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싸움을 지적 토론으로 : 어른의 문답법 (피터 버고지언, 제임스 린지 지음, 홍한결 옮김, 윌북, 2021)
대선이 끝났다. 아니 마무리될 것이다. 당선자는 나왔을 터이다. 누가 청와대 자리를 차지하였든 대한민국은 그와 함께 나아갈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 겐 환호일 터이고 또 다른 이들은 답답함과 서운함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 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대선 직전이다. 이틀 후에 결과가 나온다.
오늘 나누고 싶은 책을 고르는 데에는 부제목이 한몫했다. ‘개싸움을 지적 토론의 장으로 만드는’이 그것이다. 대선 레이스를 지켜보는 내내 머릿속에 선 진흙탕, 흑색선전, 아귀다툼, 무뢰한 등의 단어들만 둥둥 떠다니곤 했다. 행정 수반으로서 정부를 어떻게 이끌어 가겠다는 비전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로지 상대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만이 그의 약점과 더불어 두드러지었다. 한마디로 ‘개싸움’이었던 거다.
이틀 후 어떤 결과가 나오든, 즉 누가 대통령에 취임하든 ‘통합’, ‘연립’이라는 열쇠말이 부각될 수밖에는 없을 터이다. ‘개싸움’으로 계속 허송세월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려면 대화가 필수다. 책의 부제처럼 대통령 선거 과정 전체가 ‘지적 토론의 장’이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렇지 못했 다면 앞으로라도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미래세대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말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지적 토론을 벌일 수 있어야 한 다. 정치인의 수준은 시민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가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가슴에 손을 얹는다. 저자들이 제시한, 품격 있는 대화의 일곱 가지의 기본 원리를 일상에서 실천하였는가를 스스로 묻는다.
일곱 가지 기본 원리는 이후 전개될 다른 기법의 바탕이 되는 것이기에, 저자들은 바로 이 기본기를 충실히 다 지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라고 제안한다. 일곱 가지는 이것이다. 대화 목표 인식하기, 적이 아닌 파트너 되기, 공감대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말은 줄이고 더 많이 듣기, 내가 생각하는 진실 전달하지 않기, 상대방의 의도를 선 하게 여기기, 불편한 대화는 강요하지 않기.
일곱 가지 모두 중요한 기본 원리여서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그런데도 지금 시기 우리가 가장 명심해야 하 는 것 하나를 고른다면, 적이 아닌 파트너 되기 즉 협력 관계를 조성하는 일이다. 내 편, 네 편으로 편 갈라 내 편은 옳고 너희 편은 그르다는 이분법 문화가 지나치게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저자 중 한 사람인 피터의 스승인 프랭크 웨슬리가 수행한 연구가 있다. 한국 전쟁 중 북한군 포로로 있던 미 군 중 일부가 북한행을 택한 이유를 분석했다. 결과는 북한행을 택한 미군의 거의 전부가 한 훈련소 출신이었 다는 거다.
그들은 훈련소에서 북한 사람들은 잔학무도하고 미국인을 궤멸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정신교육을 받았 다고 한다. 헌데 실제로 북한군에게 친절한 대우를 받고 나자 주입된 지식이 산산히 허물어졌고 결국 이들은 정신교육을 받지 않았던 이들보다 훨씬 더 높은 비율로 북한행을 택했다. 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거나 움직이고,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고, 우정을 지키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상대방에게 호의와 공감과 연민을 보여주어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품위를 지켜주어 심리적으로 안전 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중략) (이러한) 환경을 만드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서로 ‘대화 파트너’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인을 생산적 대화를 위한 협력 상대처럼 대하면 된다. 그리고 실제로 협력 상대가 맞다.” _26쪽
대선이 휩쓸고 간 바로 그 자리에 화마가 덮쳤다. 자기 당파의 정치적 이익 이전에 불타버린 뭇생명과 시민의 마음이 돌봐지길 빈다.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나와 다른 믿음을 지닌 사람들과 우정어리고 품격있는 대화를 일상에서 유지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정치인의 수준은 시민의 수준을 넘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책에는 화 다스리는 방법부터 서로의 이해를 높이는 레퍼포트 규칙, ‘예. 그리고’ 대화법 등 우리를 지적 토론으로 이끌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이 소개되어 있다. 우선 책을 읽자. 그리고 저자들이 강조한 대로, 이 기술들 을 삶으로 가져오자.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글 신호승 대화디자이너, <삶을 위한 대화 수업> 저자
▼날자꾸나 민언련 2021·2022년 겨울호(통권 220호) PDF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