마음속에 있는 건 그들이 간섭할 수도 없고 빼앗 을 수도 없죠. 그건 당신만의 것이죠.”
레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앤디, “희망이요.”
이게 어디 쇼생크만의 이야기일까? 모차르트의 시대도 다르지 않았다. 낡은 봉건체제는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 불가능한 꿈을 꾸기보다는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삶이 더 안락할 것 같았다. 오랜 세월 쇼생크를 체험한 레드는 앤디에게 충고한다. “희망? 잘 들어, 이 친구야. 희망은 위험해. 희망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도 있어. 여기선 다 소용없어. 빨리 여기에 익숙해지는 게 좋아.” 이게 과연 레드만의 생각일까? 우리 사는 세상의 허다한 사람들도 불투명한 희망에 매달리기보다 눈앞의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며 그게 ‘지혜’라고 강변하지 않는가?
하지만 앤디는 여전히 옳다. 인간성을 말살하는 감옥 안에서 자유를 꿈꾼 앤디, 그에게 죽음이란 희망을 포기 하는것에 다름 아니었다. 출구가 안 보인다는 이유로 주저앉는 것이야말로 쇼생크라는 폭력과 비리의 불합리한 체제에 굴복하는 일이었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소중한 희망을 간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마지막 존엄 성이라는 사실,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은 이 점을 우리에게 힘주어 말하고 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중세 신분 사회의 벽, 그 어둠 속에서 모차르트는 자유와 평등의 꿈을 잃지 않았고, 이에 따르는 대가를 마다하지 않았다. <피가로의 결혼> 대본을 쓴 로렌초 다 폰테의 회고에 따르면, 이 작품을 오페라로 만들자는 것은 모차르트의 아이디어였다.
글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날자꾸나 민언련 2021·2022년 겨울호(통권 220호) PDF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