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반응’(anniversary reaction)’이라는 게 있다. 광주 5·18이나 미국 9·11처럼 충격적인 일을 겪은 사람들은 그날이 다가오면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 마음이 심란해지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해지는 건 물론, 심지어 자살을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4월은 제주 4·3 희생자 유족들을 ‘기념일 반응’으로 괴롭히는 잔인한 달이다. 그리고 세월호…. 7년이 지났지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겐 그날의 상처가 바로 어제처럼 쓰라리게 되살아날 것이다. 음악이 이 상처를 어루만지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을까.
1. 말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중 ‘나는 때로 생각하지’
“나는 때로 생각하지. 아이들은 잠깐 놀러 나갔을 뿐이야. 햇살 화창하니 걱정하지 말자. 아이들은 잠깐 산책을 간 거야. 저 언덕 너머 잠시 여행 중이야. 나보다 조금 앞서 걸어가고 있으니 아직 집에 올 생각을 안 하는 게지.”
슬픔이 슬픔을 위로한다고 누가 말했나.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죄 많은 나는 살아 있는데 어째서 순결한 아이들은 눈을 감았을까? 독일 시인 뤼케르트는 45살 되던 1833년 성홍열로 두 아이를 잃었다. 그는 하루 한편씩 시를 썼고 눈물처럼 고인 시는 428편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가 됐다.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이 시집에서 5편을 골라 연가곡을 만들었다.
바리톤 토마스 햄슨이 부른 말러 가곡집 앨범 표지 출처=저자 제공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데 왜 세상은 그대로일까? “간밤의 끔찍한 일을 모르는 듯 태양은 다시 밝게 떠오르네. 재앙은 내게만 일어났는데 태양은 어째서 골고루 비추는 걸까.” 마지막 노래는 끝없는 자책과 회한이다. “이 날씨에, 폭풍 거친 날에 아이들을 내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누군가 아이들을 끌어냈고 나는 조심하라 말도 못 전했구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중 ‘나는 때로 생각하지’ (바리톤 토마스 햄슨, 번스타인 지휘 빈필하모닉)
말러는 알마와 결혼한 직후 이 노래를 작곡했다. ‘행복의 절정에서 이런 곡을 쓰다니.’ 알마는 불길하게 여겼다. 이 노래가 예언이라도 한 걸까? 1907년, 4살 난 큰딸 마리아 안나가 디프테리아(박테리아 감염)로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던 딸의 죽음은 말러에게 치명타였다. 그해 말러는 심장병이 도졌고, 4년 뒤인 1911년 세상을 떠났다. 조금 앞서 걸어간 딸을 따라 저 언덕 너머로 걸어간 것만 같다.
2. 고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엄마, 울지 마세요. 비록 제가 먼저 떠나지만 고결하신 성처녀 마리아가 저를 지켜주고 있어요.” 고레츠키 <슬픔의 노래> 2악장은 나치 수용소에서 죽어간 한 소녀가 수용소 벽에 써 놓은 말을 가사로 사용했다. 소녀는 마지막 순간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안간힘을 썼나 보다.
런던 신포니에타 레코딩, 돈 업쇼 소프라노의 헨릭 고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출처=저자 제공
어린 생명의 죽음은 왜 끊이지 않는 걸까. 동서고금, 어머니의 눈물은 왜 마르지 않는 걸까. 폴란드 작곡가 헨릭 고레츠키의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는 1977년 초연되어 100만 장 넘게 팔렸다. 현대음악으로는 드문 기록이다. 그만큼 슬픔이 지구별을 뒤덮고 있다는 뜻일까.
1악장은 중세 수도원에서 전승된 <슬픔의 성모>다. 어머니는 잃어버린 아들의 목소리라도 들려 달라고 애원한다. 아무 대답이 없다. 3악장은 주변 강대국의 침략으로 아들을 잃은 폴란드 어머니들의 아픔을 노래한다. 아들을 빼앗아 간 자들을 원망해 보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늙은 어미의 눈에서 흐른 눈물은 강이 되어 흐르고 바다를 이룬다. 하지만 아들을 살릴 수는 없다.
고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2악장(소프라노 이사벨 베이라크다라이안, 존 액설로드 지휘 신포니아 크라코비아)
“엄마, 사랑해요!”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어린 학생이 남긴 마지막 문자다. 이 순간에도 안내방송은 고장 난 축음기처럼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말고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잔인한 4월, 어머니의 슬픔은 그해 4월과 똑같다.
글 이채훈 <1일1페이지 클래식365> 저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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