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022년 겨울호] [여는글] 민주주의의 독버섯, 혐오와 차별 미디어를 어찌할꼬?
등록 2022.04.06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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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통령 선거보도는 역대 최악이라는 말로도 모자랐다. 누가 우세하냐는 경마식 보도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사실을 확인하기는커녕 온갖 뜬소문만 퍼 나르는 확성기에 불과했다. 도무지 국민들은 무엇이 진실인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고 그 정보가 어떠한 맥락적 의미를 갖는지 알기 어려웠다. 검증으로 치장된 온갖 혐오와 의혹들만이 난무했다. 언론이 이러니 공론장이 제대로 형성될 턱이 없었다. 그저 자기편 입맛에 맞는 정보와 주장만을 찾고 소비할 뿐이었 다. 확증편향은 더욱 깊어지고 자신의 믿음과 다른 정보에는 아예 눈을 가리 고 귀를 막았다. 국가운영 능력이나 정책의 방향에 대한 토론은 사라지고 반대편을 흠집내기에 몰두했다. 혐오와 비방, 조롱과 배제가 판을 뒤덮었다. ‘최 악의 비호감 선거’라는 말로 마치 관전평을 하듯 했지만 정작 그것을 부추긴 것은 언론이었다.

 

언론은 공정하고 진실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 편을 들어 아예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선거판은 돈벌이로 쏠쏠한 마당 이었다.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할 정보를 찾는 사람들에게 작은 의혹의 단서가 있다면 캐내거나 심지어 의혹을 만들어 살을 붙이고 양념을 쳐서 팔았다. 기름을 부은 것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시킨 종편이었다. 신문기사에 비해 방송은 혐오나 선동을 하기에 훨씬 위력적이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때만 하더라도 출범한지 겨우 1년 밖에 되지 않아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10여 년간 신문과 방송을 한손에 쥐고 몸집을 키워온 종편은 예전의 종편이 아니었다.

 

연일 퍼붓는 혐오와 차별적 보도 및 시사 프로그램에 국민들은 솔깃하게 빠져 들었다. 게다가 혐오와 차별을 자양분으로 하는 극우 유튜버 방송들과 상승 작용을 하면서 공론장을 교란했다.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는 감정이라는대중의 분노 지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약자에 대한 혐오는 그 불쏘시개였다. 정치세력은 이에 편승하며 부추겼다. 집권 욕심에만 눈이 어두운 세력이 기생하기에는 그저 최상의 언론환경이었다. 극우적인 주장과 발언 이 언론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덩달아 그 반대진영에서도 혐오와 분열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기존 언론들도 그 자장에 휩쓸렸다. 오히려 차분하고 진실을 담은 보도는 자극적 보도 앞에 아예 눈길조차 받기 어려웠다. 온갖 음모론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국민들도 분위기에 빨려 들어가 선거는 진흙탕 싸움이 되어버렸다. 선거에 이기려고 여성, 외국인, 피해자, 사회적 약자, 노동자, 시민단체, 언론 등을 향한 혐오 정서에 편승한 갈 라치기 전략도 서슴지 않았다. 후보자나 그 가족을 조롱하는 것을 넘어서 함께 우호적 관계를 이어가야 할 이웃나라, 평화와 공존의 대상이 되어야 할 민족에 대한 증오로까지 이어졌다.

 

이전에는 악의적 댓글에나 머물러 있을 내용이 유튜버와 언론에 의해 좀 더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퍼져나갔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에는 불신을 넘어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 기자들은 멸칭으로 조롱 받으며 긍지와 직업의식은 움추러 들었다. 진실은 사라지고 오로지 편 나누기만이 살아남았다. 합리적 공론장 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기자들과 언론으로는 이미 성에 차지 않았다. 언론에도 어느 편이냐고 윽박지르 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편파나 왜곡보도를 훨씬 뛰어넘는 언론 붕괴 상태가 되었다.

 

선거기간에 쏟아낸 당선인의 언론관은 매우 우려된다. 모진 겨울을 견디고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공영언론의 자유와 독립이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든다. 편파왜곡보도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 정 치권력과 자본권력이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지 못하게 지키는 활동은 여전히 언론운동의 핵심적 과제이다.

 

아울러 언론운동의 운동장은 이전에 비해 훨씬 넓어졌다. 미디어가 그만큼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 폐해의 양상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그만큼 언론운동의 폐활량을 키우고 운동량을 더 늘려야 한다. 혐오와 차별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언론 그리고 그것을 부추기고 편승하는 정치세력들이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은 비단 우리 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의 트럼프, 프랑스의 국민전선 등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서 극우들의 성장세는 인류 공동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집중해야 할 활동은 시민들이 혐오와 차별적 언론에 길들여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다. 산불을 초기에 잡지 못하면 더 이상 손을 쓰기 어려울 지경이 되어 공론장을 홀딱 태워버릴지도 모른다. 이들을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에 우리 민주주의가 달려있다. 이번 대선 보도 는 섬뜩한 경고로 인식해야 한다. 차별과 혐오가 눈을 부라리는 곳에서 민주주의는 움조차 틔울 수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언론운동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제가 될 수도 있다. 오로지 성숙한 시민의식밖에 기댈 데가 없다. 시민이 희망이다. “민주언론 시민의 힘으로!”

 

글 정연우 이사

 

▼날자꾸나 민언련 2021·2022년 겨울호(통권 220호) PDF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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